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9191731001
꼼꼼·집요·저열한 ‘MB표 블랙리스트’…박근혜 때와 다르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입력 : 2017.09.19 17:31:00 수정 : 2017.09.19 18:07:20
검찰의 칼끝이 이명박 전 대통령(MB)을 직접 겨누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최근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국정원 내부 태스크포스(TF)에 의해 확인된 것이 결정타였다. 이 과정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핵심인사가 복역 중인 박근혜 정부와는 또 다른 MB식 ‘비판세력 적출법’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와 검찰이 확인한 MB 정부 국정원의 문화·예술인 사찰 및 방송장악 사례는 부분 공개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계획·전략수립 단계에서 깨알같이 꼼꼼한 준비, 실제 실행에서 보여준 집요함, 국가기관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저열한 행태까지 전 단계가 논란이 되고 있다.
■ 촘촘히 준비된 그물망
‘블랙리스트 작성’ 사건은 국정원 개혁발전위가 조사 중인 15건 가운데 하나일 뿐인 데다 아직까지는 검찰 수사 착수단계다. 그만큼 ‘빙산의 일각’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내용만 놓고 봐도 MB 정부의 단면이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명단에 오른 대상자가 9473명이라는 점에서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선언 참여자 등을 몽땅 집어넣는 등 정교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반면 방송·연예계 인사 중심으로 82명을 선정해 놓은 MB판 블랙리스트 작성 전후에는 디테일(세부사항)이 촘촘하게 준비됐다.
2010년 10월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 요청으로 국정원이 작성한 ‘문화예술단체 내 좌파인사 현황, 제어 관리방안 보고’ 문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정부 비판 성향 연예인을 촛불집회 적극 가담 A급 15명, 단순 동조자 B급 18명으로 분류했다. 그 후 A급은 연예활동에 대한 실질적 제재조치를, B급은 계도조치를 취하는 등 ‘맞춤형 철퇴’를 가했다. MBC라디오 진행자 퇴출을 위해 사규에 근거 규정까지 마련하도록 했다.
지난 18일 공개된 MBC·KBS 등 방송사 장악 관련 국정원 문건을 보면 3단계에 걸친 시기별 세부 추진방안을 준비한 것은 물론, 주요 간부 한 사람 한 사람을 ‘좌편향’ ‘무능·무소신’ ‘비리 연루’로 구분해 낙인찍고 퇴출 필요성을 정리하기도 했다.
■ 전방위로 끝까지 압박하는 집요함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는 지난 7월27일 서울중앙지법 1심 선고에서 “지원 배제 행위가 은밀하고 집요한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은밀하고 집요한 방법’은 MB판 블랙리스트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예술가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금전적 지원 배제에 초점을 두는 단순한 수준을 넘기 때문이다. 공식·비공식, 온라인·오프라인 형태를 가리지 않고 퇴출 대상 인물의 사회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압박을 일삼은 정황이 문건에도 드러난다.
국정원 ‘좌파 연예인 대응 TF’와 문화·연예·방송 담당관 활동 보고를 보면, 2009년 10월부터 2011년 8월까지 모두 19건의 활동 내용이 담겨 있다. 연예인 소속 기획사 세무조사·특정 프로그램 폐지·라디오 제작자 지방 발령 유도 등을 국정원이 이끌었다.
‘연예인의 종북 성향 폭로’ ‘댓글·사설 정보지 형태 문건 유포’ ‘광고주에 항의 e메일 발송·광고모델 교체 압박’ ‘유관부처·기관 직접 조치를 통한 오프라인 압박’ 등의 표현이 국정원 작성 문건에 직접 등장할 정도였다.
■ 상상초월 ‘더티 플레이’까지
블랙리스트 작성·퇴출 실행 과정에서 국정원은 최고정보기관이자 국가기관이라는 본분을 망각한 채, 국민을 대상으로 연예인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한 심리전을 적극적으로 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2011년 10월 보수성향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배우 문성근·김여진씨가 나체 상태로 누워 있는 합성사진을 제작·유포해 올리는 등 ‘특수공작’까지 벌인 사실이 최근 발각됐다.
심리전단은 그해 9월에는 민간인 사이버외곽팀을 통해 보수 성향 인터넷 카페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즐라인민공화국 슨상교도들이 일으킨 무장폭동’이라고 하거나, ‘정오에는 뇌물짱’ ‘부엉이 바위 번지점프’ 등의 표현을 쓴 게시물을 올리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폄훼하기도 했다.
여론은 2009년 2월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 벌어진 이 같은 국정원의 비상식적 활동에 대한 검찰 수사를 기대하는 한편, 한심한 행태에 할 말을 잃었다는 반응도 심심찮게 나온다.
원 전 원장은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 출신의 정보 문외한이면서 ‘MB 집사’로 불렸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의 충성심이 비단 문화·연예계에 국한됐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노동계, 교육계 등 사회전반에 광범위하게 국정원의 패악에 가까운 행태가 추가로 드러날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꼼꼼·집요·저열한 ‘MB표 블랙리스트’…박근혜 때와 다르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입력 : 2017.09.19 17:31:00 수정 : 2017.09.19 18:07:20
검찰의 칼끝이 이명박 전 대통령(MB)을 직접 겨누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최근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국정원 내부 태스크포스(TF)에 의해 확인된 것이 결정타였다. 이 과정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핵심인사가 복역 중인 박근혜 정부와는 또 다른 MB식 ‘비판세력 적출법’이 주목받고 있다.
최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와 검찰이 확인한 MB 정부 국정원의 문화·예술인 사찰 및 방송장악 사례는 부분 공개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계획·전략수립 단계에서 깨알같이 꼼꼼한 준비, 실제 실행에서 보여준 집요함, 국가기관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저열한 행태까지 전 단계가 논란이 되고 있다.
■ 촘촘히 준비된 그물망
‘블랙리스트 작성’ 사건은 국정원 개혁발전위가 조사 중인 15건 가운데 하나일 뿐인 데다 아직까지는 검찰 수사 착수단계다. 그만큼 ‘빙산의 일각’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내용만 놓고 봐도 MB 정부의 단면이 드러난다.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명단에 오른 대상자가 9473명이라는 점에서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선언 참여자 등을 몽땅 집어넣는 등 정교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반면 방송·연예계 인사 중심으로 82명을 선정해 놓은 MB판 블랙리스트 작성 전후에는 디테일(세부사항)이 촘촘하게 준비됐다.
2010년 10월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 요청으로 국정원이 작성한 ‘문화예술단체 내 좌파인사 현황, 제어 관리방안 보고’ 문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정부 비판 성향 연예인을 촛불집회 적극 가담 A급 15명, 단순 동조자 B급 18명으로 분류했다. 그 후 A급은 연예활동에 대한 실질적 제재조치를, B급은 계도조치를 취하는 등 ‘맞춤형 철퇴’를 가했다. MBC라디오 진행자 퇴출을 위해 사규에 근거 규정까지 마련하도록 했다.
지난 18일 공개된 MBC·KBS 등 방송사 장악 관련 국정원 문건을 보면 3단계에 걸친 시기별 세부 추진방안을 준비한 것은 물론, 주요 간부 한 사람 한 사람을 ‘좌편향’ ‘무능·무소신’ ‘비리 연루’로 구분해 낙인찍고 퇴출 필요성을 정리하기도 했다.
■ 전방위로 끝까지 압박하는 집요함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는 지난 7월27일 서울중앙지법 1심 선고에서 “지원 배제 행위가 은밀하고 집요한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은밀하고 집요한 방법’은 MB판 블랙리스트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예술가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금전적 지원 배제에 초점을 두는 단순한 수준을 넘기 때문이다. 공식·비공식, 온라인·오프라인 형태를 가리지 않고 퇴출 대상 인물의 사회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압박을 일삼은 정황이 문건에도 드러난다.
국정원 ‘좌파 연예인 대응 TF’와 문화·연예·방송 담당관 활동 보고를 보면, 2009년 10월부터 2011년 8월까지 모두 19건의 활동 내용이 담겨 있다. 연예인 소속 기획사 세무조사·특정 프로그램 폐지·라디오 제작자 지방 발령 유도 등을 국정원이 이끌었다.
‘연예인의 종북 성향 폭로’ ‘댓글·사설 정보지 형태 문건 유포’ ‘광고주에 항의 e메일 발송·광고모델 교체 압박’ ‘유관부처·기관 직접 조치를 통한 오프라인 압박’ 등의 표현이 국정원 작성 문건에 직접 등장할 정도였다.
■ 상상초월 ‘더티 플레이’까지
블랙리스트 작성·퇴출 실행 과정에서 국정원은 최고정보기관이자 국가기관이라는 본분을 망각한 채, 국민을 대상으로 연예인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한 심리전을 적극적으로 폈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2011년 10월 보수성향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배우 문성근·김여진씨가 나체 상태로 누워 있는 합성사진을 제작·유포해 올리는 등 ‘특수공작’까지 벌인 사실이 최근 발각됐다.
심리전단은 그해 9월에는 민간인 사이버외곽팀을 통해 보수 성향 인터넷 카페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즐라인민공화국 슨상교도들이 일으킨 무장폭동’이라고 하거나, ‘정오에는 뇌물짱’ ‘부엉이 바위 번지점프’ 등의 표현을 쓴 게시물을 올리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폄훼하기도 했다.
여론은 2009년 2월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이후 벌어진 이 같은 국정원의 비상식적 활동에 대한 검찰 수사를 기대하는 한편, 한심한 행태에 할 말을 잃었다는 반응도 심심찮게 나온다.
원 전 원장은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 출신의 정보 문외한이면서 ‘MB 집사’로 불렸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의 충성심이 비단 문화·연예계에 국한됐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노동계, 교육계 등 사회전반에 광범위하게 국정원의 패악에 가까운 행태가 추가로 드러날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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