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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국정원 블랙리스트’ 언론도 공범자였다
[미디어오늘 1118호 사설]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2017년 09월 19일 화요일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KBS·MBC 블랙리스트 문건’을 만든 사실이 확인됐다. 문건에 따르면 당시 국정원은 정연주 전 KBS사장과 최문순 전 MBC사장 인맥을 배제하는데 직접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보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연예인은 방송출연을 금지시켰다. 폐지되는 프로그램까지 있었다. SBS에도 연예인 퇴출을 압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사 경영진이 했어도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사안인데 이 모든 과정에 대한민국 정보기관 국정원이 개입했다. 성숙된 민주주의 사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MB정부 국정원의 범죄행위도 문제지만 국정원 ‘범죄지침’을 그대로 따랐던 ‘언론사 관계자’들은 더 문제다. 이들은 MB정권이 국정원을 동원해 방송사 관계자들을 사실상 사찰하고 경영과 인사에 개입하는 상황에 동조하고 가담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본부)가 19일 성명을 통해 지적한 것처럼 “내부자들의 조력과 부역 없이 KBS 내부를 이렇게까지 자세히 파악하고 사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부자들’은 국정원에 협력하는 대가로 자리를 보존하거나 승승장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들이 탄압한 대상이 자신의 동료이자 선후배 언론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과연 언론인 자격이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가담 정도가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정보기관이 언론사 인사나 프로그램에 개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MB정부에서 이런 원칙과 기준은 무참히 무너졌다. 비상식적인 일들이 언론사 ‘내부자들’ 협력을 통해 버젓이 벌어졌다. 자신은 적극 가담자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의 이런 일탈 행위를 알고도 침묵했다면 적극 가담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가. “내부 부역자들은 스스로 자백하고 사죄하는 것만이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KBS본부의 성명을 지금이라도 ‘그들’이 곱씹어야 하는 이유다.

국정원과 ‘내부자들’ 외에도 상당수 언론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언론이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영방송은 물론 많은 언론이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권력 비판에 소홀했다. 감시견 역할은커녕 대통령에게 질문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고 미리 짜놓은 질의응답을 마치 연기하듯 읊어댔다. 그것이 지난 9년 동안 독자들 눈에 비친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이들 가운데 반성이나마 제대로 한 곳이 있었던가.

언론책임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9년 동안 숱한 언론인이 정권과 그들에 충성하는 경영진에 의해 해직되거나 좌천·보복인사를 당했다. 그때도 상당수 언론은 침묵하거나 외면했다. 적극적으로 보도한 곳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랬던 언론이 이제는 블랙리스트 문제를 파헤치는 정의의 사도라도 된 것처럼 이 문제를 앞장서서 보도하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가장 문제가 심각한 곳은 조중동을 비롯한 이른바 보수언론이다. 특히 조선일보의 이중적 태도는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 신문은 고용노동부가 김장겸 MBC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을 두고 법원과 검찰이 정상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작 ‘MB정부 국정원 블랙리스트’ 파문이 불거지자 너무나도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블랙리스트 파문과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선 ‘권력의 방송장악’ 프레임을 선보이더니 정작 분노해야 할 사안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민주당 당직자가 작성한 비공개문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한 곳도 조선일보다. 조선은 문재인 정부와 시민사회의 공영방송 정상화 추진이 은밀하게 짜인 각본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도했다. 일개 당직자가 작성한 문건 하나에도 이 정도 호들갑을 떨 정도면 정보기관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에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겠는가. 이제 그 답을 조선일보가 내놓을 차례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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