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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이 아직도 이적표현물…검찰, 시대착오적 공안수사
등록 :2017-11-10 20:52 수정 :2017-11-10 21:46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 동상의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국립도서관 소장 도서가 대검찰청에서는 아직도 이적표현물로 분류돼 검찰 공안 사건의 유죄 입증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년도 더 지난 시대착오적 자료집을 근거로 검찰이 공안 수사와 재판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검찰로부터 정보공개청구를 해 받아낸 ‘판례에 나타난 이적표현물’이라는 제목의 공안자료집 내용을 10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공안자료집 중 이적표현물로 분류된 도서 가운데는 현재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다수 포함돼 있다. △리영희의 <우상과 이성> △<전태일 평전>으로 다시 발간된 조영래의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 △송건호 등의 공저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같은 역사서 △김지하의 <오적> 등 시집 △권운상의 <녹슬은 해방구>를 비롯한 소설 등이다. 공안자료집에는 법원이 이적표현물로 인정한 도서 1072종, 유인물 1584종, 기타 121종 등 모두 2777종이 올라 있다.
대검찰청은 1974년부터 1994년 사이 각급 법원에서 옛 반공법 또는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인정한 도서 등을 ‘판례상 인정된 이적표현물’이라는 제목으로 공안자료집을 발간해 왔다. 이번에 공개된 공안자료집 제20권은 대검찰청이 앞선 네 권의 공안자료집을 종합·정리하고 1995년까지 인정된 이적표현물을 추가해 1996년 6월 발간한 것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공안자료집은 과거 인권운동사랑방이 법무부와 대검찰청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소송 중 2001년 청구인에게 공개됐지만 해당 소송이 취하됨에 따라 판례가 남지 않았다”며 “이후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통해 공개된 선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이번 정보공개를 통해 누구든지 공안자료집을 접할 수 있음이 분명해졌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공안자료집이 설사 법원 판례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해도 1996년 당시의 사회 기준이 최근의 공안 사건 기소 및 재판에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월 북한 관련 서적 등 이적표현물을 소지·반포·판매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노동자의 책’ 운영자 이진영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당시 공안자료집을 유죄 입증의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지만 지난 7월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재판장 심규홍)는 “(지목된 이적표현물은) 대부분 국립중앙도서관 또는 국회도서관에 비치되어 누구나 쉽게 열람이 가능한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이 공안자료집의 낡은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씨는 석방됐지만 무죄 판결 때까지 반년 넘게 구치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조지훈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1996년에 만들어진 공안자료집을 기준으로 검찰은 최근까지 국가보안법 사건을 조사하고 형사처벌했다”며 “시대착오적인 공안자료집을 하루빨리 폐기하고 국제인권기구에서 계속 폐지를 요구하는 국가보안법도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공안1과 관계자는 “천주교인권위원회가 정보공개청구를 해 자료를 공개했다. 1996년 이후 공안자료집을 만든 적은 없다”고 밝혔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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