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826981.html?_fr=mt1


보수 진영의 ‘평창 한반도기’ 공격이 궤변인 까닭은…

등록 :2018-01-09 17:20 수정 :2018-01-09 21:15


평창올림픽 남북 공동입장 가시화되자 공동입장때 드는 ‘한반도기’ 흠집내기 나서 

조선일보 “태극기 못 보는 일 있을 수 없어” 자유한국당 “한반도기, 세계인이 비웃을 것”

한반도기, 노태우 정권 시절 남북 합의로 탄생 2000년 첫 공동입장땐 조선일보 “전세계인 큰 감동”


2016년 6월12일 오전 충남 천안시 쌍용1동 미라초등학교 4학년 1반 교실에서 진행돼 학생들이 한반도기에 통일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적고 있다. 천안/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16년 6월12일 오전 충남 천안시 쌍용1동 미라초등학교 4학년 1반 교실에서 진행돼 학생들이 한반도기에 통일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을 적고 있다. 천안/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평창 겨울올림픽 개·폐막식 남북 공동입장이 가시권에 놓이게 됐습니다. 정부는 9일 고위급 회담에서 북쪽에 공동입장·공동응원 등을 제안했습니다.


남북 공동입장은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을 시작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2004년 아테네 여름올림픽,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 2007년 창춘 아시안게임 등 모두 9차례입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남북한 선수단이 ‘COREA’란 이름으로 흰색 바탕에 푸른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를 들고 나타나자 관중석은 기립박수로 이를 환영한 바 있습니다. 이번에 남북이 뜻을 같이한다면, 2007년 이후 11년째 끊어졌던 남북 공동입장의 역사를 재현하게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정부와 북쪽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 당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 당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제는 올림픽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른바 ‘산통 깨기’에 나선 보수 언론과 보수 정치권의 움직임입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5일 ‘대한민국 개최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태극기가 없다면’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환영한다”면서도 “그것으로 개회식에서 우리 태극기를 볼 수 없게 되는 일만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핵폭탄과 장거리미사일을 들고 대한민국과 세계의 축제에 한 발을 걸치면서 태극기를 없앤다면 이를 납득할 수 있는가”라며 “북 집단에는 핵무장과 대한민국 제압이 절대 불변 목표이고 나머지는 모두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만전략과 전술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자유한국당 역시 7일 전희경 대변인 논평에서 “북한의 무력도발과 핵실험을 모조리 망각의 강물에 띄워 보내고 오직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상징으로 한반도기가 펄럭이는 평창올림픽이라면 세계인의 비웃음을 살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북한에 ‘선 행동’을 요구하며 9년간 사실상 북핵 문제를 방치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과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이들의 주장이 ‘궤변’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 한반도기, ‘자유한국당 전신’ 민자당 집권 당시 탄생


무엇보다 한반도기가 자유한국당의 전신이자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민주자유당이 집권하던 노태우 정부에서 탄생했다는 점입니다. 또 한반도기가 북쪽의 일방적인 요구를 받아들인 게 아니라 남북 간 오랜 협의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도 중요한 지점입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2008년 <한겨레21> 연재물 <냉전의 추억> ‘코리아팀의 아리랑이 그리워라’편에서 ‘한반도기 탄생기’를 이렇게 썼습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은 가장 진지하고 밀도 있는 회담이었다. 1989년 3월9일부터 1990년 2월7일까지 9차례의 본회의와 6차례의 실무접촉이 이뤄졌다. 한반도기는 이 논의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단가는 1963년 이래 <아리랑>으로 굳어져 있었다. 문제는 호칭, 단기, 선수 선발 방식이었는데, 단기와 관련해 남쪽은 1차 회담에서 흰색 바탕에 녹색 한반도 지도와 그 아래 영어로 ‘KOREA’를 표기하자고 제안했다. 북쪽은 이에 반해 흰색 바탕에 황토색 한반도 지도와 그 아래에 청색 또는 적색으로 고려의 영어 표기인 ‘KORYO’를 표기하자고 주장했다. 남북 양쪽 모두 흰색 바탕에 한반도 지도를 넣자고 제안한 것이다. 지도의 색깔만 달랐다. 2차 회담에서 남쪽은 북쪽의 1차 제안을 반영해 흰색 바탕에 황토색 한반도 지도를 넣되, 주변을 녹색으로 하자고 수정 제안했다. 북쪽은 2차 회담에서 한반도 지도 색깔을 하늘색으로 하고, 아무런 외래어 표기를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남북한은 명칭 표기 없이 흰색 바탕에 하늘색 지도를 넣은 한반도기에 합의할 수 있었다. 남쪽은 단일팀의 깃발로 상대방이 받을 수 없는 태극기를 이미 1963년(1964년 도쿄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한 최초의 체육회담이 열렸던 때)에 포기했다.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한반도기의 형태가 만들어졌고, 하늘색은 상호 조정을 거쳐 결정된 것이다.”


이러한 탄생기에도 불구하고, 민자당에서 이름을 바꾼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한 남북 협력기에 번번이 ‘한반도기’를 걸고 넘어졌습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이상배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한반도기 사용은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북한의 전술전략에 이용될 소지가 있다. 주권상실을 의미할 수도 있고 아시안게임이 북한의 대남선전장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는데 국민이 한반도기 사용을 너무 관대하게 보는 것도 문제”라며 한반도기 대신 태극기와 인공기 개별입장을 주장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제1정조위원장이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주최국이 국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주권의 문제로 자칫 주권 포기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2004년 아테네 여름올림픽 당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04년 아테네 여름올림픽 당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입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이러한 한나라당의 목소리는 국민 여론과는 크게 어긋났습니다. 2002년 당시 <연합뉴스>가 여론조사기관인 테일러넬슨소프레스(TNS) 코리아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3.8%가 남북 동시입장에 찬성했고, 76%는 동시입장 때 한반도기 사용을 바란다고 답했습니다. 2007년까지 꾸준히 남북 공동입장이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국민적 바람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언제는 “큰 감동”이라더니…조선일보 과거 기사 보니


“분단 46년만에 처음으로 남북한 단일팀으로 출전한 코리아 탁구여자팀이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하는 순간 눈과 귀를 TV에 고정시킨채 마음을 졸이던 시민들은 탄성을 터뜨리면 이번 승리가 통일을 앞당기는 계가가 되기를 기원했다. (중략) 끝내 유순복 선수가 중국의 가오준을 2대 0으로 누르자 옆자리의 사람을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으며 한반도가 그려진 단일기가 아리랑연주속에 올라가는 장면에서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1991년 4월29일 일본 지바의 니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남북단일팀 ‘코리아 여자탁구팀’이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위 기사는 당시 우승 소식을 전한 <조선일보> 기사입니다.


2003년 8월21일 대구체육관에서 열린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배구 북한-덴마크 경기 중 4세트가 끝나자 남북 공동응원을 위해 경기장을 찾은 한겨레 남북평화응원단이 대형 단일기를 경기장에 펼치고 있다. 대구/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03년 8월21일 대구체육관에서 열린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배구 북한-덴마크 경기 중 4세트가 끝나자 남북 공동응원을 위해 경기장을 찾은 한겨레 남북평화응원단이 대형 단일기를 경기장에 펼치고 있다. 대구/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이뿐 아닙니다.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 첫 남북 공동입장땐 ‘스포츠가 앞장서는 남북화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한반도기를 앞세운 입장을 두고 “전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고 썼습니다. 다음은 2000년 9월17일치 <조선일보> 사설 일부입니다.


“올림픽 개막식에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한이 동시입장함으로써 세계평화와 인류공동번영을 기원하는 제27회 올림픽을 더욱 빛냈다. 남북한 선수들이 한반도가 그려진 하나의 깃발 아래 96번째로 ‘Korea’란 피켓과 함께 입장하자 11만명의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2000명의 올림픽 밴드는 아리랑을 연주했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남북선수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주경기장 북쪽 출구에 나타나자 전광판에는 ‘Korea’라는 자막과 동시에 한반도기가 나부꼈다. 이러한 모습은 참가선수들뿐 아니라 TV를 통해 이를 지켜본 전 세계인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비록 4년 동안 땀흘려온 우리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입장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고, 선수단 규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수가 입장을 하기로 한 것은 너무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분명 남북화해를 향한 하나의 진전이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입장을 바꿔 사설 등에서 “(대한민국이 주최국인데) 대회의 하이라이트인 개·폐회식에 주최국의 국기가 사라질 수는 없다”면서 “태극기와 인공기 대신 한반도기를 사용하자는 북한의 주장이 아시안게임을 그들 방식의 ‘민족 대단결’을 고취하는 장으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뉴라이트 인사의 ‘한반도기 폄훼’ 발언도 종종 실렸습니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2005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2007년 대선 승리를 위해 뉴라이트와 기존 우파가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는 질문에 “2007년 대선은 태극기와 한반도기의 대결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좌·우 대결이 아니다. 다음 대선은 태극기를 지키기 위한 ‘구국연합전선’이 돼야지 단순한 ‘우파 대동 단결론’은 필패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남과 북의 한반도기를 사실상 북한의 깃발로 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2007년 <조선일보>에 글을 기고하고 한반도기를 ‘정체불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기고 글 일부입니다.


“집권민주화세력의 민족주의는 ‘한풀이’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실질이 결핍돼 있는 그들의 민족주의는 민생과 미래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정체불명의 한반도기의 등장과 태극기의 수난은 ‘우리민족끼리’의 허구성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이제 ‘붉은 악마’의 ‘대~한민국’과 친북좌파의 ‘우리민족끼리’는 도저히 융화 불가능한 이물질이 되었다.”


■ “박근혜, 한반도기 안 든다고 화냈다”는데…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반도기를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화를 냈다”는 주장이 나와 화제를 끌기도 했습니다.


정몽준 전 의원은 2011년 펴낸 자서전 ‘나의 도전 나의 열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공개했습니다. 때는 박근혜 당시 의원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합의에 따라 2002년 9월 상암경기장에서 열린 남북한 국가대표 축구 경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서전을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관중들이 한반도기를 들기로 약속했는데 왜 태극기를 들었느냐고 정몽준 전 의원한테 화를 냈다고 합니다. 또 당시 붉은악마 응원단이 ‘대한민국’을 외치자 구호로 ‘통일조국’을 외치기로 했는데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항의하기도 했답니다.


2002년 5월 야당 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2002년 5월 야당 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이런 주장이 나오자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이정현 의원을 통해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는데요. 그럼에도 명백한 사실은 박 전 대통령이 2002년 5월 방북했고,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 끝에 이러한 스포츠 교류를 추진했다는 점입니다. 자유한국당은 명백한 과거마저 부정하고 또다시 ‘한반도기’에 색깔론을 들이대며 모처럼 찾아온 남북 화해 협력 무드에 초를 치고 있는 셈입니다.


자유한국당에 2000년 9월17일치 <조선일보> 사설의 일독을 권합니다. 사설은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남북 스포츠 교류 활성화는 사회·문화·교류 확대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남북한의 진정한 화해와 교류의 길로 가는 것이 될 것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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