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94044


문 대통령이 '편하게 기사 쓰고 싶다'는 기자에게 한 말

[게릴라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가 보여준 것

18.01.11 09:57 l 최종 업데이트 18.01.11 09:57 l 글: 하성태(woodyh) 편집: 김시연(staright)


답변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답변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래야 편하게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기자는 어떻게 해야 편하게 기자를 쓸 수 있을까. 비단 발로 뛰지 않는다고,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고 마냥 '편하게' 기사를 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 헌데 어떤 기자는 '댓글'이 그리도 불편했던 것 같다. 200명이 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 중 20명도 안 되는 기자에게 질문 기회가 돌아간 청와대 신년기자회견에서 "편하게 기사를 쓰고 싶다"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징징'댄 걸 보면 말이다. 


10일 청와대 신년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손을 들고 눈을 맞춘 뒤 질문을 따낸 <조선비즈> 박정엽 기자. 그는 이른바 '문빠'라 불리는 문 대통령의 과격 지지자들을 의식한 듯, "기자들이 최근 대통령이나 정부 정책 비판 기사를 쓰면 안 좋은 댓글이 많이 달린다"며 "지지자들의 격한 표현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지지자들에게 전하실 말씀이 있나"라며 위와 같은 말꼬리를 덧붙였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나보다 많은 악플이나 문자를 통한 비난, 여러 가지 트윗 등을 많이 당한 정치인은 없을 것"이라며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대답을 내놨다. 매체와 언론 지형이,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같은 플랫폼의 변화가 댓글과 같은 소통 구조도 바꿔 놨음을 대통령 본인도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답이라 할 수 있었다. 


"나와 생각이 같건 다르건 상관없이 유권자인 국민들의 의사표시라고 받아들인다. 기자들도 그런 부분은 좀 담담하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너무 그렇게 예민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진 건 그 이후였다. 박 기자의 질문을 비웃기라도 하듯, 박 기자의 기사에 댓글이 쏟아졌고, 과거 그가 쓴 기사가 재조명됐으며, 그의 학생 시절 이력이 회자됐다. 시쳇말로 '탈탈 털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 박 기자는 이날 오후 <문 대통령에 '과격댓글' 질문 박정엽 기자에게 쏟아진 건...>이란 기사를 통해 기자간담회를 스케치한 후 이렇게 토로했다. 


"문 대통령과 기자의 문답이 오간 이후 몇 분 지나지 않아 기자에게는 욕설 섞인 이메일과 SNS 메시지 수백 통, 포털 사이트에 올라간 기사 댓글 수천건 등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지인들이 기자에게 '짤방'이라고 불리는 짧은 영상을 보냈다. 기자가 대통령에게 질문하는 장면을 짧게 편집한 영상이었다. 지인들은 주요 커뮤니티 사이트들에 올라온 비난과 조롱도 전했다.


그리고 기자는 이 짧은 기사를 쓰는 동안 주요 단어마다 수십 번씩 썼다 지우면서 망설였다. 이후에 쏟아질 악성 댓글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 질문이 더 문제


질문자 지명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

▲ 질문자 지명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뉴스 '댓글'은 온라인저널리즘에서 중요하다. 공감, 유감 등 독자의 비평을 넘어 오류 제기·정보 추가·새로운 해석 등 '주석적 생산'으로써 독립적 가치와 영향력을 갖는다. '댓글'은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공적인 시민참여다. 독자는 댓글의 품위를, 직업기자는 댓글의 참뜻을 지켜야 할 이유다."


이날 기자간담회 이후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충고했다. 딱히 누구를 겨냥한 건 아니지만, 박 기자에게 주는 조언이라 할 만 했다. 


그러니까, 이날 박 기자의 '토로에 가까운' 질문은, 더 나아가 문 대통령과 자유로운 문답이 오간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은 대통령의 답과 본래 형식만큼이나 '질문'의 질과 '질문자'의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아주 희귀한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답변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와 답변 자체의 수준은 역대 대통령 중 손에 꼽을 수준이라 할 만 했다. 떠올려 보라. 불과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신년 간담회를. 지난 9년간으로 확장시켜도 다를 바 없다.


'짜고 찌는 고스톱'이라 일컬어졌던 '문답'의 순서와 질문자, 답변까지 모두 정해져있던 '박근혜'식 기자간담회를. 독재자나 할 만한 기자회견으로 전 세계에 '쇼'를 생중계했던 그 목불인견의 순간들을. 심지어 '라디오 연설'이라는 '쌍팔년도' 형식을 도입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어떠했나. 그들 모두 '소통'은커녕 국민과 언론을 무시하는 작태를 보여줬다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다시, 문제는 '질문'이다. 박 기자는 다소 '튀는' 예일 수 있다. 하지만 더 나쁜 예도 있었다. 세 가지 질문을 장황하게 던진 뒤, 문 대통령이 "(질문) 하나만 선택해서 다시 한 번 해달라"고 하자, "대통령의 선택에 맡기겠습니다"라고 했던 <TV조선> 기자의 질문과 태도는 어떠한가. 애초 한 명당 하나의 질문이 주어진 '룰'은 살짝 비켜갈 수 있다. 


하지만, 마치 '센스'를 발휘했다는 것처럼 "대통령의 선택" 운운한 것은 거만하게 비춰지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질문 자체도 한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와 사드 문제가 뒤섞인 것이었다. 이런 질문이야말로 박 기자가 말한 "지지자들의 격한 표현"을 불러오는 자가당착의 태도라 할 만하다. 원칙은커녕 자신의 주장과 입장만을 관철시키려는 왜곡된 '기자정신'에서 비롯한 기이한 스탠스 말이다. 


"안 좋은 댓글"과 "격한 표현"을 불러오는 근본 원인이 바로 이러한 '태도'에서 비롯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기레기'라 공격당하는 이들이 스스로 돌아봐야 할 때 아니겠는가. 더 크게,  현안에 관련된 '정치외교' 분야에 질문을 집중시킨 청와대 기자단에 대한 지적도 없지 않았다. 1년에 한 번 있는 신년 간담회에 이른바 '팔릴 만한' 이슈나 현안 관련 질문만 쏟아낸 청와대 기자단을 향한 질책이었다. 이날 소셜미디어에 CBS 변상욱 대기자가 게재한 질책은 이랬다. 


"오늘 기자들은 '신년'기자회견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았고 청와대기자단이라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보입니다. 대통령이 왜 연초에 모든 기자들 앞에 서는지 생각을 해야…. 사람중심경제, 소득주도성장, 청년일자리와 인구구조, 일자리 질적 향상, 혁신 성장. 뭐하나 제대로 묻지도 않고."


"편하게 기사 쓰고 싶은" 기자여, 그만 두시라 


새해 첫날 기자들 만난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첫날인 1일 오후 청와대 상춘제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9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정지된 뒤 청와대 참모진과 탄핵심판 대리인단 외에 외부인을 만나는 것은 23일 만이다. [ 청와대 제공 = 연합뉴스 ]

▲  지난해 1월 1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제에서 출입기자단과 신년인사회를 겸한 티타임을 갖고 있다. ⓒ 연합뉴스


재차 강조하지만, 좋은 질문에서 좋은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변명은 있을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질문 자체'가 막혀버렸지 않느냐고. 그렇지 않다. 딱 1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마련했던 신년 간담회 자리야말로 단적인 예다.  


여타 기자회견보다 훨씬 간소했고 스킨십이 용이했던 그 자리에서, 청와대 기자단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국정 농단 사태의 전말이 밝혀지고,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였던 그때, 청와대 기자단은 과연 어떤 '질문'을 했었는가. 날카로운 질문은커녕 탄핵을 코앞에 둔 현직 대통령을 위로하고 환담하며, 장황했던, 그러나 사실은 하나도 없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 잔치를 경청하는 모양새 아니었던가. 


"그러나, 질문하지 않았던 언론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아직은 박근혜 정부였던 작년 1월, 박원호 서울대 교수는 자신의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기자들은 민의에 의해 선출된 적이 없어도 기자증 하나 목에 걸고 정부부처를 출입하고 고시에 합격한 적이 없어도 정책을 난도질하며 그 흔한 학위 하나 없어도 세상 만물에 대해 오지랖이 넓음을 자랑할 수 있다.'


대신 그러한 자격이 주어진 조건은 딱 하나, '대통령이건 민정수석이건 레이저 눈총에 끄떡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1년의 시간이 지나서 다시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을 보며 언론은 자신의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되는 하루였습니다."


손석희 앵커 역시 착잡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10일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을 통해 손석희 앵커는 질문하지 않았던 그간의 언론의 역할에 대해 중간자적 입장을 취했다. 이 역시 "그래야 편하게 기사를 쓸 수 있을 것 같다"던 일종의 후배 기자에게 던지는 충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 연말 <미디어오늘>이 실시한 여론조사는 두고두고 되새겨 볼 만 하다. '언론 분야 적폐 청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무려 80.4%가 '필요하다'는 답을 내놨다.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14.5%, '잘 모르겠다'가 5.1%였다. 압도적인 국민이 '언론적폐'에 대해 수긍하고 필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는 그래서 더 상징적이다. 이제는 자유롭게 언론의 질문을 듣고자 하는 대통령의 출현을 전 세계에 알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대통령에게 허접한 질문이나 쏟아내는, 무턱대고 적대적이거나 의도적인 왜곡이나 폄훼를 일삼는 언론이 설 지형은 점점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일부 보수언론이 띄우고 다수 매체가 받아썼던 '방중 홀대론'이 국민적 공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신년 기자간담회 자리는 보기 드물게 화기애애했다. 웃음꽃이 폈고, 기자들도 서로 질문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다시 정리해 보자. 어렵지 않다. "편하게 기사 쓰고 싶은" 기자나 언론은, 펜을 내려 놓고, 노트북을 접으시라. 그게 국민들을 위한 길이다. 촛불혁명을 거친 2018년은 그런 시대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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