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28487.html?_fr=mt2


국정원 댓글 제보 ‘오유’ 운영자 항소심 무죄… “3년만에 고통 끝나”

등록 :2018-01-19 05:01 수정 :2018-01-19 07:59


2013년 ‘국정원 여론조작’ 언론에 알렸다 기소

“정치개입 몸통 밝히겠다” 정식재판 청구뒤

사찰·도청 ‘공포의 시간’ 견뎌내

항소심 “공익 목적 정당행위” 1심 뒤집어

이씨 “촛불·탄핵 물결서 기여 확인받았다” 안도


2012년 12월 18대 대선을 앞두고 ‘셀프감금’ 논란을 일으킨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가 2013년 1월4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2012년 12월 18대 대선을 앞두고 ‘셀프감금’ 논란을 일으킨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가 2013년 1월4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수서경찰서에 들어서고 있다. 김봉규 <한겨레21> 기자 bong9@hani.co.kr


2012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관련 정보를 언론에 알렸다가 ‘개인정보 유출자’라는 멍에를 썼던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오유) 운영자 이호철(46)씨가 18일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선개입 사건 5년 만이자, 기소된 지 3년 만의 명예회복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오성우)는 이날 이씨에게 정보통신망법 위반죄로 벌금 30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 김하영씨의 닉네임은 불법적 정치관여와 조직적 범죄행위에 사용된 것”이라며 “(이씨 행위로) 김씨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된 정도는 경미하지만, 공무원의 범죄행위를 언론을 통해 알림으로써 보호되는 공적 이익은 매우 크다”고 판단했다. 공익적 목적에서 정당한 행위를 했다는 이씨 주장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이씨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로소 편안한 음색을 되찾은 듯했다.


이씨는 2013년 1월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씨가 11개 계정을 이용해 91건의 글 등을 ‘오유’에 게시하며 여론조작활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한겨레>에 알렸다. 김씨는 2012년 대선 직전 자신의 집을 찾아온 민주당 의원들과 대치하며 ‘셀프감금’ 상태에서 증거를 인멸한 당사자다.


검찰은 이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해놓고 뜸을 들이다 2년이 훌쩍 지난 2015년 2월에 그를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하지만 이씨는 국정원과 김씨를 증인석에 세우려고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국정원 정치개입’의 본질을 파헤치는 ‘불쏘시개’를 자청한 셈이다. 그는 “처음엔 벌금 내고 사건을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끝까지 다퉈서 ‘몸통’을 밝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통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증인으로 채택된 김씨가 번번이 재판에 나오지 않아 재판은 하염없이 늘어졌다. 2016년 초 자녀 양육을 위해 지방으로 터전을 옮긴 이씨는 한두 달에 한 번 서울을 오가는 일정을 계속해야 했다. 김씨는 정권이 바뀐 뒤인 지난해 8월에야 법정에 나왔지만, ‘댓글 활동’이 “대북 사이버 심리전 일환”이라는, 4년 전과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답만 내놨다. “조직적인 범죄행위가 밝혀졌는데 여전히 거짓말을 하더군요.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저렇게 믿고 있다면 더 안타까운 일이고요.”


1심에선 유죄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단독 명선아 판사는 지난해 10월 “이씨 행위로 국정원 댓글 수사가 방해받을 위험이 있었다”며 벌금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이씨로선 사찰과 도청의 공포 속에서 가슴을 졸여온 지난 세월이 시들어버리는 듯했다.


하지만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국정원과 경찰은 ‘오늘의 유머’를 종북 사이트라고 공격했고, 경찰은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진실을 은폐했다”며 “(애초) 수사에 협조하며 취재 요청에 불응하던 이씨 기대와 달리 국가기관이 진실을 은폐하는 상황에서 이씨가 언론 취재 요청에 응하는 방법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씨는 “20·30대를 쏟아부은 ‘오유’가 ‘종북 사이트’가 아니고, 촛불과 탄핵으로 이어지는 큰 물결에서 제가 작은 파도로 기여했다는 걸 확인받았다. 무죄가 확정되면 ‘오유’를 소통의 공간으로 만드는 데 열중하면서 마음 편히 살고 싶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s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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