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7136.html


66살 대학 재입학생 “국가가 뺏은 청춘 찾는 중”

등록 :2018-03-21 18:57 수정 :2018-03-21 20:50


외대 73학번 재일동포 이동석씨

75년 간첩 혐의로 보안사 끌려가

5년 징역뒤 35년만의 재심서 무죄

“국가가 보상했지만 마음 안풀려

꼭 졸업하기로 두 살 손자와 약속”


1975년 국군 보안사령부에 끌려가면서 학업을 중단했던 이동석(66)씨가 올해 한국외대 프랑스어과 4학년으로 재입학했다. 지난 14일 서울시 동대문구 한국외대에서 만난 이씨가 신입회원을 모집 중인 ‘외대 연극회’ 홍보부스 앞에서 멈췄다. 1973년 외대에 입학한 이씨는 연극회에 가입해 즐겁게 보냈던 시절을 회상했다.

1975년 국군 보안사령부에 끌려가면서 학업을 중단했던 이동석(66)씨가 올해 한국외대 프랑스어과 4학년으로 재입학했다. 지난 14일 서울시 동대문구 한국외대에서 만난 이씨가 신입회원을 모집 중인 ‘외대 연극회’ 홍보부스 앞에서 멈췄다. 1973년 외대에 입학한 이씨는 연극회에 가입해 즐겁게 보냈던 시절을 회상했다.


‘초급 프랑스어 회화(1), 프랑스 명작 읽기, 프랑스어 작문(1), 프랑스어 듣기와 발음 연습(1), 다문화 사회의 이해, 한국의 세계문화 유산, 사회봉사.’


대학 새내기 2018학번의 시간표가 아니다. 한국외대 프랑스어과 73학번 이동석(66)씨의 2018년 1학기 시간표다. 지난 14일 서울시 동대문구 한국외대 캠퍼스에서 만난 이씨는 새내기처럼 들떠 있었다. “첫 수업에서 교수가 출석 부르면서 경칭은 생략하겠다고 했는데, 저한테만 ‘이동석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 ‘다른 학생과 똑같이 해달라’고 말했는데도 ‘네, 선생님’이라고 하더라고요. 교수도 제가 어려운가 봐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인 이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한글 이름을 쓰겠다는 ‘본명 선언’을 하기 전까지 ‘호시우라 후미오’라는 일본 이름을 썼다.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고 한글 이름을 되찾은 이씨는 모국어를 배우러 1971년 모국 유학생 제도를 통해 한국에 왔고, 1973년 한국외대 불어과에 입학했다. 연극회 활동에 푹 빠져 공부는 미뤄두고 놀기 바빴던 이씨의 대학생활은 1975년 11월22일 국군 보안사령부(보안사·현 국군기무사령부) 수사관들이 하숙집에 들이닥치면서 막을 내렸다. 한 달 넘게 불법감금 된 채 구타, 물구나무서기, 볼펜으로 손가락 비틀기 등의 고문을 받았다. 1976년 12월 대법원은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과 간첩죄를 인정해 이씨에게 징역 5년형을 확정 선고했다.


1980년 풀려난 이씨는 행복했던 대학생활이 그리워 복학을 꿈꿨지만, 신군부의 군사쿠데타로 또 다른 독재정권이 들어선 한국의 현실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일본으로 돌아가 공장 등에서 일하며 삶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2015년 9월10일, 어렵게 결심한 재심에서 고문과 증거부족으로 무죄가 확정되고, 2017년 5월16일 국가손해배상 소송도 끝나자 이씨는 오랜 꿈을 다시 꺼냈다. “국가가 보상한다는 건 더는 묻지 말라는 건데,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회복되고 내 마음을 풀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었어요.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대학 시절이 생각났죠.”


이씨는 재심 무죄와 손해배상이 돌려주지 못한 ‘청춘’을 직접 찾아 나섰다. 어학연수를 위해 지난해 7월 프랑스로 떠난 이씨는 니스와 파리에서 6개월 동안 공부했다. 연수를 마친 뒤엔 재입학 준비를 위해 한국을 오갔다. 학과의 도움을 받아 4학년으로 재입학했지만, 기초 실력을 쌓으려 1학년 전공과목과 졸업에 필요한 교양과목을 골랐다.


“이 나이에 어학을 다시 배우는 게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저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거예요. 학교를 떠날 때는 내 의지가 아니었지만 내 결심으로 되찾고 싶은 걸 찾았어요. 귀도 잘 안 들리고 기억력도 나빠져서 공부가 어렵지만, 두 살 손자에게 꼭 졸업하겠다고 약속도 했습니다.” 개강 파티가 한창인 한국외대 앞에서 만학도 이씨가 43년을 가슴에 담아둔 학구열을 불태웠다.


글·사진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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