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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명박 국정원, 송영무 장관도 사찰했다

민간인 정보를 수집할 때 국정원은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자료를 모두 요구한다. 국정원의 ‘유능함’은 법치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초월적 권한으로 지탱되고 있었다.

천관율·김은지 기자 webmaster@sisain.co.kr  2018년 04월 17일 화요일 제552호


‘적폐’는 홀로 일하지 않는다. 팀으로 움직일 때 적폐도 완성된다. 고용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3월28일,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노동부 탈법 활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사IN>은 이 조사에서 드러났으나 발표되지 않은 상세한 사실을 단독으로 확인했다. 이를 통해 ‘적폐의 작동 메커니즘’을 그려낼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노동부를 ‘만만한 정보 출처’로 만들었다. 국정원의 무차별 정보 수집 방식은 사찰의 정례화라 부를 만했다. 이때 사찰을 당한 민간인 중에는 현 정부 국무위원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부를 국정 과제 선전과 야당 지도자 공격의 거점으로 써먹었다. 청와대는 노동부에다 상황실을 차려놓고 대야 공세를 진두지휘했고, 노동부 관료들은 공무원 정치 중립을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을 어겨가며 야당 비판 논리를 보고서로 만들어 여러 채널을 동원해 뿌렸다. 언론은 정부 어젠다를 기사로 쓰고 돈을 받았다. 기사 어디에도 정부의 협찬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는 탈법을 주도한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현숙 당시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을 수사 의뢰하도록 노동부에 권고했다.  


이렇게 해서 청와대-정보기관-관료-언론으로 이어지는 적폐의 지형도가 그려졌다. 지난 9년 동안 노동부 주변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탈법적 통치가 작동하는 원리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2008~ 2013년) 국가정보원(국정원)이 고용보험 데이터에 접근해 기업 303곳과 민간인 592명을 무더기 사찰한 사실이 확인됐다. 3월28일 고용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이하 개혁위원회)가 발표한 조사 결과다. <시사IN>은 개혁위원회 발표에서 익명으로 처리된 사찰 대상자와 대상 기업을 단독 확인했다. 사찰을 당한 민간인 중에는 송영무 현 국방부 장관과 류희인 현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차관급)이 있다. 기업 중에는 현대자동차가 포함되어 있다.


고용보험 자료를 확보하면 사찰 대상자의 고용보험 가입일자와 상실일자, 고용보험 납입액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사찰 대상자가 언제, 어느 회사에 취직하고 사직했는지, 급여를 얼마나 받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 특정 기업의 고용보험 자료를 확보하면, 임직원 전원의 관련 정보를 알 수 있다. 무더기 사찰이 가능하다.


3월28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이병훈 위원장이 국정원의 고용보험 자료 제공 요청 사실을 발표했다. ⓒ시사IN 이명익


2009년 6월16일 국가정보원(당시 원장 원세훈)은 노동부 장관(당시 장관 이영희)에게 ‘업무협조 의뢰’라는 제목으로 공문을 보낸다. 공문은 총 61명의 이름과 주민번호를 적시한 뒤 이들의 ‘사업장 이동 현황’을 요청한다. 요청 사유는 ‘국가안보 위해방지 목적 정보 수집’이다.


이 명단에 송영무(49○○○○-1○○○○○○)와 류희인(56○○○○-1○○○○○○)이 있다. 두 사람은 군인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중책을 맡았고, 현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중용되어 각각 국방부 장관과 행안부 차관급 직책을 맡고 있다. 송 장관은 노무현 정부 해군 참모총장이었다. 류희인 본부장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근무했다. 류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의 국가 위기대응 체계를 구축한 핵심 인사로 꼽히며, 문재인 정부에서도 재난관리 사령탑으로 중용됐다.


사찰 사실이 확인된 데 대해 송영무 장관 측은 “특별히 언급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 류희인 본부장은 “그해 말쯤 금융정보 조회 통보서, 통신기록 조회 통보서 등이 와서 막연히 국정원인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제 보니 그 시기에 나를 전방위로 사찰한 모양이다. 참으로 험난한 시기를 건너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국정원이 보낸 ‘업무협조 의뢰’ 문건의 수신자는 노동부 장관 외에도 둘 더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당시 이사장 정형근)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당시 이사장 박해춘)이다. 국정원은 고용보험 외에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자료도 한꺼번에 수집했다. 이번 개혁위원회 조사에서는 노동부 답신만 확인할 수 있지만,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자료도 같은 방식으로 국정원에 넘어갔을 가능성이 있다. 2009년 6월 공문만이 아니다. 국정원은 민간인 정보를 수집할 때는 거의 대부분 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 자료를 한 묶음으로 요구한다. 4대 보험 중 산재보험을 제외하고, 정규적으로 기록이 남는 보험 관련 정보를 모두 요청하는 것이다. 


기업 등 각종 단체를 대상으로 한 자료 요구도 전방위로 벌어졌다. 총 303개 기업이 자료 요구 대상이었는데, 그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를테면 2010년 10월과 11월에는 8개 업체에 대해 최근 2개월간 고용보험 상실자(즉, 회사를 떠난 사람) 전체에 대한 정보를 요청한다. 그중에 현대자동차와 쌍용자동차가 있었다. 


그 외에도 다수 대기업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방위산업체가 많다. 하지만 방위산업과 무관한 기업도 상당수 자료 제출 요청 대상으로 지목됐다. 법무법인, 인력 파견업체, 건축사무소, 전자부품 도매업체, 외국계 상사, 외국계 금융사, 여행사, 정치 기획사, 투자분석 회사, IT 기업, 지방정부 싱크탱크, 의류 수입사, 건설사, 출판사, 도시개발 사업사, 줄기세포 연구개발기업, 수입차 판매상, 대안학교 등이 자료 요청 대상이 되었다.


현대자동차·쌍용자동차에서도 자료 받아


개혁위원회 관계자는 “국정원이 기업을 특정해 고용보험 자료를 받아가면 그 기업 임직원 모두의 정보가 넘어가게 된다. 이런 요청을 이토록 전방위로 했다는 사실을 특히 심각하게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제기된 의혹에 대해 현 국정원 대변인실은 “고용노동부의 확인 요청이 오는 경우 이를 충실하게 확인해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라고 답변했다.


이명박 정부 국정원은 노동부에 ‘업무협조 의뢰’를 해서 당시 민간인이던 송영무 국방부 장관(위)과

류희인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의 ‘사업장 이동 현황’ 정보를 파악했다. ⓒ행정안전부 제공


개혁위원회 조사 결과는 국정원이 일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확인시켜준다. 각 기관에 흩어진 개인정보를 법원이 허가하는 영장 없이 앉은자리에서 모을 수 있기 때문에, 국정원은 정부기관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정보 수집 능력을 갖추게 된다. 노동부는 국정원 관점에서 보면 정보 출처의 한 조각일 뿐이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정보를 거리낌 없이 요청한다는 사실도 이번에 확인됐다. 이 외에 또 다른 정보 출처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많은 권력자들을 유혹했던 국정원의 ‘유능함’이란 법치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초월적 권한으로 지탱되고 있었다. 


국정원이 요구하면 부처에서는 별다른 마찰이나 검증 절차 없이 자료를 내어준다. 왜 마찰도 검증도 일어나지 않을까. 국정원은 자료를 요청하면서 ‘국가정보원법 제3조 1항 및 제15조’를 근거법령으로 든다. 3조 1항에서 국정원은 대공, 대정부 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 범죄조직 등의 업무를 위해 국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5조는 직무 수행에 필요한 지원을 다른 국가기관에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국정원이 요청하는 자료가 국정원법 3조 1항에 부합하는지를 밝힐 의무가 없다. 국정원의 ‘업무협조 의뢰’는 요청 사유가 지극히 간단하다. “국가안보 위해방지 목적 정보 수집.” 정보 수집 사유를 밝히지 않아도 사실상 무제한 접근이 가능하다. 


이런 논란이 있을 때마다 국정원은 “대공 혐의가 확정적인지를 정보를 보기도 전에 판단해 수집할 수는 없으며, 문제가 되는 정보 수집은 내부 감찰로 걸러진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정보 수집이 적절했는지를 결정할 권한이 국정원에 있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국정원은 국내 정보 수집과 분석을 담당하던 7국과 8국을 폐지하는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일단 민간인과 민간 기업에 대한 전방위 자료 요구는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을 장려하는 정부가 들어선다면, 국정원의 무차별 자료 요청과 정부기관의 무기력한 자료 제출은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 결국 국정원에 지나치게 포괄적인 권한을 준 국정원법 제3조 1항을 바꾸는 것이 해법으로 꼽힌다.


국회에는 국정원 출신인 김병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하고 민주당 의원 다수가 동참한 국정원법 전부개정안이 제출되어 있다. 사실상 집권당 당론에 가까운 안이다. 이 개정안에서는 우선 국가정보원을 ‘안보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도록 규정한다. 안보정보원의 직무 범위는 일일이 열거하는 형식으로 제한한다. 이렇게 되면 국정원이 ‘국가안보 위해방지 목적 정보 수집’이라는 두루뭉술한 이유로 자료를 요청하기는 까다로워진다. 자유한국당은 이 법에 포함된 대공수사권 이전 조항 등에 반발하고 있다. 정보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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