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고도 낯뜨거운 '윤석열 단독'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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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고도 낯뜨거운 '윤석열 단독'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이재용 선고' 후 언론사에서 벌어진 일

21.01.20 20:36 l 최종 업데이트 21.01.20 20:36 l 하성태(woodyh)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파기환송심에서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삼성과 재계가 충격에 빠진 모양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보수‧경제지를 중심으로 탄식과 우려가 쏟아졌다.

그 와중에 19일 <국민일보>의 <윤석열 "야, 그때 너희들 밤새고.." 이재용 선고 후 전화>란 '단독' 기사는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 부회장이나 삼성이 중심이 아닌 윤석열 검찰총장의 동정이 메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기사가 주목한 건 윤 총장이 몇몇 일선 검사와 나눴다는 전화 통화 내용이었다.

 

'국정농단 특검'의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실형 선고 소식을 듣고 당시 파견 검사들에게 전화해 노고를 치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락을 받은 검사들은 검찰총장으로서가 아니라 4년 전 동고동락했던 동료로서의 격려로 여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윤 총장이 당시 20명의 파견 검사 중 일부에게 전화로 건넨 통화 내용을 소개했다. 이들을 "고생했다"고 치하한 윤 총장이 4년 전을 회고하며 "야, 그때 너희들 진짜 밤새고 그랬던 게 기억이 난다", "그렇게 고생한 게 4년 후에 이렇게 결론이 났구나"라고 격려했다는 것이다.

 

▲  1월 19일자 국민일보 기사. <[단독] 윤석열 “야, 그때 너희들 밤새고…” 이재용 선고 후 전화> ⓒ 국민일보 화면캡처

 

"고생했다"는 윤 총장 격려전화 기사의 효과

여러모로 눈길을 끄는 기사였다. 먼저, 이 부회장 구속을 둘러싼 국정농단 특검팀과 윤 총장의 역할과 노고에 대한 치하. 해당 기사 말미에는 당시 특검팀에 근무했던 검사가 "어떻게 국정농단 사태를 우리가 책임지고 정리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시절"이라고 한 회고의 말을 전했다.

검찰이 박근혜‧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고, 이 부회장의 실형 선고 역시 이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논조로 읽기에 충분한 기사였다. 검사들이 우리 사회를 책임지고 주도한다고 자부한다는 평소 법조계 안팎의 평가와도 일치하는 '자평'이기도 했고. 하지만 해당 기사엔 국민들의 촛불이 애초 특검팀의 존재를 가능케 했다는 '진실'은 빠져 있었다.

<국민일보> 보도 이후 <조선일보>와 <뉴스1>이 해당 내용을 잇따라 보도했다. 보기에 따라, '윤석열 순댓국'과 '파평 윤씨 대망론'과 같이 최근 일부 보수‧경제지가 주력 중인 '윤석열 용비어천가'의 일환으로 비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관련기사: 윤석열 킹메이커들 http://omn.kr/1rp9n). 다른 점이 있다면, '윤석열 대망론'에 동참하던 여타 언론이 이 부회장 실형 선고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이, 이들 매체들은 국정농단 특검팀과 윤 총장과의 연결고리를 틈새 공략했다는 차이라고 할까.

  

▲  윤석열 검찰총장. ⓒ 연합뉴스

 

이재용이 확보했을지 모를 백신?

헌데, 일관성이 없다. 윤 총장이 특검팀과 고생해서 기소했다던 이 부회장은 결국 감옥에 갔다. 윤 총장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대다수 보수‧경제지들은 한국경제의 악영향을 우려하고 삼성의 주가와 향후 투자를 걱정하는 장탄식을 토해내는 중이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기사량이 포털 메인을 뒤덮었다.

이 부회장 구속 이틀 만에 삼성전자 주가가 반등했다는 소식은 외면하고, 그야말로 '최소 형량'으로 감형된 판결의 이면은 눈 감으면서 말이다. 급기야 <조선일보>는 특검 수사의 정당성을 훼손하며 '정치보복 프레임'을 들고 나오기까지 했다. 같은 날 <이재용 또 구속 수감, '교도소 담장 위'가 숙명인 한국 기업인>이란 사설을 통해서였다.

 

기업이 현재 정권의 요구를 거절하면 당대에서 보복을 걱정해야 하고, 거절하지 않으면 다음 정권에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곡예를 해야 하는 게 대한민국 기업의 숙명이다.

압권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기관지라 일컬어지는 <한국경제>의 단독 기사였다. 같은 날 <한국경제>는 <"이재용, 코로나 백신 확보 위해 출국 앞두고 있었다"> 기사에서 이 부회장이 파기환송심 재판 이후 정부 특사 자격으로 코로나19 백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유럽‧중동 출장을 계획 중이었다고 보도했다. 출처는 "법조계 및 산업계"와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였다.

기사 내용과 논조를 풀이하자면, 이번 판결이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전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해외 출장까지 계획하고 있던 이 부회장의 발목을 잡았다는 힐난 정도라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삼성 걱정, 재벌 걱정에 앞장서온 보수‧경제지들 중 군계일학으로 꼽을 만한 '이날의 보도'였다.

이후 해당 기사를 받아쓴 타 매체 보도가 잇따랐고, 20일 <동아일보>는 <이재용, 백신 확보 위해 UAE 갈 예정이었다>라는 단독 보도를 이어갔다. 정부의 확인을 거친 보도는 없었다. 역시 '재계 관계자'가 취재원의 전부였다. '이재용 용비어천가'를 이어오다 패닉에 빠진 언론들. 이 부회장 구속을 둘러싼 작금의 언론 보도 행태가 이 정도였다.

(질병관리청은 20일 <오마이뉴스>에 "이재용 부회장 해외 출장 관련된 것은 질병관리청과 논의된 바가 없다. 출장 여부도 논의가 되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가 공식입장이라고 전했다.)

'친삼성', '친재벌'에 경도된 언론들이 그 재벌의 정점에 선 삼성 이재용 부회장을 때려잡는데 밤을 새우며 고생했다던 윤석열 총장에 대한 '용비어천가'를 부른다. 또 그 언론들이 이 부회장의 실형 판결로 인해 코로나19 백신을 덜 확보하게 됐을지 모른다는 삼성 및 재계발(發)(로 의심되는) '소설'을 그대로 실어준다. 이쯤 되면, 오락가락 비일관성을 넘어 가히 자기분열 수준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