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v.media.daum.net/v/20180620140013321
[취재파일] 국산 무기 '쪽박' 깨는 방사청.."진화적 개발은 없다!"
김태훈 기자 입력 2018.06.20. 14:00
작년 10월 방사청 국정감사에서 진화적 개발론이 화제가 됐습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무기 체계를 만들 수 없으니 어느 정도 수준까지 개발한 뒤 소량씩 양산하면서 결함을 잡아가는 방식입니다. 무기 선진국들도 하나같이 진화적 개발 방식으로 무기를 만듭니다. 우리나라만 유독 완성형 개발 방식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작년 방사청 국정감사에서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일갈했습니다. “토마호크, 아파치 같은 명품도 최소 성능만 맞추고 초도 배치한다.” “미국 뿐 아니라 심지어 북한도 최소 60% 성능만 나오면 배치한다.” “방사청이 무기 획득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10년 또 방산비리에 시달리게 된다.”
다른 의원들도 같은 의견을 내자 방사청이 마음을 바꾸는 듯 했습니다. 전제국 방사청장은 국정감사에서 “기존 법에도 진화적 개발 규정이 있다”며 “앞으로 진화적 개발방식을 적극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말뿐이었습니다. 진화적 개발의 실천은커녕 완성형 개발도 툭하면 발목 잡는 형국입니다. 다른 나라가 진화적 개발 방식을 적용해 국산 무기를 도입하겠다고 해도 은근히 방해공작을 펼치고 있습니다. 국산 밀어내고 들어온 외국 무기는 전력화 일정을 못 맞춰도 눈 감아 줍니다. 국산 전차 K-2용으로 개발된 국산 변속기 이야기입니다.
● 누명 벗은 국산 변속기
국산 전차 K-2 흑표
K-2용 국산 변속기는 S&T중공업이 개발을 맡았습니다. 양산 내구도 평가에서 국산 변속기는 전차의 수명주기인 9,600km를 잔고장 한번 없이 가동돼야 하는데 7,110km에서 볼트 한 개가 부러졌습니다. 개발 평가를 통과해 전력화 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양산 평가에서 2,490km 미달한 겁니다.
수명주기 9,600km는 전차가 일생 동안 달리는 거리입니다. 방사청의 기준은 수명 주기 동안 잔고장도 발생하면 안 될 정도로 엄격합니다. 단번에 그런 명품을 내놓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국회 국방위 위원들이 진화적 개발을 촉구했던 겁니다.
작년 4월에는 국산 변속기를 둘러싼 사건 하나가 터졌습니다. 7,110km 달리다 볼트가 부러져 봉인된 국산 변속기를 개발사인 S&T중공업 기술진이 손을 댄 겁니다. 원인 분석을 위해 봉인을 풀고 변속기를 점검한 건데 방사청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며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때 S&T중공업측은 “부러진 수입 볼트를 외국 제작사에 보내 원인 규명을 하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며 “볼트가 부러진 원인을 조기에 규명한 뒤 개발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자체 조사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방사청은 “적극적인 관리 감독을 통해 업체의 불법적인 행위를 조기에 적발했다”고 자평하며 귀를 닫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국산 변속기 개발은 사실상 중단됐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국산 변속기 대신 독일 변속기로 국산 전차 K-2를 양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반전이 벌어졌습니다. 방사청이 봉인 해제했다며 고발한 S&T중공업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겁니다. 개발을 중단시킨 유력한 빌미를 제공한 방사청의 고발은 법적으로 무력해졌습니다. 이제 와서 방사청은 “무기체계 개발의 어려움과 그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며 “K-2 전차의 심장에 국산 변속기가 탑재될 수 있도록 개발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입장을 냈습니다.
방사청의 몽니로 국산 변속기 업체는 1년 이상 시간을 버려야 했는데 외국 변속기 업체는 방사청의 배려로 1년 이상 시간을 벌었습니다. 방위사업추진위가 2020년까지 100여대 전력화하는 K-2 전차의 변속기로 선정한 독일 변속기 이야기입니다. 회사 사정 상 2020년 전력화 시점을 못맞춘다고 하자 방사청은 1년을 더 얹어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더 달라면 더 줄 태세입니다. 가혹한 내구도 평가 면제에 이어 또 한번의 특혜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 국산 쪽박 깨는 방사청
방사청이 내친 국산 변속기가 뜻밖에도 터키의 구애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 5월 말에는 터키 방사청과 방산업체 주요 인사들이 방한해서 전차와 변속기, 엔진 관련 업체를 두루 살펴보고 갔습니다.
국산 전차 개발 관계자는 “터키 측은 국산 변속기가 내구도 평가에서 7,110km를 고장 없이 달린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며 “수명주기 9,600km를 못달려도 그 정도면 당장 실전 투입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5월초 방한했던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국산 변속기 수입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터키가 원하는 변속기의 수량은 우리 군 소요의 몇 배입니다.
국산 변속기의 터키 수출 가능성이 높습니다. 넘어야 할 산이 있습니다. 방사청입니다. 방사청 입장에서는 방사청이 실패로 규정한 국산 변속기가 해외에 당당히 수출되는 장면이 영 불편합니다. 방사청 핵심 인사가 터키 측에 “국산 변속기는 아직 성능이 입증 안됐다(not qualified yet)”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국산 변속기를 터키에 팔지 못하겠다는 뜻입니다. 터키 현지에 파견된 방산 관련 공무원은 “같은 공무원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난처한 방사청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대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완성형 개발이 아니면 용납을 안하고, 애써 수출길 뚫으면 방해하고… 국산 무기 개발에 진화형 개발을 적용하겠다는 방사청장의 작년 국정감사 발언이 참 의미 없습니다. 진화형 개발, 완성형 개발을 떠나 방사청의 갑질입니다. 그러니까 방사청 폐지 여론에도 방사청 편들어주는 데를 찾기 어려운 겁니다.
김태훈 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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