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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명령 거부' 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 5·18유공자 결정
류형근 입력 2018.07.12. 11:39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국가보훈처 등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면 당한 고(故) 이준규 전 목포경찰서장이 5·18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다고 12일 밝혔다. 2018.07.12. (사진=故 이준규 목포경찰서장 유족 제공)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면 당한 고(故) 이준규 전 목포경찰서장이 5·18민주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국가보훈처와 이 서장의 유족은 12일 이 서장이 최근 심의를 거쳐 민주유공자로 결정됐으며 유족에게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 서장은 목포경찰서장으로 재직하면서 신군부의 강경진압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은 13명의 경찰 간부 중 유일하게 파면을 당했다.
신군부는 이 서장이 "외곽저지선 보호와 자위권 행사에 소홀했다"고 평가하고 이 서장을 구속 수감했다.
이 서장은 당시 신군부의 총기 사용을 통한 시위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
안병하 전남경찰국장의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지시에 따라 경찰 병력을 경찰서에서 철수 시켰다.
이와 함께 무기가 작동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방아쇠 뭉치를 제거한 뒤 선박에 실어 목포 인근의 섬으로 나눠 옮겼다.
이 서장의 행동은 신군부에 보고됐고 5·18 직후 계엄사령부에 구속돼 3개월 가까이 옥고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고문까지 당한 이 서장은 군사재판을 받고 석방됐다.
목포시민들은 이 서장을 석방하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던 이 서장은 지난 1985년 58세의 나이로 작고했으며 현충원과 국립5·18민주묘지가 아닌 천안공원묘원에 안장됐다.
이 서장의 사위인 윤성식씨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장인이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1993년도에 보상 신청을 했던 기록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수십년의 시간이 흐른 뒤 장인의 행적이 조금씩 알려져 다행이다"며 "유공자로 선정됐기 때문에 곳곳에 있는 자료를 찾아 보강한 뒤 국가로부터 순직 인정 등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hgryu7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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