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62719
구경삼아 간 백화점에서 뛰쳐나온 동독인, 왜냐면
[동독인의 독일통일 이야기 ②] 독일 통일, 지속의 코드와 단절의 코드
18.08.16 10:11 l 최종 업데이트 18.08.16 10:11 l 글: 강구섭(kanggusup) 편집: 김지현(diediedie)
▲ 서베를린의 번화가에 위치한 서부백화점(KDW).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동베를린 주민이 구경삼아 들렀다가 물건 값을 보고 놀라 황급히 나왔다는 곳이다. ⓒ 강구섭
동·서독 통일 전, 서베를린의 중앙역 기능을 담당했던 동물원역 인근의 번화가를 걷다 보면 독일어 발음으로 카데베(KDW, Kaufhaus des Westen의 약어)라는 이름의 백화점이 눈에 띈다.
한국어로 대략 서부백화점이라고 옮겨지는, 문을 연 지 100년이 훨씬 넘은 카데베는 베를린뿐 아니라 전 독일에서 손에 꼽히는 고급백화점이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후 경계를 넘어 '건너 편'으로 넘어온 동베를린 주민들이 구경삼아 카데베에 들어갔다가 물건에 붙어 있는 엄청난 액수의 가격표를 보고 화들짝 놀라서 성급히 나왔다는 곳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베를린에서 생활하며 카데베 앞을 지날 때마다 종종 들었던 생각은 독일이 통일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카데베는 여전히 서베를린의 느낌이 드는, '서부백화점'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100년이 넘는 역사가 보여주듯, 베를린 장벽으로 상징되는 동·서독 분단 이전부터 있었던 곳이기에 백화점의 이름이 동·서독 분단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동·서독 통일을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비록 오래전에 식기는 했지만 벅찬 가슴으로 맞이한 통일과 함께, 동서를 가르던 베를린 장벽도 역사의 볼거리가 된 상황에서 '백화점 이름을 동·서독 통일, 통합의 의미가 담긴 이름으로 바꾸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언젠가 7~8명의 박사과정생이 모인 수업시간에 카데베에 관한 내 의견을 이야기하자 다들 생각해보지 않았던 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뭐든 쉽게 바꾸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이곳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알아가면서 그들의 태도가 차츰 이해됐다. 정당명이나 기업 상호, 심지어 수십 년간 가지고 있던 자기 이름까지, 필요하면 무엇이든 바꾸는 게 익숙한 사회에서 살다온 나의 시각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조금 새로운 것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분단 이전부터 존재했던 카데베가 지금도 여전히 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 물론 분단과 직접 관련된 예는 아니지만 - 통일과 함께 동·서독 주민이 직면했던 상황의 일면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통일과 더불어 동·서독 공히 새로운 역사의 시대를 맞이했지만 동독인의 삶에는 이전 삶의 방식으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하는 급격한 변화(단절의 코드)가 발생한 반면, 서독인의 경우는 이전의 삶이 거의 변화없이 지속된 상황(지속의 코드)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독인들이 겪어야 했던 상황을 나타내는 단적인 표현으로 "통일 후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새로운 사회체제로 내던져졌다"라는 말이 흔히 사용된다. 비록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현실화된 사회주의 실험공간 속에서 그에 적합한 방식으로 살아가던 동독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주어진 새로운 체제와 그것이 요구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과 함께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체제에 직면
통일과 함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회체제가 이식되면서 이에 따른 새로운 삶의 양식이 동독 지역에서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이식된 체제의 특성이 반영된 질서, 규율, 도덕 등이 삶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새로운 가치관으로 제시됐고, 그에 맞는 정치·경제적 능력이 새로운 사회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역량으로 개인에게 요구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에서 살아왔던 동독 주민에게 삶의 방식의 일대 전환을 요구했다. 세상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해도 개인의 삶의 방식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독주민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냉혹한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직업생활과 관련, 통일 후 80% 이상의 동독인이 이전 직업을 포기하고 새로운 직업을 갖거나 재교육을 받아야 했다는 것은 동독인들이 겪어야 했던 상황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통일 초기에 동독 지역에 도입된 8만여 개에 달하는 법 조항은 동독인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고, 대규모 실업상황에서 창업 등 경제적으로 무엇이든 시작하고 싶어도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정보·지식·경험이 충분치 않은 동독인들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물론 뭔가를 할 수 있는 자본이 없다는 것도 결정적 문제였지만.
임금이 오르기는 했지만 껑충 뛰어오른 집세,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종류의 (의료)보험,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소득신고 등 바뀐 환경이 가져온,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은 통일 초기 동독인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새로운 체제가 가져온 수많은 변화는 공적 영역뿐 아니라 개인 일상의 소소한 영역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통일과 함께, 이전의 일상을 채우고 있던 익숙했던 많은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고 낯선 서독의 것들로 그 자리가 채워졌다. 버터, 초콜릿크림 등 매일 아침 식탁에 오르던 정겹고 낯익은 음식들이 상점진열대에서 사라지면서 서독 상품이 빈자리를 대체했고 낯선 독일어를 구사하는 서독 출신의 앵커가 구동독 지역방송, TV 뉴스 화면에 등장했다. 주민투표를 거치기는 했지만 살던 동네, 거리의 이름이 바뀌었고 새로운 우표, 버스표 등 일상에서 바뀌지 않은 것을 찾는 게 더 힘들었다.
이전에 회자되던 농담마저 의미를 상실하는 등 하루아침에 낯설게 바뀐 일상의 상황에서 동독인들은 적지 않은 심리적 공항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통일이 가져온 자유와 풍요, 그러나
▲ 2000년대 초반 동베를린의 어느 거리에서 만난 구동독의 국민차 트라비 ⓒ 강구섭
통일과 함께 변화된 환경이 개인의 삶에 가져온 긍정적 변화를 물론 무시할 수 없다. 오전 10시가 넘으면 빵가게의 빵이 동이 나는 것이 일상이었고, 자동차를 구입하려면 10년 이상 기다려야 했던 동독 시절의 만성적 부족에서 벗어나 동독인들은 통일이 가져온 넘치는 물질적 풍요를 즐길 수 있었다.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일부 계층에게 고등교육, 직업의 기회가 제한되는 등 크고 작은 제약이 존재했던 동독 시절과 달리 능력에 따른 자기실현의 기회가 주어지는 새로운 사회가 많은 이들에게 기회의 공간으로 인식됐다. 무엇보다 이전과 확연히 구분되는 정치적 자유, 의사표현, 여행의 자유 등 통일이 동독인들에게 많은 것을 가져왔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삶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환경은 하루아침에 바뀌었지만 개인의 인식, 행동 양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것을 가져왔지만 또 그만큼 낯설게 바뀐 환경 속에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지식·생각·생활양식 등이 하루아침에 가치를 상실한 가운데 짧은 시간 내에 모든 것을 새로 익히고 배워야 하는 과정에서 동독인들은 극심한 혼란을 겪어야 했다.
개인의 자유가 제한돼 있었지만 나름대로 운영되었던 사회주의 체제에서 안정적 삶을 살아오던 동독인들에게 오리엔테이션의 기회도 없이 다가온 새 체제는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던 동독사회는 개인의 삶에 적지 않은 안정감을 보장했고 크고 작은 부족은 있었지만 적어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없었다. 반면, 통일과 함께 직면한, 자유와 풍요가 주어졌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새로운 체제에서 동독인들은 미래에 대한 적지 않은 불안을 느꼈던 것이다.
구동독 인권운동가 출신의 전 연방대통령인 요하임 가욱은 2005년 베를린에서 있었던 한 강연회에서 통일 후 동독인이 느꼈던 감정을 "자유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설명했다. 갑자기 주어진 삶의 자유에 동반된 개인의 책임이 동독주민에게는 큰 두려움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깊은 자국을 남긴 단절의 경험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이 어느덧 한 세대가 지났고 이제는 서독으로부터 이식된 체제가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동독인들이 겪어야 했던 극단적 단절의 경험은 그만큼 그들의 기억에 깊은 자국을 남겨 놓았고 한 세대가 지나가는 지금도 동독인은 여전히 그 여파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단절의 코드와 지속의 코드"로 설명할 수 있는 동서독 주민의 통일 후 삶의 모습은 남과 북의 하나됨이 어떤 방식,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변화를 피할 수 없지만 어느 한쪽의 일방적 변화, 단절을 통한 시작이 아닌, 긴 호흡으로 양쪽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시작. 남과 북의 하나됨이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 아닌 상생의 시작이 되도록 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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