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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신라·고려 이름 딴 지명 많은 까닭은?

위셴룽(喻顯龍), 베이징대학교 국제관계학원 박사과정 2018-09-23 05:25 


'실크로드 출발점' 취안저우, 신라 이주인들 흔적 많아


(사진=인민화보 제공)


중국 푸젠(福建)성에 위치한 취안저우(泉州)는 당·송 시기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대외 교류 도시 중 하나로,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는 '빛의 도시'라고 불렀다. 


취안저우는 각국과 각 민족의 눈부신 문화가 밀집된, 고대 중국에서 가장 국제화된 대도시 중 하나였으며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해상 실크로드 출발점'으로 지정됐다.


한반도에 위치했던 신라는 일찍부터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취안저우와 교류했다. 


중국의 학자 예언뎬(葉恩典)은 취안저우에 있는 신라와 고려 유적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바 있다. 


그는 취안저우에 '신라'와 '고려' 이름이 붙은 지명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난안(南安)현의 '신라촌', 취안저우 시내의 '고려항', 융춘(永春)현의 '고려산'과 '고려촌' 등이다. 


또한 '신라송(新羅松)', '고려채(高麗菜)' 같은 식물과 채소도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언뎬은 취안저우 난안현의 신라촌을 직접 방문해 이 곳에 있는 신라사원의 역사를 발굴 및 분석했다. 


그는 조선반도의 신라사원과 비교하여 취안저우 난안에 있는 이 신라사원은 취안저우로 이주한 신라인들이 건설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5대10국 시기로 진입하자 푸젠성은 지방 할거정권인 민국(閩國)이 통제하게 됐다.  


민국은 신라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고, 신라는 여러 차례 사신을 파견해 민국에 선물을 증정했다. 


송나라 때 육상 실크로드가 거란과 서하에 의해 막히자 송나라는 해상 무역을 적극 개척해 취안저우의 지위는 단숨에 높아졌고 당시 동아시아 최대 무역항으로 성장했다. 


북송 시기 취안저우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당시 민난(閩南)지역에서 많이 생산됐던 여지(荔枝)가 외국인에게 큰 사랑을 받자 송나라 사람들은 여지를 염장 보존해 고려와 일본, 류큐, 아라비아반도 등에 판매했다. 


또한 수많은 신라 고승들이 취안저우를 방문했다. 그들은 이 곳의 고승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불법(佛法)을 공부했다.  


당나라 말기 취안저우 불교의 대가인 의존법사(義存法師) 휘하에는 신라에서 유학온 승려가 많았다.  


신라의 현눌선사(玄訥禪師)는 취안저우 복청사(福淸寺)에서 부처의 도를 넓혔고, 영조선사(靈照禪師)는 항저우(杭州) 용화사(龍華寺)에서 불법을 전파했으며, 대무위선사(大無爲禪師)는 신라로 돌아가 포교 활동을 했다.  


취안저우와 가장 깊은 관계를 맺은 사람은 현눌선사이다.  


그는 취안저우 복청사를 창시하고 취안저우에서 30년 동안 불법을 전파하다가 취안저우에서 입적했다.  


더 신기한 일은 5대 시기 취안저우 초경사(招慶寺) 고승들이 편찬한 '조당집(祖堂集)'이 북송 초기 전쟁 등으로 유실됐다가 1912년 한국 경상도에 위치한 해인사에서 일본 학자에 의해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는 불교 역사의 신기한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취안저우 사람들도 조선반도를 많이 방문했다. '송사(宋史)'에는 고려의 왕경(王京, 현재의 개성)의 풍경이 묘사돼 있다. '왕성에는 중국인이 수백인데 대부분 민국 사람이다. 배를 타고 장사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서술돼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민국 사람이란 대부분 취안저우 사람을 가리킨다. 


조선반도로 이민간 취안저우 사람도 많았다.  


예를 들어 취안저우 사람인 채인범(蔡仁範)은 북송 초기 고려로 이주해 고려에서 관직을 했다. 고려 국왕은 그를 예빈성 낭중에 봉했다가 나중에는 상서로 승진시켰다. 


그는 고려의 광종, 경종, 성종, 목종 4대를 보필했다. 채인범은 고려 귀족 여인 2명을 부인으로 맞아 많은 자녀를 두었다. 그의 아들들은 모두 고위 관직에 올랐고 딸들은 명문가로 시집을 가 집안이 크게 흥했다.  


채인범의 묘지명 비석에는 그의 일대기와 자손들이 그의 업적을 칭송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현재 이 비석은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취안저우와 조선반도의 왕래는 고대 해상 실크로드에서 중·한 양국의 무역·문화 교류의 축소판이다.  


이제 중국은 발전의 신시대로 진입했고, '일대일로(一帶一路)' 이니셔티브를 인정하고 참여하는 나라와 지역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포용의 도시'인 취안저우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인의 여행과 투자, 비즈니스를 환영한다. 


※본 기사는 중국 인민화보사에서 제공하였습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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