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64341.html?_fr=mt2
애초 한국당 쪽이 제안한 GP 철수, 이제 와서 위험하다고?
등록 :2018-10-03 22:27 수정 :2018-10-04 10:57
2005년 한나라당 박진 의원 제안, GP 철수 13년만에 실현됐는데도 후신 한국당 ‘무장해제’ 반발
휴전선 따라 10여개 사단 일렬횡대로 남침·간첩침투 탐지 방어한다지만 효과 떨어지고 개전 땐 큰 병력 손실
GP 철수는 국방 체질개선 골든타임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나온 김에 인구감소·첨단기술 발달에 맞춰 군비통제·국방개혁 논의 물꼬터야
한국전쟁 격전지였던 강원 양구 북쪽 ‘피의 능선’ 근처 비무장지대와 GP. 사진 육군본부 홈페이지
“남북간 GP의 상호 철수를 추진할 때가 됐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GP 철수가 시기상조이며, 군사적으로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현대전의 성격을 놓고 볼 때 GP의 군사적 기능은 이미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다. GP의 조기경보 기능과 상대방 동태 감시 기능은 첨단·과학화된 군 장비를 통해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으며, 특히 미래전의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과학화된 장비로 이전해가는 것이 옳다. 인공위성을 통해 수백 ㎞ 밖에 있는 적의 움직임을 안전하게 살필 수 있는데, 굳이 젊은 장병들에게 위험을 무릅쓰며 지켜보라고 할 이유는 없다.…논의의 핵심은 GP의 숫자가 아니다. ‘비무장지대를 비무장화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이다. 이 점만 분명히 한다면 논의가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남북간 군사적 신뢰는 물론 상호군축과 평화구축의 시험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을 누가 썼을까? 최근 청와대나 국방부 당국자가 ‘군사분계선 감시초소(GP ) 철수’를 설명하는 글로 보인다. 하지만 이 글은 2005년 7월 박진 한나라당 의원(국회 국방위원)이 한 월간지에 기고했다. 기고의 제목은 ‘남북한 GP 상호 철수해 비무장지대 비무장화하자’였다.
한나라당의 후신인 자유당국당은 요즘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에서 비무장지대 평화지대화 방안의 하나로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상호 1㎞ 근접한 지피 11개를 올해 내로 시범 철수하기로 한 합의를 겨냥해 ‘무장해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피 상호 철수 아이디어는 13년전 한나라당에서 나왔다. 당시 한나라당의 제안으로 지피 상호 철수가 공론화됐고, 우리 군은 2005년 7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3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실무대표 회담에서 비무장지대 내 지피 공동철수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북한이 부정적 반응을 보여 무산됐다. 결과만 놓고보면 지피 철수는 13년전 자유한국당의 제안이 이제 받아들여진 것이다. ‘지피 철수=무장해제’라는 자유한국당을 두고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나올 상황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왜 지피 철수를 꺼냈을까? 2005년 6월 경기 연천 28사단 지피에서 김아무개 일병의 총기 난사로 12명의 군인들이 죽고 다쳤다. 한나라당은 총기 참사의 원인으로 전방 부대의 열악한 근무 여건을 꼽았다. 지피, 일반전초(GOP) 장병들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루 종일 경계와 작업에 투입되고 고립감,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지피 총기 사고 재발을 막으려면 장기적으로 휴전선에 감시관측장비를 갖추고 휴전선 경계부대를 뒤로 배치하고 기동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게 박진 의원 주장이었다.
육군은 비무장지대 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을 위한 지뢰제거작업을 2일 강원도 철원군 5사단 인근 비무장지대 수색로 일대에서 개시했다. 장병들이 지뢰탐지 및 제거작업을 벌이고 있다. 철원/사진공동취재단
지피, 지오피 근무 환경이 열악한 것은 큰 틀에서 보면 국군이 채택한 선형방어(linear defense) 전략 때문이다. 선형방어전략은 휴전선을 따라 10여개 사단병력이 늘어서는 것이다. 지피, 지오피는 선형방어의 가장 선두에 있다.
지피, 지오피의 군사적 쓰임은 대략 세가지다. 북한군 남침 조기경보 기능, 남침 시 1차 방어, 북한군 국지도발과 간첩침투 대응 등이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피 근무 병사의 육안 관측과 망원경 같은 감시장비에 의존한 조기경보 기능은 효과가 떨어졌다.
남침 시 1차 방어 기능도 제한적이다. 북한군은 우리 군의 지피 위치를 알고 있고, 전쟁이 벌어지면 이곳을 집중포격할 것이다. 군 안팎에서는 개전과 동시에 최전방 병력 40%가 죽거나 다칠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과 같은 전방 밀집형의 군 배치와 GP운용은 북한의 기습공격에 매우 취약하고 개전 초 아군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는 군 내부에서도 꾸준히 나왔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첫 국방장관에 지명됐다 논란 끝에 사퇴한 김병관 전 한미연합부사령관도 전쟁 발발시 아군 피해를 우려해 휴전선을 따라 ‘병력 띠'를 형성하고 있는 방어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을 폈다.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병력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인력 중심의 지피 운영은 군의 현대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감안해 10여년 전부터 군은 지오피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감시망을 구축하는 ‘경계과학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계병의 눈과 귀, 망원경에 의존하는 방식을 개선하고 병력 부족 문제도 해결하자는 목적이다. 하지만 전투 병력을 줄일 수 없다는 군의 반발에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지피 상호 철수 합의를 계기로 지오피, 지피 개념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유사시 불필요한 병력 소모와 인명 피해를 막고 한반도 지형 특성에 맞게 전면전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피는 병력 중심의 전방 밀집형 선형방어 전술에 의한 것으로, 축선(Corridor) 중심의 전쟁이 예상되는 한반도 특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군이 전면전 발발시 군사분계선 전체에서 동시에 전투를 벌이지 않고 3~4개의 축선을 중심으로 주공격부대가 기습효과를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실제 1950년 한국전쟁 때도 북한군은 축선을 중심으로 기습공격했다.
‘지피 상호 철수=무장해제’ 논란을 계기로 이참에 군비통제와 국방개혁 논의를 본격화하자는 의견도 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지피 철수를 둘러싼 무장해제 논란은 군비통제 시스템이 없는 우리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미국처럼 대통령 산하에 군비통제기구를 설치해 체계적으로 군비통제를 논의해야 한다. 아울러 평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이 필요하다. 무장을 해서 평화를 달성할 것인가, 아니면 군비통제를 해서 평화를 이룰 것인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규백 민주당 의원은 “인구구조의 변화와 첨단전력이 주를 이룰 미래전장에서 우리 국군이 안보를 굳건히 책임지려면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불가피하다. 한반도의 평화가 우리에게 내어준 잠시의 시간은 혁신의 골든타임이나 마찬가지다. 한반도 평화시대에 대응하고 미래 안보 위협에 대비하려면 국방개혁을 완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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