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62353
일본 역사교과서 속 위안부... 한국인들 이상한 사람 됐다
[해설] 일본이 '반성문'을 다시 써야 하는 이유
19.08.16 14:04 l 최종 업데이트 19.08.16 14:04 l 김종성(qqqkim2000)
▲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은 1993년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아들이다. 그러나 "고노 담화는 다른 고노가 낸 것"이라며 과거사 문제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 ⓒ 연합뉴스
눈물로 쓴 편지는 읽을 수 없다지만, 억지로 쓴 반성문도 읽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진심이 빠져 있어, 읽는 이를 화나게 만든다. 위안부 문제를 담은 일본 역사 교과서들이 바로 그렇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 위안부 문제가 서술된 계기는 1993년 8월 4일 고노 담화다.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정부 대변인)이 발표한 이 담화는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됐다"면서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그 출신지가 어디인지를 불문하고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고 표명했다.
담화는 일본의 의무도 언급했다. '사과와 반성의 뜻'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다루었다. "그런 마음을 우리나라가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에 관해서는 식견 있는 분들의 의견 등도 구하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 뒤 이렇게 서약했다.
"우리는 이런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는 일이 없이 오히려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고 싶다. 우리는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표명한다."
이전과 달리 당시 일본 정부가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한 것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1990년 독일 통일과 1991년 소련 붕괴로 세계 질서가 동요하는 속에서, 일본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고자 1992년부터 국제사회에 대한 공헌도를 증대시키는 한편 1992년 7월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상임이사국 진출 의지를 천명했다. 이때부터 전향적인 역사 발언들이 일본 정부에서 많이 나왔다. 고노 담화도 그중 하나다.
고노 담화에 따라 일본이 이행한 의무 중 하나가 역사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수록하는 일이었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장의 논문 '일본 역사 교과서의 일본군 위안부 기술 변화'는 이렇게 설명한다.
"1994년도부터 사용되는 고등학교 일본사 교과서(10사 20종 중 9사 19종)와 1997년부터 사용되는 모든 중학교 교과서(7사 7종)에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내용이 기술되었다." -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제30집(2008)
사라진 일본의 약속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우익세력의 공격이 시작됐다. 상황을 뒤엎으려는 우익의 '역모'가 일어난 것이다. '새역모'로 약칭되는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1997년 1월 결성돼 반격을 개시했다. 이들은 일본의 잘못을 인정하는 역사관을 '자학 사관'으로 규정하고 일본인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자고 소리 높여 외쳤다.
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2001학년도 중학교 교과서부터 위안부 서술이 삭제되거나 축소되다가 2006학년도에는 이 서술을 담은 교과서가 2종으로 줄어들었다. 2012학년도에는 모든 중학교 교과서에서 위안부 서술이 사라졌다.
고노 담화 때 일본 정부는 "우리는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서약했다. 하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이 지지부진해지고 새역모가 득세하는 분위기 속에서 '오래 기억하겠다'던 일본의 약속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고노 담화가 발표된 지 10년도 안 돼서 위안부 서술이 역사 교과서에서 후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경향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나타났다. 2007년에 검정을 통과한 일본사 및 세계사 교과서 15종 중에서 11종만이 위안부 문제를 수록했다. 제1기 아베 내각의 전임 정권인 고이즈미 내각(2003~2006년)을 비롯한 우익세력이 새역모를 지원한 결과다.
고교 교과서가 중학교 교과서보다 타격을 덜 받은 이유에 관해, 서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은 <한일관계사연구> 제58집에 실린 '한·일 중고교 역사 교과서의 위안부 서술 비교'에서 "고교 교과서가 중학교와는 달리 학교 단위 채택제를 취하고 있어서 정치·사회 등 외적인 압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는 사실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론했다.
이처럼 2001년부터 위안부 서술의 비중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상황이 악화일로로만 내달린 것은 아니다. 마나비샤 출판사가 펴낸 2016학년도 중학교 교과서에서 '위안부'와 '위안소' 용어가 재등장했고, 이 무렵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위안부 서술이 다시 증가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런 변화가 나타난 배경을 두고, 위 서현주 논문은 "정치·사회적 제약 하에서 자신들의 교과서 집필 방향, 평화주의, 동아시아를 포함하는 세계주의, 약자 중심의 역사관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한 집필자들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일본 시민과 사회단체 그리고 학계의 노력이 약간이나마 의미 있는 변화를 일궈냈던 것이다.
아직도 한참 부족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
▲ 2016년 3월 18일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교과서 검정통과본 42종 분석 결과를 공개하고 일본 정부에 대해 "역사 왜곡 교과서 서술을 강제하는 정책을 철회하도록" 요청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는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 위안부 문제를 서술하는 교과서 내에도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아베 정권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쪽으로 서술하는 교과서들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일본 국가권력이 위안부 강제동원에 개입했다는 점이 명확히 기술되지 않고 있다. 예컨대, 산세이도 서점이 출판한 고교용 <일본사 B>는 "여성도 정신대로 조직되어 군수공장 등 노동에 종사시키거나 일본군 병사를 위한 위안부로서 필리핀 등의 젊은 여성들과 함께 전쟁터에 보내졌다"고 서술한다. 누가 주도한 일인지 명시하지 않는 것이다. 또 전시에 당연히 일어날 법한 일인 듯이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짓교출판사의 고교용 <일본사 A>도 "일본군도 설치에 관여한 위안소에는 일본군의 감리 하에 병사의 성 상대로서 조선을 중심으로 중국·인도네시아·필리핀·네덜란드 등의 많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동원했다"는 정도로만 서술한다. '일본군도 설치에 관여한'이나 '일본군의 감리 하에'라는 표현에서, 교과서 필진의 소극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교과서도 이 정도이니, 문제가 여간 심각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교과서들도 있다. 야마가와 출판사의 고교용 <신일본사>는 "조선인 여성 중에는 종군위안부가 될 것을 강요당한 사람도 있었다"고 서술한다. 소수의 위안부만 강제동원된 것처럼 기술하는 것이다.
사과 및 배상 문제에 관한 서술은 더 심각하다. 일본 정부의 조치를 옹호하거나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교과서들이 많다. 산세이도 서점의 <일본사 A>는 "일본 정부는 종군위안부에 대한 보상으로서 민간에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만들게 하여 지원했"다고 서술한다.
짓교출판사의 고교용 <일본사 B>도 "전후(戰後) 보상 문제의 해결은 진전되지 않고 있다"는 선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 교과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하루라도 빨리 사과 및 배상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지 않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또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권과 아베 신조 정권이 한국민과 피해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체결한 '위안부 합의'를 긍정적으로 서술한 교과서들도 있다. 위 서현주 논문은 "두 교과서가 합의에 대해 비판적인 피해자나 한국 내 여론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한편, 짓교출판사 교과서에서는 위안부 합의에 대한 한국민들의 반발이 소개돼 있다.
▲ 학생과 시민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8.15 74주년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 규탄 및 정의평화실현을 위한 범국민 촛불문화제’에 참석해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을 규탄하며 강제동원 사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등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억지로 쓴 반성문
고노 담화가 발표된 지 올해로 26주년이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일본 역사교과서에서는 진실과 어긋나는 서술이 아직도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아시아여성기금 지원이나 위안부 합의를 소개함으로써 일본 정부가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교과서들도 있다. 위안부 문제를 아예 수록하지 않은 교과서보다 이런 교과서가 사실은 더 나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마나비샤나 짓교출판사 교과서에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런 교과서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일본을 칭송할 수는 없다. 이런 교과서가 일부에 그치고 있다는 점은 일본 정부와 국민이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다.
교과서 필진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강제한 것이 있다. 2014년 1월 17일 문부과학성이 개정한 '교과서 검정 기준'이다. 이 검정 기준은 정부의 공식 견해나 최고재판소 판례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교과서를 집필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위안부 서술도 이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 위안부 서술과 관련해 교과서 필진이 준수해야 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다.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는 군과 관헌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아베 내각의 2007년 각의 결정, '위안부 동원과 관련된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재판소 판례,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2015년 위안부 합의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는 위안부 문제의 진실과 배치된다. 위안부 문제를 거짓되게 서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충실히 반영하거나 위배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교과서를 서술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본 교과서들이 위안부 문제를 서술하면서도, 진실을 담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위안부 문제를 다루더라도 '이미 해결됐다'는 쪽으로 기술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런 역사 교과서를 공부한 일본인들 눈에는 한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다 끝난 문제를 지겹게 되풀이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비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본 역사 교과서는 '억지로 쓴 반성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없다. 읽으면, 화만 날 뿐이다. 반성문을 눈물로는 쓰지 않더라도 적어도 진심으로는 써야 하는데, 일본 정부가 허위의 검정 기준을 강요하고 있으니 일본 교과서에 진심이 들어가기 힘들다. 일본 교과서를 읽다 보면, 오히려 한국인들이 이상한 사람들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이 '반성문'을 다시 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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