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news.v.daum.net/v/20190818175101163
[취재파일] '5·18이 실종된 국회', 의원들은 지하 통로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권지윤 기자 입력 2019.08.18. 17:51
"지연된 정의는 부정의", 신속한 정의 구현을 촉구하고 있지만, 속 뜻은 무력함이다. '지연'은 처음엔 사람을 희망 고문하며 애간장을 태우지만, 그 끝에선 무력함과 마주하게 한다. 1달...1년...10년...20년...39년이 흘러도 '아무 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현실을 직시한 피해자, 그들이 무기력을 마주할 즈음 가해자는 미소 짓는다. 시간은 늘 약자보다 강자의 편이었다.
5·18 민주화운동을 마주하는 국회의 모습이다. 지난 2일 119일 만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비준안 포함) 146건이 통과됐다. 꿀벌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는 법, 꽃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화훼산업 진흥법 등 각자의 사연과 역사가 깃든 법안들이 처리됐다. 다만, 유심히 지켜봤던 법안 하나,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1980년 5·18항쟁은 39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굴곡져 있다. 왜곡이 진실을 오염 시키는 사이, 국회는 진상규명 요구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2017년 7월, 뒤늦게 진상규명특별법이 발의 됐지만 보수야당의 반대로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결국 한국당의 요구로 '북한군 개입 여부'를 조사 범위에 넣는 조건으로 지난해 2월 특별법은 국회에서 가결됐다.
반년 만인 지난해 9월 14일 특별법은 시행됐지만, 진상조사위는 339일(18일 기준)이 지난 지금까지 출범하지 못 했다. 조사위원 9명 중 3명의 추천권을 가진 한국당이 추천을 미룬 탓이었다. 법 시행 넉 달 만인 지난 1월 14일 뒤늦게 위원을 추천했지만, 이 역시 자격 논란만 남겼다. 결국 청와대는 지난 2월 한국당 추천 3인 중 2명을 거부하는 강수를 뒀고, 조사위 출범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5·18...껍데기만 남게 되는 특별법
5·18을 한 달 앞둔 지난 4월, 홍영표 민주당 당시 원내대표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또 한 번의 물밑 협상을 했다. 이미 시행된 특별법을 다시 개정하기로 했다. 특별법상 조사위원 자격요건(7조)에 '군(軍) 경력'을 포함시켜, 조사위원 후보 범위를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5·18을 무력 진압한 건 '군(軍)'이다. 군은 진상조사위의 '조사 대상'이지, '조사 주체'가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당초 특별법엔 군 출신을 자격 요건에서 넣지 않았지만, 한국당의 추천권 보장을 위해 법을 재개정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피해자들은 울분을 삼켰다. 이미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조사위를 출범 시키기 위한 희망 섞인 인내였다.
그러나 넉 달이 흘러 8월이 됐지만, 특별법 개정안은 지난 2일 본회의에 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5·18은 소리 소문 없이 국회에서 실종됐다. 5월 18일 즈음 "세월은 흘러도 산천은 안다"고 외치던 그 많은 국회의원들은 넉 달 사이 "뜨거운 맹세"를 잊었다. 패스트트랙, 추경안, 日수출규제 등 새로운 이슈가 생기면서 5·18은 기억 너머 저편으로 사라진 것이다.
애당초 비협조로 일관하던 한국당에게 '5·18 실종'은 달가웠을 테고, 추경안 통과에 집중하던 민주당에게 5·18은 버거웠을 테다. '5·18의 가치'를 달리 보는 '여야'이지만, 이미 늦은 조사위 출범이 몇 달 더 지연돼도 괜찮다고 여기는 가혹함에선 다르지 않았다. 물론 여당 내에선 5월 18일이 지난 후에도 목소리를 내는 의원들도 있다. 우원식 송갑석 의원 등 일부 의원은 지속적으로 주위를 환기 시키고 있지만, 국회 전체를 움직이기엔 역부족이다.
특별법에 찬성했던 의원들조차 진상조사위 출범이 이 정도로 지연될 줄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 23조2항만 봐도 알 수 있다. 해당 조항에선 피해자의 진상규명 신청 시한을 '법 시행(2018.9.14.일부터) 1년 이내'로 정해뒀다. 다음 달 14일까지 신청해야 진상규명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바꿔 말해 진상조사위가 다음 달 15일 이후 출범하면 피해자들은 신청이 불가능하다. 한 마디로 피해자 없는 진상조사위가 되는 건데, 여당에선 뒤늦게 해당 조항을 '진상조사위 출범 1년 이내'로 변경한 개정안을 냈지만, 이 역시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 5·18과 함께 증발한 국회 윤리특위.. 좁쌀만큼의 기대도 힘들다?
5·18 진상규명특별법이 껍데기만 남게 될 즈음, 5·18 망언 의원 징계는 껍데기조차 사라졌다. 지난 3월 <의원 징계 불가능한 '깜깜이 국회 윤리특위>[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170270 ] <망언 의원 3인 퇴출'이 더 절실한 이유> 취재파일을 작성할 때도 망언 의원에 대한 징계 난항은 예상했지만, 윤리특위 증발은 예상 못했다. [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162722 ]
민주, 한국, 바른미래당 등 교섭단체 3당은 지난 6월28일, 비상설 특별위원회(특위)인 정치개혁특위(선거제 개혁안 심사), 사법개혁 특위(검경 개혁안 심사) 연장엔 합의하면서도, 윤리특위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6월말 시한 종료 동시에 윤리특위 존재 자체가 사라진 셈이다.
국회법 46조 및 155조엔 윤리특위 역할과 의원 징계 규정이 또렷이 새겨져 있다. 윤리특위를 비상설로 두는 건 입법 취지를 부정하는 건데도, 여야는 지난해 7월 상설 윤리특위를 비상설로 전환시켰다. 위원회 가운데 가장 권위가 있어야 할 윤리특위를 '떴다방'으로 만든 책임엔 여야 구분이 없다는 뜻이다. 당시 비판 여론이 일자 국회는 "매년 연장하면 된다"고 자신했지만, 1년 후 현실은 이렇다.
아마도 내심엔 윤리특위에 좁쌀만큼의 기대도 없었던 게 아닐까. 지난 2월8일 5·18 망언 의원 사태가 있고 윤리특위는 한 달이 지나서 소집됐다, 그 이후에도 지연의 연속, 지지부진 그 자체였다. 윤리특위 산하 자문위는 파행을 반복했고, 의원 징계는 제 자리 걸음이었다. 그 사이 망언 의원 징계 여론은 희미해졌고, 윤리특위 공백 사태에도 부끄러워하지도 다급해 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소나기는 언젠간 그친다'는 한국당의 지연 전략이 먹혀들었다.
망언 의원 징계는커녕, 징계 심사 기구조차 없는 국회.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다가올 국정감사에서 피감기관의 징계 현황을 손에 쥔 채 "솜방망이 징계"라며 부처를 질타할 것이다. 의원들은 보람을 느끼며 국감장을 떠날 때, 부처 공무원들은 냉소를 지으며 떠난다. "그래도 우리가 국회의원보단 낫다"
'국회의원 회관-국회 본청 지하 통로'에 걸려 있는 액자
● 지하통로를 지날 때 국회의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특별법 개정 없이도 진상조사위 출범은 당연히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법 개정 없인 한국당의 위원 추천이 난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음 달 정기국회에서 특별법 개정이 가능할지도 미지수다. 그 때가 되면 여야가 대립할 또 다른 현안들이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윤리특위도 여야 합의로 재가동 돼도, 망언 의원 징계는 상반기 때와 마찬가지로 답보 상태를 거듭할 가능성이 높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는 말이 공허한 이유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하지만, 국회의 시간은 불공평했다. 극우에게 유리했던 '지연'은 피해자에겐 '고통의 지속'이었다. 5·18 성폭행 의혹, 헬기 사격 등 진상 규명이 지연되는 사이, 은폐와 왜곡은 거짓을 진실로 위장 시켰고, 가해자들의 입을 도리어 당당하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국회는 침묵했고, 심지어 거짓을 추동했으며 이젠 특별법마저 고사 시키려 한다. 5·18 민주화 운동의 최대 수혜자가 국회인데도 말이다. 군사독재 시절 무력했던 국회가 지금의 권위와 권한을 가질 수 있게 된 건 5·18 덕분이다. 누군가는 지금도 5·18 피해자들이 무기력에 빠지길 기대하겠지만, 그들은 아직도 고통 섞인 기대를 하고 있다. 국회는 언제쯤 뜨거운 주전자를 손에 쥐고도 놓지 못하는 피해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의원 회관에서 국회 본청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엔 다섯 걸음에 한 점 씩 꽤 많은 액자가 걸려있다. 산수화나 한시(漢詩)도 있지만, 벽면을 빼곡히 채운 건 고사성어들이다. 낯설어 보이는 한자들도 꽤 있지만, 액자 옆 귀퉁이엔 우리말 해석도 있다. 무자기(毋自欺), 사무사(思無邪), 위민선정(爲民善政) 등 등...누가 걸어뒀을지는 몰라도, 왜 걸어뒀는지는 알 것 같다. 매일 지하 통로를 오가는 이들이 보길 원했던 거 아닐까.
권지윤 기자legend8169@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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