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88660


근초고왕이 '백제판 로미오'였다고? 설마

[사극으로 역사읽기] KBS1 드라마 <근초고왕>, 여덟 번째 이야기

10.12.06 12:05 l 최종 업데이트 11.03.23 14:34 l 김종성(qqqkim2000)


▲  KBS1 <근초고왕>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나누고 있는 부여화(김지수 분)와 근초고왕(감우성 분). ⓒ KBS 


KBS1 <근초고왕>의 저변을 잔잔히 흐르는 러브 스토리가 하나 있다. 훗날 근초고왕이 될 왕자 부여구(감우성 분)와 왕족 부여화(김지수 분)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그것이다. 


부여화를 포함해서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이름들은 대개 다 작가가 임의로 만든 것이므로, 그런 이름들에 무게를 둘 필요는 없다. 게다가 부여화는 실존 인물도 아니므로, 이들의 사랑이 실제 존재했을 것인지를 두고 따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삼국사기>에서 확인되는 것은 근초고왕의 부인이 진씨라는 사실뿐이다.  


부여구와 부여화의 사랑은, 청년 작가 셰익스피어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준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또 그것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사랑을 연상시키기에도 충분하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의 기본 골격은 그리스 신화와 유사한 측면이 많다. 벽이 맞닿은 이웃인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서로 열렬히 사랑했지만, 부모들의 반대로 사랑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벽의 틈을 사이에 두고 매일 같이 사랑을 속삭이다가 밤만 되면 각자의 벽에다 입맞춤을 하고 헤어졌다. 서양 고전을 그림의 소재로 활용한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1909년 작품 <티스베>에서 이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티스베>. ⓒ 출처: 위키페디아 백과사전 영문판 


감질 나는 사랑에 만족할 수 없었던 두 연인은, 한밤중에 뽕나무 아래에서 몰래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것이 비극적 최후의 원인이 되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나왔다가 사자를 발견하고 바위에 몸을 숨긴 티스베의 스카프가 바람에 날려 사자의 발아래 떨어졌고, 그 직전에 다른 데서 먹이를 잡아먹은 사자는 피 묻은 입으로 스카프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약속 장소에 뒤늦게 나왔다가 피 묻은 스카프를 발견한 피라모스는 티스베가 사자에게 잡아먹힌 줄로 착각하고 칼을 꺼내어 뽕나무 아래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뒤늦게 피라모스의 시체를 발견한 티스베 역시 뽕나무 아래에서 자기 가슴에 칼을 꽂았다. 


두 연인이 어찌나 비참하게 죽었던지, 그들이 죽은 방식은 훗날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들에 의해 그대로 차용되었다. 이렇게 해서 뽕나무 뿌리에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피가 철철 흘러들어갔고, 그런 이유 때문에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검붉은 색깔이 되었다는 게 이 신화의 결론이다.   


피라모스와 티스베처럼, 또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근초고왕>의 부여구와 부여화도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주인공들이다. 이 점은 백제 왕실의 계보에서 잘 드러난다. 이야기의 발단은 개루왕(재위 128~166년)으로부터 시작한다. 


개루왕의 아들들 중에서 2개의 왕통(王統)이 나왔다. 초고왕 계열과 고이왕 계열이 그것이다. 개루왕 사후에 두 계열은 왕권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다. 개루왕이 죽은 뒤에 초고왕 계열에서 연달아 3명의 왕이 나온 뒤에 고이왕 계열에서 연달아 3명의 왕이 나오고, 초고왕 계열인 비류왕이 왕위를 탈환했다가 고이왕 계열인 계왕이 다시 왕위를 탈환했다. 


이런 분쟁에 종지부를 찍은 인물이 바로 근초고왕이었다. 초고왕 계열인 그는 계왕 사후에 왕위를 되찾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초고왕 계열이 왕위를 독식했다. 근초고왕이 초고왕 계열의 왕통을 튼튼히 해준 셈이다. 


▲  백제의 왕통. 개루왕 이후로 왕통이 갈라졌다. 고등학교 <국사>에 실린 표다. 이런 표를 보면서 조심할 것은, <삼국사기> 기록과는 달리 백제는 기원전 3세기경에 건국되었기 때문에, 온조왕과 개루왕 사이에 왕들이 더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 교육인적자원부


드라마 속에서 서로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는 부여구와 부여화는 각각 초고왕 계열과 고이왕 계열에 속한다. 부여구의 아버지인 비류왕(초고왕 계열)은 부여화의 아버지인 계왕(고이왕 계열)에게 넘어갈 왕위를 탈환했고, 계왕은 비류왕의 사후에 왕권을 도로 찾아갔다. 그리고 그 계왕으로부터 다시 왕권을 찾아온 게 근초고왕이었다. 


이런 관계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있으니, 부여구와 부여화를 피라모스와 티스베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유해도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게다가 부여구와의 결혼에 실패한 부여화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고구려 고국원왕의 작은 부인이 되기까지 했으니, 로미오와의 사랑에 실패한 줄리엣이 아버지의 명령으로 패리스 백작과 결혼한 대목과 매우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부여화는 작가가 상상해낸 허구의 존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근초고왕과 부여화의 사랑 역시 픽션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물론 기록으로 남은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세상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이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계왕에게 괜찮은 딸이 있었다면 근초고왕이 실제로 이성적인 감정을 품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근초고왕이 처한 상황이나 그가 걸은 행적을 볼 때, 그는 원수의 딸을 사랑할 만큼 그렇게 낭만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비류왕의 둘째아들로서 주도권을 잡은 사실이나 계왕 사후에 왕권을 도로 찾아온 사실에서 나타나듯이, 그는 1차적으로는 자기 친형제와의 경쟁에서 승리했고 2차적으로는 계왕 쪽과의 투쟁에서 승리한 인물이다. 


이는 근초고왕이 냉혹한 집념을 품고 오로지 정치적 목표만을 향해 달려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을 최상의 가치로 인정하는 '로맨틱 가이'였다면, 그런 정치투쟁의 장(場)에서 최후의 1인으로 생존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랑보다는 야망을 택한 인물이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역사서인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백제에서는 농업과 함께 양잠업이 발달했다. 양잠업은 농업과 더불어 고대 왕국들이 적극 권장하던 산업이었다. 튼튼한 국가재정, 튼튼한 왕권을 구축하는 데에 긴요한 사업이었던 것이다. 


양잠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백제 땅에는 누에치기에 필요한 뽕나무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일대가 조선시대까지 뽕나무 재배로 유명했던 사실은, 이 지역에서 건국된 백제가 양잠업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야망보다는 사랑을 선택한 피라모스는 자신의 피로 뽕나무 뿌리를 적셔 '검붉은 오디'라는 열매를 남겼다. 하지만, 사랑보다는 야망을 선택했을 근초고왕은 자신의 피로 뽕나무 뿌리를 적시는 게 아니라 뽕나무의 피라도 뽑아서 '튼튼한 왕권' '튼튼한 왕통'이라는 결실을 얻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살았을 근초고왕이 피라모스나 로미오의 화신이 되어 TV 속에서 되살아났으니, 저세상의 근초고왕이 TV 속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55-11번지(한신 16차 아파트 정문)의 ‘잠실 뽕나무’. 조선 초기에 심은 뽕나무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의 왕실에서 누에를 키우기 위해 뽕나무를 심었던 지역이다. 지하철 3호선 잠원역 4번 출구에서 약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 김종성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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