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등왕 - 문화콘텐츠

가야 2019. 10. 13. 13:52

거등왕

가락국(금관가야) 제2대 왕
생몰년 : ?-253
재위기간 : 199-253

가락국(금관가야)의 제2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99-253이다. 시조 수로왕(首露王)과 허황후(許皇后)의 아들이다. 왕비는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부인(慕貞夫人)이다. 태자는 제3대 마품왕이다.
   
전문정보

가락국(금관가야)의 제2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199-253이다. 시조 수로왕(首露王)과 허황후(許皇后)의 아들이다. 왕비는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부인(慕貞夫人)이다. 태자는 제3대 마품왕이다. 가락국기에서는 거등왕을 세조(世祖)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삼국유사』권1 왕력에서는 기묘(己卯 199)에 즉위하여 55년 동안 다스렸다고 하였으나,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는 “건안(建安) 4년 기묘 3월 13일에 즉위하여 나라를 다스리기 39년인 가평(嘉平) 5년 계유(癸酉 253년) 9월 17일에 세상을 떠났다.(居登王 父首露王 母許王后 建安四年己卯三月十三日卽位 治三十九年 嘉平五年癸酉九月十七日崩)”고 하였다. 여기서는 가락국기의 계산 착오가 보인다.(김상현, 1985)

『삼국유사』 권2 기이2 가락국기에 의하면, “왕후는 자주 곰의 몽조가 있더니 거등공을 낳았다.(頻年有夢 得熊羆之兆 誕生太子居登公)”고 기록하여, 거등의 탄생에 북아시아의 곰토템이 스며있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따라 가락사회의 통치계층에 북아시아인의 사상과 전통을 지니고 있는 구성원이 있었다고 보았다.(김병모, 1997)

한편,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654-1번지에 위치하는 무덤이 장군총(將軍塚) 또는 제2대 거등왕(居登王)의 무덤으로 전해오고 있다. 유하리 마을 뒷편 구릉의 남쪽 경사면에 반구상(半球狀)의 봉토분을 이루고 있는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으로, 그동안 도굴된 채 방치되어 오던 것이 1994년 동의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현실(玄室)은 주축방향이 남북이며, 평면 형태는 정방형이다. 벽면은 할석(割石)을 이용하여 9-11단을 쌓았는데, 8-9단부터는 급격히 안쪽으로 기울게 하여 상부에 4매의 뚜껑돌을 덮었다. 벽면에는 전면에 회(灰)를 발라 마무리 하였는데, 잔존부분의 두께는 15cm정도이다. 현실의 규모는 길이 275cm, 폭 250cm, 높이 260cm이다. 내부에는 40cm높이로 'ㄱ'자상의 시상(屍床)을 마련하였다. 시상대의 가장자리는 할석으로 1-3단 쌓았고, 내부에는 작은 할석을 채운 다음 자갈과 조개껍질을 깔아 면을 고르고 최종적으로 회(灰)를 발라서 마무리 하였다. 시상대 위에서는 인골이 검출되었는데, 북쪽과 동쪽 벽면의 시상대 위와 입구부의 시상대 아래에서 각각 확인되었다. 검출된 인골은 모두 9개체분으로, 배치상으로 보아 추가장(追加葬)에 의한 가족묘임을 알 수 있다.

이 고분은 연도가 왼쪽으로 치우쳐 있으며, ‘ㄱ'상의 높은 시상대, 궁륭천정, 회바름 벽면 등의 구조적 특징을 지닌 전형적인 횡혈식석실분으로, 계통적으로는 고구려 횡혈식석실묘에 연결된다. 이 무덤은 구조나 출토유물상에서 보아 6세기말에서 7세기대에 해당되며, 인골이나 연대로 보아 가락국 2대 거등왕의 무덤으로 전해오던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이 묘의 피장자는 김해지역이 신라화한 이후 이곳에 파견된 신라 고급관리의 가족묘이거나, 신라왕실에서 이 지역을 장악하고자 임명한 재지(在地) 유력인의 가족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임효택·곽동철, 1996)

한편, 경상남도 김해의 안동 685-1번지에 있는 초선대 암벽 위에는 거등왕과 관련이 있다고 전해오는 초선대마애석불(招仙臺磨崖石佛)이 새겨져 있다. 『고려사』권57 지11 지리2 경상도 금주조(金州條)에서, “초현대(招賢臺)는 거등왕이 이 대에 올라 칠점산(七點山) 담시선인(旵始仙人)을 부르자 담시(旵始)가 배를 타고 온 곳이다.(招賢臺[在州東 世傳 駕洛國居登王登此臺 招七點山旵始仙人 旵始乘舟而來 因名焉])”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권32 경상도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고적조에서도, “초현대(招賢臺)는 부의 동쪽 7리 지점에 있으며 작은 산이다. 전설에는, 가락국 거등왕(居登王)이 칠점산(七點山) 담시산인(旵始山人)을 초청하니, 담시가 배를 타고 거문고를 가져와서 서로 더불어 즐겼으므로 그대로 이름하였다. 왕이 앉았던 연화석(蓮花石)과 바둑판 돌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고 하였다.

초선대마애석불(招仙臺磨崖石佛)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둔탁한 암벽 끝에 3cm 두께의 선으로 얕게 새겨져 있는 불상이다. 전설에는 거등왕 혹은 장유화상의 초상이라고 하지만, 불상의 전체적인 형상을 보아 아미타여래일 가능성이 높다. 불상은 연화대 위에 결가부좌를 한 모습으로, 양쪽 어깨에서 무릎까지 옷자락이 풍성하게 드리워져 있다. 민머리(素髮)에 가늘고 긴 눈, 넓적한 코, 두툼하고 넓은 입술 등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문경 대승사(大乘寺) 마애좌상(磨崖坐像), 경기도 이천(利川) 영월암(映月庵) 마애여래입상(磨崖如來立像) 등과 같은 고려시대(高麗時代)의 지방양식을 보여주는 일련의 거대한 마애불 양식과 상통하나, 그 보다는 입체감이 결여되어 평면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신체 역시 단순한 선으로 묘사되었는데 넓고 각이 진 어깨라든가 평행선의 옷주름은 형식화되어 신체의 양감(量感)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대좌(臺座) 부분은 마멸이 심하여 잘 알아볼 수 없으며 광배(光背) 역시 희미하게 남아 있다.(조원영, 2002)

참고문헌

김상현, 1985, 「三國遺事 王曆篇 檢討」『東洋學』15.
김병모, 1997, 「김수로왕 연구」『民族과 文化』6.
임효택·곽동철, 1996, 「金海 柳下里 傳 王陵」『東義史學』9·10合.
조원영, 2002, 「김해시 장유면 유하리 마애불상의 양식적 특징과 불교신앙적 의미」『지역과 역사』10.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왕력)
第二 居登王 [首露子 母許皇后 己卯立 理五十五年 姓金氏]
제2 거등왕 [수로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허황후이다. 기묘년에 즉위하여, 55년을 다스렸다. 성은 김씨이다.]
第三 麻品王 [父居登王 母泉府卿申輔之女<慕>貞夫人 己卯立 理三十二年]
제3 마품왕 [아버지는 거등왕이고, 어머니는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부인(慕貞夫人)이다. 기묘년에 즉위하여, 32년 다스렸다.]

(『삼국유사』 권2 기이2 가락국기)
駕洛國記[文廟朝大康年間 金官知州事文人所撰也 今略而載之] 
… 居登王 父首露王 母許王后 <建>安四年己卯三月十三日卽位 治三十九年 嘉平五年癸酉九月十七日崩 王妃泉府卿申輔女慕貞 生太子麻品 開皇曆云 姓金氏 蓋國世祖從金卵而生 故以金爲姓爾
가락국기[문종조 대강(大康) 연간에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로 있던 문인(文人)이 찬술한 것이다. 지금 그것을 줄여서 싣는다.]
… 거등왕(居登王). 아버지는 수로왕(首露王), 어머니는 허왕후(許王后)이다. 건안(建安) 4년 기묘(己卯, 199) 3월 13일에 즉위하였고, 치세는 39년이었으며, 가평(嘉平) 5년 계유(癸酉, 253) 9월 17일에 죽었다. 왕비는 천부경(泉府卿) 신보(申輔)의 딸인 모정(慕貞)이며, 태자(太子) 마품(麻品)을 낳았다. 개황력(開皇曆)에 이르기를, “성(姓)은 김씨(金氏)이니, 대게 세조(世祖)가 황금 알에서 난 까닭에 성을 김씨로 삼았다.”고 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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