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81395


'영웅 검찰'의 추락, 국민이 등돌린 3가지 이유

[주장] 도쿄지검 특수부 붕괴 원인, 그리고 멈출 수 없는 검찰개혁

19.10.28 07:40 l 최종 업데이트 19.10.28 07:40 l 정소앙(jsakor)


"검사는 수사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도를 바꾸려하면 검찰 파쇼가 된다.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일본 전후(戰後) 제18대 검사총장 요시나가 유스케

 

어느 모임 참석자들이 중국음식점에 주문을 하려 한다. 4명이 자장면, 3명이 짬뽕, 2명이 볶음밥, 그리고 나머지 1명은 우동을 원하고 있다. 이때 주문방법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모임의 최고연장자가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으로 통일시키는 방법이다. 연장자가 짬뽕을 원한다면, 식성이 같은 두 사람은 다행이지만 나머지 7명은 원하지 않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이것은 독재정치(dictatorship)다.


둘째, 다수결의 원칙에 의해 표결에 따라 음식을 통일하는 방식이다. 투표결과 만약 자장면으로 결정이 된다면, 결국 자신이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게 되는 사람은 4명뿐이다. 이것은 대의민주정치(representative democracy)다.


마지막 방법은 10명이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는 방식이다. 주문자가 각자의 요구를 포기하지 않고 음식을 배달시킨 마지막 방식은 직접민주정치(direct democracy)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의 정치질서는 기본적으로 대의민주정치를 따르고 있다. 대표자에게 권리를 일정기간 양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권리를 양도하는 그 순간부터 혹시 우리는 권리를 갖지 않은 자, 즉 노예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


현대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는 이런 대의민주주의의 맹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정치란 대의민주주의의 논리를 넘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독재정치나 대의민주정치는 사실은 민주주의 이념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직 직접민주정치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민주주의적이다.

 

이상은 철학자 강신주 박사가 과거에 펴냈던 책 <철학이 필요한 시간> - 치안으로부터 정치로, 랑시에르 <정치에 관한 열 가지 테제> - 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그런데 투표를 통한 권력의 위임문제와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에 대한 강신주 박사의 성찰에서 빠진 부분들이 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문제, 국회의 직무유기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의 정치개입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12일 오후 서울 서초역 부근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적폐청산 범국민연대 주최로 '제9차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  12일 오후 서울 서초역 부근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적폐청산 범국민연대 주최로 "제9차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 권우성


24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표창원 의원은 총선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번 20대 국회를 '최악의 국회'라고 표현했다. 맞다. 최악의 국회다. 지난 9월 16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밝힌 바,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겨우 30.5%에 불과했다(17대 52.1%, 18대 45.4%, 19대 42.82%). 그동안 자유한국당이 감행했던 국회 보이콧은 무려 18회나 된다. 광장의 직접민주주의 대신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애초에 복원할 정치가 대체 언제 있었단 말인가?


게다가 자유한국당은 자신들이 주도해서 만들었던 국회 선진화법을 스스로 어겼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른 당 의원을 감금하고 국회를 폭력의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런데도 반성은커녕, 국회 선진화법 위반행위에 대해 공천 시 가산점을 주겠다는 방침과 함께 표창장을 나눠주며 자축연을 벌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 대신, 민주당 소속 의원이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불출마선언을 하는 현실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서초동의 촛불은 검찰개혁뿐만 아니라 직무유기와 폭력으로 국회의 정상기능을 마비시킨 자유한국당에 대한 광장의 직접민주정치, 국민적 분노의 표출이었다.


인사청문회 전후 압수수색을 통해 법무장관 가족과 그 주변인들에 대한 먼지떨이식 수사가 진행됐다.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부장관에 임명되지 않았거나 혹은 검찰개혁을 전면에 내걸지 않았어도, 과연 검찰은 이런 대대적인 압수수색과 수사를 진행했을까? 지금, 검찰의 정치개입 문제는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검찰개혁의 올바른 방향을 위해, 교훈과 반면교사가 될 사례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도쿄지검 특수부 붕괴의 원인 - 가찰(苛察)과 '극장형 수사'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는 1948년 쇼와전기 사건을 시작으로 1976년 록히드 사건, 1988년 리크루트 사건, 1992년 사가와규빈 사건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권력형 비리들을 파헤쳐 일본 국민들 사이에 영웅으로 일컬어진 바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도쿄지검 특수부는 더 이상 영웅이라 불리지 않는다.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를 그들 스스로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일본 법조계와 도쿄지검 특수부 취재를 맡았던 산케이 신문 기자 이시즈카 겐지가 몰락의 원인을 추적하여 2010년, <도쿄지검 특수부의 붕괴>라는 책을 펴냈다. 그리고 본인의 취재수첩에 대동소이하게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듣고 반복해서 기록했던 다음의 내용들을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적했다.


"처음 작성한 시나리오에 억지로 끼워 맞춰 사건을 만들고 있다. 공갈적인 취조가 도를 넘어섰다." - 전 도쿄지검 특수부 간부


"더 이상 프로 수사집단이 아니다. 제공받은 정보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인재가 없기에, 정보를 덥석 물어 안이하게 사건을 짜 맞추고만 있다." - 경시청 관계자 


'증거가 있어야 기소한다'는 원칙을 충실히 따랐던 도쿄지검 특수부가, 이제는 시나리오를 설정해서 증거를 조작하는 형편없는 집단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 특수부 검사이자 도인요코하마 대학 법학대학원 교수인 고하라 노부오의 말을 인용함과 동시에, 문제점을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상의하달형', '악인 중심형', '극장형' 수사가 그것이다.


"특수부는 1976년의 록히드 사건에서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을 기소하여 국민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승리의 체험'을 너무 소중히 여긴 나머지, 악한 정치가와 대결한다는 구도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상의하달형 - 상층부에서 기획한 시나리오에 억지로 맞춰서 조서를 꾸미는 수사관행


악인중심형 - 처음부터 특정 인물을 '악인'으로 지목해 놓고, 관계자들의 진술에 따라 악인 중심의 뻔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방식


극장형 - 억지로 단순화한 스토리에 따라서 수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강제 수사를 감행함과 동시에, 언론에 정보를 흘려 여론을 조작해가면서 수사를 진행하는 방식


이와는 반대로 일본 검사들 사이에는 후배들에게 '가찰(苛察)'이라는 단어를 통해, 잘못된 수사관행을 나름 경계하려는 전통이 있었다. 원래는 '사소한 일에까지 파고들어 자세히 관찰한다'라는 의미이지만, 일본 검사들이 사용한 가찰이라는 단어는 '검찰'의 검(檢)자를 '가혹하다'는 의미의 가(苛)로 바꾼 조어였다. 검찰권의 행사가 강압적인 방법으로 기울어 적정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그것은 필요 이상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잘못된 권력행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검·언 유착 철저히 경계했던 일본 검사총장의 '수사 밀행주의'


'복도에 서 있거나 얼쩡거리는 것을 엄히 금함. - 검사정 요시나가 유스케.'


1988년 12월, 일본 최고검찰청, 도교지검, 도쿄 지방검찰청이 있는 옛 합동청사 복도에 이상한 종이가 하나 나붙었다.


당시는 리쿠르트가 가격 상승이 확실한 자회사의 미공개 주식을 나카소네 이에히로, 다케시타 노보루, 미야자와 기이치 등 90명이 넘는 정치인과 고위관료들에게 양도했다는 소위 '리쿠르트' 사건이 정계를 강타하고 있던 시점이다.


이때 각 언론사 법조계 담당기자들은 매일 아침 출근하는 검사들을 붙잡고 매달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그리고 검찰청사 복도에 진을 친 채 오가는 검사들의 움직임을 좇으면서 극성을 부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심지어는 외출하는 검사를 미행하기까지 했다. 특수부가 지검의 지원을 받아 검사 숫자를 늘리자, 복도에 모여 있는 기자들 역시 잔뜩 늘어났다. 그러자 취재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된 것에 대해 화가 났던 검사정 요시나가가 직접 종이에 써서 기자들에게 경고를 했던 것이다.


요시나가는 1932년 오카야마 출생으로, 대학 재학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 23세의 나이에 검사에 임관했다. 1964년 도쿄지검 특수부에 배속된 이래로, 특히 전 수상인 다나카 가쿠에이 등을 기소했던 록히드 사건(1976년)의 주임검사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래서 특수부 내에서는 수사현장파 검사들의 상징처럼 숭상을 받았고, 당시 언론이 붙여 줬던 칭호는 '미스터 특수'였다.


이후 198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동안 우리의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일본 검사총장에 모두 도쿄대 출신이 취임한 가운데, 1993년 유일하게 요시나가 유스케만이 지방대(오카야마 대학) 출신으로 검사총장에 올랐다. 그때 검사총장 취임 후 기자회견장에서 그가 말했던 "검사는 수사가 정치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수사로 세상이나 제도를 바꾸려 하면 검찰 파쇼가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명언은 그의 지론인 '수사 밀행주의'와 함께 두고두고 세간에 회자됐다.


요시나가의 수사 밀행주의는 단순히 수사대상에 대한 배려 때문만은 아니었다. 언론을 통해 수사의 움직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면 자칫 특수부 수사가 퇴로를 차단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실질적인 이유였다.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어놓고 '수사결과, 사건이 될 만한 혐의가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요시나가의 수사 특징을 '시나리오를 현장에 강요하지 않는 수사'라고 했다. 강제수사에 들어가기 전, 그만큼 조사와 수사에 신중을 기해서 모든 증거들을 확실히 확보해야 한다는 '증거주의 수사'가 핵심이다. 그래서 요시나가는 가택수색조차 떠들썩하게 보도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당시 한 도쿄특수부 간부는 언론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검찰은 말하지 않는다'라는 얘기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법정에서 할 뿐이다. 이후 우리가 한 일을 세상에 전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맡긴다."


최근 우리 정부는 일본 검찰특수부와 마찬가지로 특수부가 있는 전국 7개청 가운데 서울·대구·광주 3개 검찰청을 제외한 나머지를 폐지하는,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바 있다. 1973년 대검찰청 특수부가 설치된 이후 46년 만에 간판도 '반부패수사부'로 바뀌었다.


물론 이런 조치도 자체로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굳이 일본의 사례를 살펴본다면, 도쿄지검 특수부가 가장 빛나던 시기를 이끌고 존경받았던 요시나가 유스케의 경우를 참고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검찰 역시 도쿄지검 특수부처럼 '가찰(苛察)'과 '극장식 수사'의 폐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은 성찰과 함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차후 검찰 기자실을 없애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대신, 법원과 법무부를 통해 수사가 아닌 재판 중심의 사실들을 알리는 관행이 정립되어야 한다. 검·언 유착 문제의 해결은 검찰개혁의 핵심과제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이후 언급할 '무죄추정의 원칙'과도 매우 깊은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명국가의 징표인 무죄추정의 원칙과 피의사실 공표 문제

  

 12일 서울 서초역 부근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적폐청산 범국민연대 주최로 '제9차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12일 서울 서초역 부근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적폐청산 범국민연대 주최로 "제9차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라틴어 'in dubio pro reo(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문구는 형사소송법의 기본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아울러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Beyond a reasonable doubt)' 증거제시가 기본 전제가 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1789년에 일어났던 프랑스 시민혁명의 산물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제9조, '누구든지 범죄인으로 선고되기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에서 비롯됐다. 그 전까지는 이른바 규문주의(糾問主義, inquisitorial system)에 의해 수사권·기소권·사법권 모두를 왕의 권한에 귀속시켰고, 왕이 임명한 관리가 범죄를 수사하고 형벌까지 내렸었다. 이런 규문주의식 재판에는 유죄 인정을 위해 흔히 자백이 결정적인 증거로 채택되곤 했는데, 마녀사냥식 재판과 고문이 횡행했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 고문과 마녀사냥식의 야만적인 재판을 대체한 무죄추정의 원칙은 문명국가임을 증명하는 확고한 징표로 작용했다. 이후 무죄추정의 원칙은 1948년 12월 10일 UN이 제정한 '세계 인권 선언' 제11조에서 다시 한 번 확인이 된 바 있다. 이를 반영하여 우리나라 역시 헌법 제27조 4항과 형사소송법 제307조, 325조에 무죄추정의 원칙을 재판의 기본으로 명시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잘못된 관행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검찰에 의한 '피의사실 공표 의혹'이 바로 그것이다. 조국 장관의 경우 외에도 여야 유불리를 막론하고 그 이전부터 피의사실 공표로 의심될 만한 사례들은 수없이 존재해왔다. 재판의 측면에서, 우리는 과연 문명국가에 살고 있는가?


일부에서는 '국민의 알권리' 운운하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이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기본 전제임을 감안한다면 납득하기 힘든 주장이다. '검찰과 언론이 유착할 권리', 혹은 '언론의 검찰발 기사 받아쓰기의 권리'에 국민의 알권리를 갖다 붙여서는 안 된다. 장관 후보 딸의 학교 내신 성적에 대해 국민이 대체 언제 알고 싶어했다는 것인가?


멈출 수 없는 '검찰개혁 대전'과 차기 법무장관 임명문제


검찰은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에 대한 인사청문회 도중 수사의 칼날을 휘둘렀다. 필연적으로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국무위원 임명권에 대한 도전이자 국회의 인사청문기능을 훼손한 과도한 정치개입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임기가 유한한 지도부 때문에 검찰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부정적인 방향으로 인식되는 것은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불행이다.


지극히 나쁜 선례라는 점을 놓고 볼 때, 문재인 정부가 이를 앞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해결해 나갈지는 아마도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수사를 통해 제도를 바꾸려하면 '검찰파쇼'라는 요시나가 일본 검사총장의 의미심장한 지적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공수처 도입 등 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은 앞으로 정치권에서 협상을 통해 풀어 나가면 된다. 반면 차기 법무장관 임명문제는 검찰개혁의 또 다른 시험대로 작용하면서, 개혁과제들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검증이나 국회청문 과정을 통과할지 모르지만 임은정 검사가 차기 법무장관에 적격이라는 여론도 있다. 기수중심의 서열문화나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에 제동을 거는 데 앞장서서 노력해 왔다는 점이 배경이다. 현재 윤석열 검찰체제가 지닌 문제점과 검찰 내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점 역시 또 다른 강점이다.


아울러 참여정부 시절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을 해온 전해철 의원도 강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당초 총선을 위해 고사하던 입장에서 검찰개혁을 위해서라면 장관직을 맡을 수도 있다는 쪽으로 선회한 배경이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어찌되었건 차기 검찰총장은 국민적인 열망과 함께 검찰에 대한 문민통제, 그리고 검찰개혁 완수의 과제를 굳건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번에도 검찰개혁을 마무리 짓지 못한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조국 장관 전에도, 그 이후에도 '검찰개혁 대전'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한다. 노예가 아닌 주인으로 살고자하는 국민들의 직접민주정치, 그 뜨거운 열망이 피어오르고 있다. '검찰개혁 대전',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