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0404.22017204536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2> 빙하기의 진정한 승리자-몽골인종

우리 선조들 작은 눈·납작한 코는 빙하기 이겨내기 위한 신체구조

1만2000년전 인류 지능 현대인 수준 주식은 매머드 美인디언도 한뿌리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8-04-03 20:46:19 |  본지 17면


바이칼 말타와 부레티유적에서 발견된 여인상과 조각품들. 대부분의 여인상은 둔부가 강조된 체형이다. 가장 왼쪽 여인만 날씬하고 몸에 달력용 눈금이 새겨져있다.


최근 '10000BC'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빙하기 때 인류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내용인데, 일부는 맞지만 어떤 부분은 틀린다. 먼저 이 당시 사람들의 지능은 현대인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맞다. 지금부터 약 5만 년 전에 등장한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는 현대인보다 조금 일찍 태어났을 뿐 뇌의 용적으로 볼 때 언어 구사력이나 기타 능력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류였었다. 대신에 매머드나 검치호 같은 동물을 다루어서 거대한 건축물을 만든다는 점은 전혀 맞지 않는다. 당시 사람들은 지혜롭게 매머드를 사냥하긴 했지만, 혹독한 빙하기 속에서 쉽지 않은 삶을 이어왔다고 보는 편이 더 옳다.


그렇다면 왜 영화제목이 '10000BC'일까? 그것은 약 1만2000년 전에 빙하기가 끝나면서 지구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기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때가 지질학적으로 홍적세와 충적세가 나뉘며 고고학적으로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가 갈리는 시점이다. 구석기가 나오는 땅은 홍적세로 주로 강가 언덕의 붉은 진흙층을 생각하면 된다. 즉, 사람이 만든 돌이 나왔다고 다 구석기는 아니고 홍적세에서 나와야 진정한 구석기로 인정받는 셈이다.


구석기시대인들은 야외에서 살기도 했지만 맹수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동굴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발굴을 하려면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 몇 미터가 되는 구덩이를 파고 작업하는 중노동을 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몽골의 초원지대 같은 경우는 수십만 년 전의 유물이 그냥 땅 위에 널려있기도 하다. 이런 경우 층위는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발굴보다는 차 위에서 1m짜리 격자를 던져서 그 안에서 나오는 석기를 표본조사하는 식이다. 그래도 한 일주일만 조사하다보면 트럭의 짐칸은 석기들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그러니 석기 많다고 좋아할 리가 있겠나. 얼마나 지겨웠으면 내 지인은 대학원생 때에 던진 격자틀에 석기가 많으면 지도교수 몰래 옆쪽으로 슬쩍 옮기기도 했단다.


춥디 추운 빙하기의 진정한 승리자는 몽골인종이었다. 다부진 체구, 옆으로 찢어진 눈, 납작한 코, 튀어나온 광대뼈의 외모라면 성형외과에 가서 견적이라도 내볼 생각을 해봄직하다. 하지만,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은 추운 빙하기를 견디기 위해 발달된 구조로 빙하기를 이겨낸 신체구조이다. 콧구멍이 작은 이유는 추운 공기가 대거 유입되어서 체온이 떨어지고 폐렴이 걸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고 튀어나온 광대뼈는 튼튼한 하악골을 지지하기 위한 것이다. 또 눈이 작은 이유는 눈부신 설원에서 살아갔기 때문이다. 이 당시의 예술품들을 보면 키 작고 엉덩이와 허리가 뚱뚱한 여자가 최고 미인 대접을 받았던 것 같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피하지방이 많이 축척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손을 많이 낳고 생존 가능성이 큰 사람이 이상적인 이성상이었을 것이다.


유라시아의 황량한 추위 속에서 살았던 이들의 주 식량원은 매머드였다. 매머드는 초식동물이고 거대한 몸이니 적당한 사냥감이었다. 게다가 뼈로는 각종 도구를 만들고 집의 골조로도 썼다. 왜소한 체격의 사람들이 매머드를 사냥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서 매머드를 함정에 빠뜨리거나 절벽쪽으로 몰아간 후 창이나 세석기를 이용해서 숨통을 끊었다.


후기 구석기시대의 몽골인종은 매머드 무리를 따라서 베링해를 건너서 아메리카로 건너가서 아메리카 원주민이 되었다. 당시에는 빙하기인 탓에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가로지르는 베링해협은 군데군데 호수가 있는 상태로 육지로 이어졌다. 매머드를 따라서 이동하던 빙하기의 사람들은 이때에 미국대륙으로 넘어갔으며 후에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의 조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구석기시대의 매머드 사냥꾼들은 어떤 도구로 매머드를 잡았을까? 약 5만 년 전 부터 유라시아 대륙에서는 세석인(좀돌날)을 이용한 새로운 석기 제작기술이 등장한다. 정제된 돌을 뼈나 나무를 이용해서 면도칼처럼 얇게 떼어내서 이를 나무나 뼈 손잡이에 붙여서 쓰게 되었다. 단순히 돌을 깨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날을 갈아서 좀 더 정교한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부산, 해운대의 좌동·우동 그리고 청사포에서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1990년대 초반 해운대 신시가지를 건설하면서 이 지역의 문화재조사를 한 결과 현재의 대천변 근처에서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다. 또 청사포와 우동 근처에서도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확인되었으니 부산에서 사람들은 적어도 몇 만년 전부터 거주한 셈이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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