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1017.22016203516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28> 사라지는 사람들 시베리아의 에벤키족

순록 키우던 유목민들 소비에트 붕괴 후 생활고에 도시로

흔히 듣는 '퉁구스' 뜻해…사회주의 시절 대접받던 민족 알코올 중독 등으로 몰락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08-10-16 20:39:58 |  본지 16면


시베리아 원주민의 무덤. 관을 나무위에 걸어서 천천히 육탈시킨다. 이러한 풍습도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중국에는 56개의 소수 민족이, 러시아에도 비슷한 수의 민족들이 있다. 선사시대 이래로 시베리아와 극동의 역사를 담당했던 이들이 사라지고 있다.


바이칼 동쪽에서 극동지역에 이르는 지역의 소수민족은 크게 고아시아족과 퉁구스-만어족계통으로 나뉜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명칭인데, 원래는 언어의 분류였지만 지금은 문화의 계통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아시아족은 글자 그대로 옛날부터 아시아에서 살던 사람들로 지금은 사할린, 캄차카, 츄코트카 등 극동에서도 변방에 살면서 사냥과 채집에 주로 종사했다.


일반인들도 몇 번 들어봤을 법한 퉁구스라는 이름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바로 에벤키라는 사람들이다. 시베리아, 극동, 그리고 북중국의 넓은 지역에서 순록을 키우며 사는 사람들이어서 가히 시베리아를 대표하는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퉁구스라는 이름은 에벤키와 사이가 안 좋았던 주변의 야쿠트족이 비칭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1908년 시베리아에 운석이 대폭발한 사건을 '퉁구스카 대폭발'이라고 하는데 바로 퉁구스(에벤키)가 살던 지역에 운석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충격의 여파가 지구를 수십번 돌고, 제주도만한 크기의 땅이 순식간에 폭발했지만 인명 피해는 거의 없었다. 전 시베리아에 사는 에벤키 족이라고 해봐야 기껏 3만 명 남짓하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X-file시리즈에도 퉁구스카가 나오고 비디오 게임, 러시아제 무기 대공방어전차도 퉁구스카이니 원주민보다는 초자연적과 신비로운 의미로 더 유명하다. 에벤키족은 순록과 함께 유목생활을 한다. 한 지점에서 순록이 좋아하는 이끼와 풀이 없어지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보통 같은 자리로 돌아올려면 30년 정도가 걸리는데, 순록이 먹어치운 이끼와 풀이 다시 생장하자면 20년남짓한 시간이 걸린다. 즉,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공존하는 것이다.


소비에트 시절 에벤키는 비교적 대접은 잘 받았다고 한다. 모든 에벤키족은 국영농장에 속해서 국가의 순록을 키우고 필요에 따라 공급하는 식이다. 즉, 100마리의 순록이 있으면 그중 70마리는 국가, 30마리는 개인이 소유하는 식이다. 따라서 국가로부터 월급도 지급받는데, 인적없는 툰드라에서 돈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장부상으로 기록만 되고 대신에 밀가루, 소금, 설탕 등의 생필품을 지급받았다. 학생들은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시키고 본인의 의지에 따라 도시에서 대학교육을 받든지 고향으로 돌아갔었다. 학생들은 겨울에 읍내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고 방학에는 부모 따라 유목생활을 했다. 학생들의 이동은 대부분 헬리콥터로 이루어진다. 순록 몇 마리 팔아서 이 모든 비용이 나올리는 없고, 대부분 국가에서 재정지원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에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신천옹 같이 국가의 지원에 의지하던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큰 고통에 시달리며 자신의 전통적인 삶을 포기하고 도시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필자가 에벤키족에 조사갔을 때였다. 젊을 때에 도시로 나가서 대학 졸업하고 직장도 가졌으나 결국 자기가 살던 고향으로 돌아와서 유목생활을 하고 있었던 어느 노인을 만났다. 그 때 노인은 "에벤키는 풀과 순록이 있어야 에벤키지, 도시에 사는 에벤키는 그냥 야만인일 뿐이지"라고 말했다. 도시로 나와 사는 소수민족은 결국 동화되어 정체성을 잃게 되고 만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소수민족 사이에 알코올이 유행하게 된 것이다. 선천적으로 알코올분해효소가 없는 시베리아와 극동의 원주민들은 조금만 술을 먹어도 금방 중독이 되었고, 또 그런 사람들이 자식을 낳다보니 기형이나 병이 있는 아이들이 태어나게 되었고 그렇게 그들은 조금씩 사라져가게 되었다. 필자가 수추섬 발굴을 할 때 바로 앞에 제법 큰 마린스코예라는 마을이 있었다. 아무르강을 따라서 대부분의 마을이 폐촌이 되다시피 했다면서 촌장이 자탄하던 말이 떠오른다. "러시아사람들은 소수민족들에게 알코올을 전해줘서 피해를 주더니 결국 자신들도 알코올로 망해가는 거요!"


북방의 원주민들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역사의 순리일지도 모른다. 자기의 나라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은 늦건 빠르건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3일은 개천절이었다. 우리 민족이 자신의 국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북아시아와 시베리아에 거주하던 수십 개의 민족 중에 자기의 국가를 가진 민족은 우리밖에 없으니 말이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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