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89548
30년째 일본 우익 공격 받는 기념관 "돈 없어 폐관 위기"
[인터뷰] 30년째 강제동원기념관 지키는 이용식 단바망간기념관 관장
19.11.24 16:29 l 최종 업데이트 19.11.24 16:29 l 김종훈(moviekjh)
▲ 이용식 단바망간기념관 관장 ⓒ 김종훈
일본에 조선인 강제동원 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본 교토시 단바 지역 망간광산 갱도에 있는 '단바 망간 기념관'은 일본에 있는 5000여 개의 기념관 중 유일하게 강제동원 자료를 전시한 곳이다. 여기서 탄광 노동자로 일했던 이정호씨가 폐광산을 정비해 1989년에 세웠다.
단바기념관에는 강제동원 노동자 상을 비롯해 당시 사용한 장비, 광석까지 완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다. 당시의 식당과 갱도도 복구돼 있다. 300m가 넘는 갱도 곳곳에는 괭이로 망간을 캐는 노동자 마네킹이 있다.
기념관 입구에 세워진 강제동원 노동자 상 하단에는 "눈 감아야 보이는 조국의 하늘과 어머니의 미소, 그 환한 빛을 끝내 움켜쥐지 못한 굳은살 베인 검은 두 손에 잊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드린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기념관은 지난 2009년 재정 압박으로 폐관했다가 2010년 '단바망간기념관재건위원회'가 결성되는 등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2012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운영난은 계속되고 있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24일, 일제시대 강제노역 현장인 단바망간기념관에서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상(像)’ 제막식을 열었다. ⓒ 금속노조 경남지부
아버지에 이어 기념관을 운영하고 있는 이용식 관장이 단바기념관을 살리기 위해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연평균 300만 엔의 적자가 30년간 누적돼 왔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걱정은 한일 관계가 안 좋아지면서 한국에서 오는 방문객도 1/3로 줄었다는 점이다. 단바기념관을 살리고 싶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만난 이 관장은 "강제동원 역사를 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일본은 학교에서도 미디어에서도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심지어 '침략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단바기념관은 이를 알리는 시설"이라고 강조했다.
자이니치의 뿌리를 찾아
이 관장의 아버지 이정호씨는 1928년에 조선에서 태어나 2살 때 일본에 왔다. 일본에서 학교도 다니고 졸업까지 했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당했다. 특히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광산일 말고는 다른 일을 구할 방도가 없어 16살 때부터 유리 제조 원료인 형석을 캐기 시작했다.
기념관이 세워진 단바 망간 광산 역시 이정호씨가 일했던 300여 개의 단바지역 광산 중 하나였다. 그는 그곳에서 3000여 명의 조선인들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는 광경을 봤다. 이정호씨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이 관장은 "아버지는 30년 넘게 광산에서 일하며 망간을 캐다가 결국 진폐증에 걸렸다"라며 "남은 생을 자이니치(재일조선인)의 뿌리를 찾는 데 바치기로 하고 기념관을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단바망간기념관 입구. ⓒ 광주드림
1995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어머니가 자신의 연금을 기부하고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기념관을 지켰다. 아들 이용식 관장 역시 사비를 들여가며 기념관을 함께 지켰다.
그러나 더는 버티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연간 500만 엔(5000만 원) 정도 유지비가 필요하다. 어머니가 생존해 계실 때는 연간 본인 연금인 200만 엔을 전액 기부했다. 나도 100만 엔을 채웠다. 하지만 그때는 연 5000명이 오면서 버티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작년 기준으로 700명밖에 안 왔다. 지난 9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더욱 유지하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개관하는 날부터 시작된 일본 우익의 공격
일본 우익의 공격에도 시달리고 있다. 1989년에 기념관을 세운 이래 '일본은 강제연행을 하지 않았는데 왜 거짓말을 하느냐', '말도 안되는 짓을 한다'라는 전화가 계속 오고 있다고 한다. 2016년에 강제동원 노동자 상을 건립한 후에는 항의가 더 거세졌다고.
지난 2015년에는 극우단체인 재특회(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가 단바기념관까지 찾아와 항의시위를 하기도 했다. 재특회는 한국과 재일한국인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을 적극 찬동하는 단체다.
이 관장은 "일본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를 말하면 일본인들은 일본을 안 좋게 말한다며 싫어한다"면서 "오히려 나는 '일본을 위해 이것을 지어놓은 것이다'라고 말한다. 일본이 독일처럼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보전하면 주변국으로부터 오히려 신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너는 조선인이라 도움받을 수 없다'
▲ 단바망간광산 갱도 어귀. ⓒ 박도
▲ 단바망간기념관 자료실 게시 및 전시물들 1. ⓒ 박도
이 관장과 아버지 이정호씨는 단바기념관이 세워지기 전부터 지방 정부에 운영보조금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개관 때부터 교토에 (지방) 정부에 가서 여러 번 요청을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두 거절당했다. 그때 (정부에서 일하는) 아버지 친구 분이 '너는 조선인이라 도움받을 수 없다'라는 말을 해줬다. '불가능하다'라는 사실을 안 뒤로는 요청을 하지 않고 있다."
이 관장은 "한국 정부에도 지원을 요청한 적 없다"면서 "단 한번 이명박 정부 때 국민포장으로 500만 원을 받은 적이 있다. 재외동포 권익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은 건데 단바기념관이 아닌 나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에서 꾸준히 찾아와 아버지의 뜻에 공감하고 동의해주는 분들이 있어 뿌듯하다"라면서 "단바기념관이 강제동원의 역사뿐 아니라 재일동포들이 왜 일본에서 계속 살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시키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이 관장은 22일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고 한국노총 주관의 후원행사에 참석했다. 일본으로 돌아가는 날인 23일에는 용산역 앞에 세워진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찾았다.
▲ 단바를 살리자 포스터 ⓒ 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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