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cr.d_0006_0010_0020_0010_0010
1) ‘안학궁’이란 명칭의 유래
고구려 안학궁 조사 보고서 2006 > 안학궁의 역사적 배경과 기존의 연구 성과 > 안학궁의 역사 내력
노태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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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학궁에 관한 기록이 처음 확인되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양부」 〈고적〉조에서 이다. 장안성에 대한 주에 “(장안성은) 대성산 동북에 있으며, 토축으로 둘레가 5,160척이고, 높이가 19척이다. 고구려 평원왕 28년 평양에서 이곳으로 이거하였다. 성에는 안학궁 옛 터(故址)가 있다”라고 하였다. 이에서 말하는 ‘장안성’은 현재의 안학궁을 둘러싼 방형의 성벽이 처진 공간을 의미하고, 안학궁 옛 터는 그 ‘장안성’내에 존재하는 궁전 터를 의미하였다. 安鶴宮의 ‘安鶴’은 현지 말로 ‘아낙’이라 발음이 나며 그 뜻은 ‘內’를 의미한다. 즉 안학궁은 ‘內宮’이란 뜻으로서, 장안성 내에 있는 궁이다는 의미가 되겠다.
물론 586년 평원왕 28년에 이거하였던 장안성은 안학궁 터 자리가 아니고 현재의 평양시 중심부 지역에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사는 평양성과 장안성의 관계를 잘못 파악하였던 것이다. 이는 장안성이나 평양성이 모두 같은 평양 지역 내에 존재하였고, 이미 고구려 말기에 장안성을 평양성이라 칭하였으며, 고려와 조선 시대에 지금의 평양시 중심부 지역에 위치한 성을 평양성이라 칭하였기 때문에 자연 장안성을 인근의 다른 지역에 위치하였던 것으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안학궁 옛 터에 대한 발굴 조사에서 고구려 기와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남으로 성문이 세 개 나있는 안학궁 터의 평면도는 윗 쪽에 문이 세 개 그려져 있는 약수리 고분의 성곽도와 통한다. 즉, 후자는 대성산에서 내려다 본 안학궁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안학궁 터는 고구려 때의 건물 유적이 분명하고, 그 웅장한 규모로 볼 때 고구려의 궁성이었음이 분명하다.
고구려가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것은 427년이다. 이에 앞서 고국원왕 13년(343) 7월 ‘평양동황성’으로 이거한 바 있다. 이 성이 서경(평양)의 동쪽에 있는 목멱산에 있다고 『삼국사기』에서 전하였는데, 그 구체적인 위치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아무튼 이 ‘이거’는 장기적인 계획에 입각해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342년에 있은 모용연과의 전쟁에서 큰 타격을 입은 뒤 취한 임시적인 비상 조처였다. 평양으로 옮겨온 고구려 조정이 그 뒤 언제 다시 국내성으로 되돌아갔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전승이 없다. 포로로 잡혀갔던 왕의 모후가 송환되고 모용연과의 관계가 정상화된 355년을 상한으로 하고, 백제와의 평양성 전투에서 왕이 전사한 371년을 하한으로 하는 기간 중 어느 해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갑작스런 이거였고 평양에 머문 기간도 길지 않았던 만큼, 자연 당시 평양은 수도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갖추었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본격적인 수도로서의 평양 시대는 장수왕 15년(427)의 천도에 의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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