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levelId=tg_001_0860


좌평 (佐平)


유의어 : 6좌평(六佐平), 상좌평(上佐平), 5좌평(五佐平), 좌솔(左率)


백제의 제1관등이자 최고위 관직.


처음에 좌평(佐平) 관등은 귀족들을 대표하는 성격이 강했다. 귀족 회의의 의장으로서 왕을 도와 국정을 이끌어 나가던 존재였다. 하지만 점차 왕권이 강해지고 중앙 집권 체제가 갖추어지면서, 좌평은 왕을 보좌하여 행정을 총괄하는 재상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좌평 직위를 가지는 사람도 늘어나면서 여러 등급의 좌평으로 분화되었다. 408년(백제 전지왕 4년) 상좌평(上佐平)을 두어 나랏일을 총괄케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좌평의 수가 늘어나면서 좌평의 대표로 상좌평을 설정한 것이다. 이로써 좌평이 2~3명 정도로 분화⋅증설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6세기 초 무렵에는 좌평 직위가 5명으로 늘어났으며, 6세기 중반쯤에 중앙 관제의 대대적 정비에 발맞추어 6좌평제가 성립되었다.


6좌평제는 재상 관직의 성격을 가진 좌평을 맡은 직무에 따라 6가지로 구분한 것이다. 국가가 발전하면서 행정 업무의 범위와 양이 크게 늘어나자,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업무를 나누었다. 그리고 최고 직위인 좌평이 행정 업무를 나누어 관장하는 체제를 마련한 것이다. 6좌평제가 된 것은 백제가 관제를 정비하면서 중국의 6전(六典) 제도, 곧 국가 행정 업무를 6개의 큰 범주로 나눈 것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6좌평의 업무 분장은 다음과 같다. ①내신좌평(內臣佐平): 왕명 출납, ②내두좌평(內頭佐平): 창고⋅재정, ③내법좌평(內法佐平): 예법⋅의례, ④위사좌평(衛士佐平): 왕궁 수비, ⑤조정좌평(朝廷佐平): 형벌⋅감옥, ⑥병관좌평(兵官佐平): 지방 군사.


하지만 점차 중앙 관부인 22부를 중심으로 업무가 수행되면서 좌평의 업무 총괄 역할은 약화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657년(백제 의자왕 17년)에 의자왕(義慈王, 재위 641~660)은 자신의 아들 41명을 좌평으로 삼았다. 이는 좌평의 수가 크게 늘었음을 보여 주는 동시에, 좌평이 지위를 나타내는 관등의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음을 보여 준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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