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96684
검찰 개혁 요구에도, '윤석열 검찰' 이탈자가 드문 이유
[대한민국 검찰실록 10] 검찰은 어떻게 '강철대오'가 됐나
19.12.19 07:50 l 최종 업데이트 19.12.19 08:03 l 김종성(qqqkim2000)
▲ "제7차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도로에서 사법적폐청산연대 주최로 열렸다. 2019.9.28 ⓒ 권우성
지난 9월부터 전국 곳곳의 국민들이 서울 서초동과 여의도에 모여 검찰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그런데 촛불집회가 이어지는 지금까지도 검찰 내부에서는 별다른 징후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소수의 검사들이 바른말을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도리어 검찰 조직이 청와대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압박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검찰이 윤석열 총장을 중심으로 평온한 외양을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도리어 공세적 태도까지 보여주는 것은, 이들의 조직력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A 검사가 하든 B 검사가 하든 같은 검사가 처리한 사건으로 간주
경찰도 아니고 군대도 아닌 대한민국 검찰이 이런 조직력을 갖게 된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우선은, 검사동일체 원칙을 무기로 사법대신(법무대신)에 맞서 똘똘 뭉친 제국주의시대 일본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가 식민지배를 통해 한국에 이식된 데서 찾을 수 있다.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형 질서 속에서 검찰은 유기적인 상호 관련성을 갖는다. 그래서 총장이 특정 사건을 이 검사에게서 저 검사로 넘긴다 해도, 동일한 검사가 사건을 처리한 것으로 간주된다. 모든 검사는 동일체라는 관념 때문이다. 이런 논리가 한국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에 적지 않게 기여한 또 다른 것이 있다. 바로, 검찰의 계급제도다. 한국 검사들은 수사관 이미지를 많이 띠고 있지만, 검사의 원래 본분은 법률가다. 법률가는 법을 연구하고 해석하기 때문에, 집단보다는 개인으로 활동하는 일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여럿이 회의하거나 세미나 하는 일도 있지만, 법률연구 활동은 아무래도 혼자서 많이 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검찰 조직에는 계급제도가 원칙상 불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검찰의 역사에서는 이 계급제도가 등장했다. 이것이 상명하복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1987년 6월항쟁 이전의 검찰은 지금의 검찰처럼 막강하지 않았다. 물론 일반 국민들한테는 지금과 다를 바 없이 두려운 존재였지만, 정치권력 앞에서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이 나왔을 정도다.
그런 검찰을 상대로 계급장을 달아준 정권이 있다. 바로 전두환 정권이다.
1981년 개정 이전 검사들은 원칙상 상호 평등
전두환 자신에게 친숙한 군대 문화가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에 검찰에 전파됐다. 이로 인한 결과가 1981년 4월 13일 개정된 검찰청법 제5조의 2다. "검사의 직급은 검찰총장, 고등검사장, 검사장, 고등검찰관과 검찰관으로 구분한다"라는 규정이다.
그 전까지는 검사들을 서열화하는 직급이니 계급이니 하는 게 없었다. 검찰 내에 신분제도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보직은 당연히 있었다. 군대로 치면, 소위·중위·대위 같은 계급이 없고 소대장·중대장·대대장 같은 보직만 있었던 것이다.
1981년 개정 이전의 검찰청법에는 "고등검찰청과 지방검찰청에 검사장을 둔다. 검사장은 그 검찰청의 사무를 장리(掌理)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이 경우의 검사장은 1981년 검찰청법상의 고등검사장 및 검사장과 달랐다. 1981년 개정 이전의 검사장은 고검·지검의 관리자를 지칭하는 표현에 불과했다. 계급이나 직급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1981년 개정 이전의 검사들은 원칙상 상호 평등했다. 보직에 의한 상하 구분은 있어도 '신분제도'에 근거한 상하 구분은 없었다. 그랬던 검찰 문화에 전두환 정권이 계급 제도를 이식했던 것이다.
이 조치에 담긴 전두환 정권의 의도가 1988년 2월 4일자 <동아일보> 기사 '검찰의 독립'에 설명돼 있다. 검찰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원인을 진단하는 대목에서 이 설명이 나온다.
"왜냐하면 군대 등 강제조직에서나 요구되는 엄격한 상하 명령복종관계를 강조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의 지나친 확대·강화, 81년 4월 검찰청법 개정으로 창설된 검찰의 군대식 계급화 즉 검찰총장 고등검사장 검사장 고등검찰관 검찰관 등 5계급으로 구분하고 그에 상응하는 계급정년제를 두는 검사의 직급제, 검사의 임명 보직을 법무장관 제청으로 대통령이 행하도록 하는 것 등등이 모두 검찰의 하수(下手) 기능 강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이 검찰 계급제와 계급정년제를 제정한 것은 검찰을 군부정권의 하수인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위 기사는 분석한다. 검찰의 조직 환경을 군대식으로 바꿈으로써 군부 정권이 다루기 용이하게 만들려 했던 것이다. 검사 동일체 원칙에 의해 안 그래도 똘똘 뭉쳐 있던 검사들을 계급 제도를 매개로 또 한번 묶어주는 일이 이처럼 전두환 정권 때 있었다.
1981년 검찰청법이 규정한 5등급의 검사 계급은 1993년 3월 10일 개정된 검찰청법에서는 4등급으로 완화됐다. 이때는 고등검찰관과 검찰관을 검사로 통일해 검찰총장-고등검사장-검사장-검사로 서열화했다.
이 서열 구조는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4년 1월 20일의 검찰청법 개정으로 대폭 완화됐다. 이날 개정된 검찰청법 제6조는 "검사의 직급은 검찰총장과 검사로 구분한다"고 함으로써 검찰 직급제도를 형식상 존치시키되 이를 실질적으로 형해화시켰다.
그런데 3년 뒤인 2007년, '대검찰청 검사급 이상 검사의 보직 범위에 관한 규정'이라는 대통령령이 새롭게 제정됐다. 법조문이 단 2개인 이 규정의 제정 목적은 대검찰청 검사급 이상의 검사가 임명될 수 있는 검찰 보직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그 보직 범위를 열거한 제2조에 '고등검찰청 검사장'과 '지방검찰청 검사장'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고등검사장과 검사장 계급을 부활시킨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계급이 있었던 시절에 대한 검찰의 향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자료사진). ⓒ 연합뉴스
이처럼 경찰식 혹은 군대식 계급 문화가 검찰의 상명하복 문화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 2004년 검찰청법에서 검찰총장과 검사로 계급을 단순화시키기는 했지만,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계급제도가 남아 있다. 이런 계급 문화가 검찰을 지나치게 단결력 강한 조직으로 만들어놓았다. 그 지나친 단결력이 지금에 와서는 검찰 개혁 요구에 맞선 조직적 움직임으로 응집되고 있다.
전두환 정권이 검사들에게 계급장을 달아준 것은 검찰을 만만히 봤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렇게 생겨난 계급장 문화를 소중히 여길 게 아니라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검사 동일체 원칙과 더불어 계급장 문화에 기인한 과도한 단결력 역시 그렇게 여겨야 한다. 그런 단결력을 국민들을 상대로 발휘하는 것은 더욱 더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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