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34454.html


코로나를 쓴 신의 대리인 ‘샤먼’

등록 :2020-03-27 05:59 수정 :2020-03-27 10:38


[책&생각] 강인욱의 테라 인코그니타 (21) 유라시아의 샤먼과 신라의 금관


수천년 유라시아인들과 함께하며 고통 대신하는 면류관 쓴 ‘신의 중개자’

샤먼은 지혜를 얻고 앞날을 예측해 생존하려는 현생인류 지혜의 집적체다


‘코로나’는 ‘크라운’과 같은 어원으로 왕이나 귀족들이 쓰는, 끝이 하늘로 올라가듯 뾰족하게 장식된 관을 말한다. 최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바이러스도 그 표면에 돌기가 나 있어 ‘코로나’라는 이름이 붙었다. 멕시코와 러시아의 최고 인기 맥주들에도 ‘코로나’라는 이름이 붙는데, 그것은 맥주 거품이 마치 왕관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이런 왕관은 지난 수천년간 유라시아 사람들과 함께한 대표적인 제사장인 샤먼들이 써왔던 관에서 유래했다. 샤먼은 평범한 사람 중에서 선택을 받아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통로 구실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관에 표현된 사슴뿔이나 나무 형상은 하늘과 맞닿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대륙은 물론 신대륙 전역에도 퍼져 있는 샤먼의 관은 흔히 생각하는 화려한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권력의 상징이 아니었다. 샤먼은 스스로 신을 자처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신의 뜻을 전하는 중개자 노릇을 했다. 샤먼은 불완전한 존재로 험난한 세상을 개척해야 하는 사람들의 지혜를 모아서 하늘과 자연에 순응하며 생존하려는 인류의 지혜를 모으는 현자의 역할을 했다.


하늘의 지혜를 아는 사람들


샤먼의 어원은 ‘지혜가 있는 자’라는 뜻인 에벤키(퉁구스)어의 ‘사만’에서 기원했다. 한자로는 무(巫). 무당이라는 뜻의 이 한자는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 하늘과 땅(二) 사이를 잇는다(|)는 뜻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파스칼의 명언처럼 인간은 육체적으로 갈대같이 나약한 존재지만 그들의 지혜와 미래에 대한 고민은 깊다. 즉, 미물도 아니고 신과 같은 능력자도 아닌 인간은 서로 모여서 지혜를 나누고 자신의 생존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보통 인간의 능력을 넘는 지혜, 즉 하늘의 뜻을 읽어내는 중개인을 갈망했다. 그런 초월적인 지혜라는 것은 날씨 예측, 병의 원인과 치유 같은 것이다. 요즘에는 너무나 쉬운 것들이지만 과거에는 인류가 각종 자연재해와 전쟁에도 멸종하지 않고 살아오게 한 원동력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없는 우리의 앞날에 대한 정보를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서 그러한 지식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늘의 뜻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샤먼 또는 무인(巫人)이라 불리는 예언자가 등장했다. 샤먼이라는 용어 자체는 시베리아의 원주민한테서 기원했지만 사실상 똑같은 종교적 지도자들이 한국을 포함한 유라시아 전역, 신대륙, 그리고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금령총에서 발견된 신라 금관. 사슴뿔과 나무 장식이 보인다. 강인욱 제공


왜 샤먼은 코로나를 썼을까?


샤먼은 신의 뜻을 전달하는 중개인이지 스스로 신을 자처하지는 않았다. 평범한 인간인 그들이 신을 대리하는 그들의 통로에 이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샤먼들은 신과 맞닿는 황홀경(엑스터시)에 오르기 위하여 화려한 의식에 각종 약초와 술을 마시고 의식을 행했다. 유라시아 초원에 수도 없이 새겨진 샤먼의 의식을 묘사한 암각화는 바로 그러한 평범한 인간들이 신에 닿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보여준다. 특히 유라시아 초원에는 버섯머리가 그려진 샤먼들이 많은데, 학자들은 이것이 의식에 사용하던 환각제 버섯이라고 말한다.


샤먼의 관도 신과 인간을 연결하기 위한 그들의 열망이 표현된 의식도구다. 요즘 말로 하면, 신의 뜻을 받기 위한 일종의 ‘와이파이’ 같은 것이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요소로는 나무와 사슴뿔의 이미지가 널리 사용되었다. 이런 사슴뿔을 한 샤먼의 모습은 1만5천년 전 프랑스 동굴 벽화 트루아 프레르(Trois Frères)에서 처음 발견된다. 시베리아의 샤먼은 신석기 시대부터 최근까지 거의 같은 형태의 사슴뿔 모양을 한 관을 쓴다.


또 다른 관을 꾸미는 나무 장식은 흔히 ‘세계수’라고 해서 땅에서 하늘을 잇는 역할을 한다. 마치 영국의 동화 <잭과 콩나무>처럼 하늘로 이어지는 통로가 된다. 지금도 에벤키와 같은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사람이 죽으면 하늘로 뻗은 나무에 영혼이 깃들어 하늘과 이어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 나무에 사는 새는 하늘과 땅을 잇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신라의 금관에도 출(出)자형과 사슴뿔의 이미지가 장식되었고, 약간 형태를 달리하지만 비슷한 이미지는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 대륙의 샤먼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전세계에 똑같은 이미지로 구성된 샤먼의 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구석기 시대의 샤먼이 빙하기 직후 세계 곳곳에 퍼졌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사슴은 매년 봄에 뿔이 자라고 나무는 매년 봄에 꽃이 피고 곤충과 새가 깃든다. 샤먼의 관은 그런 끊임없는 생명력의 상징으로 장식되었다.


흑해 연안 사르마트 고분의 금관을 쓴 사제의 복원도. 강인욱 제공


샤먼의 관에서 권력을 독점했던 황금관으로


샤먼의 관이 강력한 국가의 금관으로 재탄생하게 된 데에는 유라시아 초원에서 발흥한 유목민족의 문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흉노와 훈족이 등장한 서기 1~5세기 사이에 유라시아 각지에서 초원의 영향을 받은 금관이 속속 발견되었다. 특히 1920년대 경주의 금관총 발굴로 신라의 금관이 처음 알려지자 세계 고고학계는 충격에 빠졌다. 흑해 연안의 유목민인 스키타이나 사르마트의 고분, 그리고 북유럽의 켈트족 샤먼이 사용했던 금관과 거의 유사한 형태가 이 동아시아 끝자락인 경주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세계 곳곳에서 속속들이 비슷한 왕관들이 발견되었다. 사실, 정작 흉노나 훈족 사이에서 금관은 널리 유행하지 않았다. 말을 타고 전쟁을 해야 하는 기마민족이어서 머리에 금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초원의 기마민족은 황금을 덧붙인 화려한 황금외투와 바지를 입었다. 기마민족 중에서는 샤먼의 역할을 했던 여성 사제들만 일부 금관을 썼을 뿐이다. 하지만 초원 기마문화의 황금 제조 기술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원래 유라시아에 존재하던 샤먼의 전통과 결합되어 화려한 금관으로 재탄생되었던 것이다. 신라에서 흑해 연안까지 서로 너무나 유사한 금관이 발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고대의 국가들이 등장하며 쓰게 된 화려한 금관은 그 전 샤먼의 관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원래 샤먼은 신이 아니라 신을 대신하여 말을 전하는 중개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왕은 스스로 신이 되었고, 그들이 쓴 금관은 신과 소통을 하는 ‘와이파이’가 아니라 독점적 권력의 상징으로 바뀐 것이다. 원래는 과거의 왕들도 절대적인 권력자가 아니라 하늘의 대리인에 불과한 일종의 샤먼들이었다. 갑골문자로 유명한 3500년 전 중국 상나라의 왕은 수하에 정인(貞人)이라 불리는 점치는 사람들과 함께 매일 저녁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며 거북이 등딱지나 사슴의 어깨뼈로 점을 쳤다. 중국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이 바로 이런 점괘를 모은 것에서 시작했다. 그 점괘가 틀리기라도 하면 왕은 소위 ‘천명’을 받는 와이파이가 끊긴 것으로 간주돼서 그 지위를 박탈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국가가 점차 커지고 계급사회가 강해지면서 왕은 샤먼의 점 대신에 관료와 행정조직을 만들어서 국가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대신하던 샤먼의 관은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관으로 바뀌어서 권력을 세습하는 상징으로 변화한 것이다.


부랴트의 샤먼이 황홀경에 오르자 사람들이 다가와서 점괘를 듣는 모습. 2014년 필자 촬영. 부랴트공화국.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샤먼들


금관을 쓴 왕이 막강한 권력을 독점했다고 샤먼의 전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불교와 같은 거대한 종교의 틈새에서 여전히 살아남아서 사람들과 함께했다.


최근 바이칼호수를 중심으로 시베리아 샤먼의 의식은 다시 부활했다. 소련 시절의 혹독한 탄압을 이겨낸 부랴트(몽골 계통의 바이칼 지역 원주민)의 샤먼들은 매년 바이칼호수 근처에서 샤먼축제를 하면서 예전 샤먼의식을 부활하고 있다. 요란한 의식으로 빙의가 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놓고 샤먼의 말을 받아서 힘을 얻는다. 사실 샤먼이라고 해서 특별한 상류층의 사람들은 아니고, 같이 사는 이웃들이다. 그리고 샤먼들이 황홀경 상태에서 만나는 하늘의 신은 다름이 아닌 그들의 조상이다. 조상의 입을 빌려서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대대로 전해 내려온 지혜를 전하고, 또 사람들은 그의 말로 힐링을 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최근에 사용된 시베리아 샤먼의 관. 시베리아과학원 고고민족학연구소. 강인욱 제공


샤먼이라는 풍습이 전세계에 널리 퍼진 이유는 그들이 신을 자처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운명을 걱정하고 자손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인류의 보편적인 사랑과 생존본능이 발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샤먼들의 관은 사람들의 고통을 대신해서 전하는 ‘면류관’이었다. 자신을 신으로 자처하고 면죄부를 팔아 사람들을 속이는 일부 종교지도자, 그리고 자신만의 구원에 몰입되어 세상을 도외시하는 작금의 일부 그릇된 종교와는 다르다. 유라시아 전역에 수천년의 세월을 두고 유사한 코로나를 쓴 샤먼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생존을 위한 지혜를 얻고 앞날을 예측하려는 현생 인류가 발휘한 지혜의 집적체라 할 수 있다.


1만5천년 전 프랑스의 트루아 프레르 동굴의 벽에 그려진 사슴뿔을 한 샤먼 또는 마법사의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18세기 서양인이 본 시베리아 샤먼의 모습. 빗선의 <북동 타타르지>에서. 강인욱 제공


서기 10~15세기 남미 콜롬비아의 잉카문명에서 발견된 금관. 강인욱 제공


겨울에 병든 사람을 치료하기 위하여 눈 위를 가는 샤먼. 노보시비르스크 주립박물관. 강인욱 제공


경희대 사학과 교수





Posted by civ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