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26105.html


‘가타카나 신라 유래설’ 제기한 일본 학자 “‘각필’ 볼수록 확신”

등록 :2020-01-29 18:36 수정 :2020-01-29 20:47


[고바야시 요시노리 명예교수 인터뷰]

2020년 제기한 파격적인 학설로 한·일 고문서 학계에 파문 일으켜

연구 성고 담은 저서만 30여권, 11년째 한국 학자들과 공동 작업

“한일 고대어 해석에 중요한 각필, 일본 문자 탄생에 결정적 영향 줘

학문은 사실 발견과 해석의 과정, 일 학계서 소외된다 생각지 않아”


지난 28일 일본 나라 시내 호텔에서 만난 고바야시 교수. 일본 고찰 도다이사 소장 신라 화엄경 사경을 복제한 텍스트북을 펼쳐놓고 사경의 글자와 각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벌써 여섯 시간째다. 92살 먹은 일본인 노학자는 어두운 암실에서 눈을 부릅뜬 채 돋보기를 들고 1200년 전 신라인의 먹글씨로 채워진 불교 경전 필사본을 뜯어보고 있다. 불경 속 먹글자를 찾는 게 아니다. 그는 신라 승려들이 정성껏 옮겨 쓴 <화엄경> 필사본에 적힌 무수한 한자 옆의 여백을 주시했다. 신라인들은 필사본의 여백에 끝이 뾰족한 도구로 한자의 뜻이나 한자 단어를 잇는 신라말 조사의 발음을 담은 부호를 눌러 새겼다. 이른바 ‘각필’이다.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확 띄지 않는다. 두루마리 필사본을 펴들고 할로겐 조명등으로 여기저기 비춰야 부호의 흔적이 겨우 나타난다. 1200여년 전 신라인들이 썼던 생생한 입말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한 작업이라고 노학자는 말했다.


27~30일 일본 옛 도읍인 나라시의 큰 절 도다이사 경내 도서관에서 한국과 일본 고문서학자들이 모여 신라 불경 필사본 화엄경에 대한 공동 판독 작업을 했다. 학자들을 이끈 리더는 한일 고대문자 연구 권위자인 고바야시 요시노리(92) 히로시마대 명예교수. 그가 두루마리를 펴들고 불경 속 각필을 판독해 메모하면 옆에서 지켜보던 국내 원로학자 남풍현 단국대 명예교수와 정재영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권인한 성균관대 교수가 함께 각필 내용을 검토하고 생각이 일치하면 정자로 기록하는 작업을 거듭했다.


지난 28일 일본 나라 시내 호텔에서 만난 고바야시 교수. 일본 고찰 도다이사 소장 신라 화엄경 사경을 복제한 텍스트북을 펼쳐놓고 사경의 글자와 각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일 학자들이 도다이사에 모여 신라 불경을 공동 판독하는 프로젝트는 2009년 처음 시작됐다. 올해로만 벌써 15차 판독회다. 한국 학계에 신라 각필을 처음 소개하고 알린 고바야시 교수의 노력과 이에 호응한 한국 소장학자들의 의기투합 덕분에 성사된 독특한 한일 협력의 결실이다. 고바야시 교수는 ‘일본 특유의 가타카나 문자가 신라에서 유래했다’는 학설을 2002년 처음 제기했다. 가타카나가 7~8세기 일본에 전래된 신라의 불경 필사본에 발음과 뜻을 표시하기 위해 붙인 신라인의 각필에서 비롯되었다는 이 학설은 한일 고문서 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고바야시 교수는 또한 고대 신라와 일본의 불경, 문서에서 각필을 찾아내고 연구를 시작한 선구자로도 유명하다. 일본과 한국에 있는 고대 한반도의 각필 자료는 그가 처음 확인한 것들이다. 이런 연구 성과를 담은 저서만 30여 권을 냈고, 최근 수년 사이엔 그동안 연구 성과를 정리한 전집 9권도 냈다.


“2000년 한국 성암고서박물관에 찾아가 고려 초조대장경의 ‘유가사지론’을 보는데 글자 옆에 뾰족한 것으로 새긴 발음부호 같은 각필을 처음 발견했지요. 그게 한국과 일본 글자의 고대어를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리라 직감했어요. 그리고 2년 뒤, 일본 교토 오타니대학이 소장하고 있던 8세기 원효의 불교 논리학 저술 <판비량론>의 단편 조각에서도 그런 각필을 확인한 겁니다. 고대 일본인이 중국 등의 한자 문헌을 읽을 때 점을 찍거나 부호로 읽던 것이 가타카나가 된 건데, 여기에 신라 각필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을 논문으로 알렸지요. 이후 한국 학자들과 도다이사 소장 화엄경에 대한 공동 판독을 통해 똑같은 신라 각필을 다수 확인하면서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28일 저녁 나라 시내 숙소에서 만난 그는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했다. 고바야시는 공동 판독회를 하면서 일본 가타카나의 각필 기원론에 대한 근거 자료를 충실하게 확보하고, 한국에서도 각필 연구자가 나타나면서 연구 성과도 쌓인 것을 가장 큰 보람을 꼽았다.


그가 제기한 ‘일본 가타카나의 신라 각필 유래설’에 대해 일본 학계는 대부분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후배 학자들과 미묘하게 대치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학계의 거부감이 적잖은 만큼 90살 넘도록 연구해온 내용을 학회에서 새로 발표할 기회가 사라지지 않았느냐는 말에, 그는 의연하게 답했다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지 않을까요. 학문이라는 것이 밝혀낸 사실로 이야기하고 해석하고 평가를 받는 과정이니까요. 일본 학계에서 소외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사 마지막 날인 29일 다시 만난 그는 “오전 판독회에서 뜻밖에도 신라인이 남긴 각필 글자 5종을 추가로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너무 기뻐 함께 박수를 쳤다”며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도다이사 소장 신라 불경 필사본은 이번 조사를 끝으로 2년 넘는 수리 보수 작업에 들어간다. 사실상 마지막 조사가 되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싱긋 웃으면서 되받았다. “글쎄요. 몸이 성하다면 한국 연구자들과 또 조사할 겁니다. 63살에 정년이 도래해 교수직에서 물러난 뒤 10년 계획을 세워 전국을 돌며 각필 자료를 다 조사했어요. 고문서 연구는 몸의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아야 성과가 납니다.”


일본 나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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