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8469.html?_fr=mt2


‘재판 관여 맞다’면서 ‘영향은 없었다’는 법원

등록 :2020-02-16 22:00 수정 :2020-02-17 02:39


[사법농단 면죄부 판결 ‘아리송한 논리’]

임성근 부장판사 형사재판 개입

수정 요구받고 판결 고친 판사들

“재판 독립 침해 안 느껴” 진술

“부당개입 인정할 판사 있겠냐” 지적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문 위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재판 관여 행위가 피고인의 직권을 남용한 것이라 해도, 피고인의 재판 관여 행위와 일선 판사 및 합의부 판단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는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56·사법연수원 17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렇게 판단했다. 임 판사의 행위를 ‘재판 관여 행위라 위헌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실제 재판 결과는 임 판사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명시한 것이다. ‘법관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굳건한 전제 아래 내려진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일한 2014년 2월~2016년 2월 세 가지 형사재판에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로 재판에 넘겨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보도한 <산케이신문> 지국장 명예훼손 사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체포치상 사건 △프로야구 선수의 도박 사건이다. 검찰 수사 결과 임 판사의 요구는 재판에서 그대로 실행에 옮겨졌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이 허위라는 중간 판단을 내려달라거나, 산케이 지국장의 행동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질책해달라는 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민변 사건은 ‘양형 이유의 톤을 다운하는 게 어떨지 검토해달라’는 임 판사 말에 이미 등록된 판결문이 취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재판장이 피고인의 요청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법적 판단, 재판부 합의를 거쳐 독립적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재판 개입을 당했다는 일선 판사들의 법정 진술이 주요 근거였다. 재판부는 “임 판사 말이 계기가 됐거나 영향을 준 것은 맞지만 다시 찬찬히 생각한 뒤 배석들과 합의했다”(이동근 부장판사·산케이 지국장 사건) “임 판사와 지휘·감독 관계에 있다고 이해한 적이 없다. 재판 독립을 침해당했다 느껴본 적 없다”(최창영 전 부장판사·민변 사건)는 법정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재경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지시가 부당했지만 평정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 따랐다’고 말하면 모를까, 헌법과 법률에 의해 독립돼 판단해야 한다는 판사 중 누가 그렇게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더군다나 이들은 임 판사를 사석에서 ‘형님’이라 부르거나(최 전 판사), “선배 법관으로 잘 알고 지낸 사이”(이 판사)라고 밝힌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피고인 지시나 요청에 따라 판결 이유를 고쳤다는 게 재판장의 진술로 충분히 인정된다. 이대로라면 인사권자나 상급자의 어떤 재판 관여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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