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1059405.html


유럽보다 후퇴한 안전기준으로…정부, ‘원전=친환경’ 공식화

등록 :2022-09-20 18:50 수정 :2022-09-20 19:02 남종영 기자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이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원자력 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 체계에 포함하기 위해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 △원전 신규 건설 △원전 계속운전 등 3가지로 구성된 원전 경제활동 부분에 대한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이 20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원자력 발전을 한국형 녹색분류 체계에 포함하기 위해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 △원전 신규 건설 △원전 계속운전 등 3가지로 구성된 원전 경제활동 부분에 대한 초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원자력발전을 녹색에너지로 분류하는 내용의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수정안을 20일 발표했다. 이번 수정안은 환경과 안전을 고려해 비교적 엄격한 조건을 내세운 유럽연합(EU) 기준보다 대폭 완화된 것이어서, 윤석열 정부 들어 추진하는 ‘원전 확대’ 시간표를 맞추기 위한 요식적인 절차라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는 이날 브리핑을 열어 “유럽연합이 원전을 녹색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등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국내외에서 원전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며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앞서 지난 7월 유럽연합은 ‘2025년까지 사고 저항성 핵연료 사용’ 등의 조건을 달고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시킨 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 원전(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두산에너빌리티를 방문해 신한울 3·4호기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용 주단소재 보관장에서 한국형 원전(APR1400)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가 이날 발표한 내용은 크게 세가지다. 우선, 정부는 신규 건설하는 원전에 원자력안전법 등에 규정된 ‘최신기술기준’을 적용하도록 했다. 이는 지금도 적용되고 있는 내용이다. 반면, 유럽은 최신기술기준보다 더 적극적인 개념인, 가능한 최적의 기술인 ‘최적가용기술’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의 녹색분류체계가 유럽보다 후퇴한 것이다.


또한 정부는 원전에 중대사고가 났을 때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사고 저항성 핵연료’를 2031년부터 사용하도록 했다. 유럽연합이 사고 저항성 핵연료 적용 시기로 못박은 2025년보다 6년이나 늦다.


이뿐만이 아니다. 환경부는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방폐장) 건설을 위한 세부계획과 이 계획의 실행을 담보하는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고준위 방폐장은 주민 반대와 지역 갈등으로 수십년째 부지 선정조차 못한 환경 난제다. 세계에서 처음 고준위 방폐장을 마련한 핀란드에서도 부지 선정에 18년이 걸렸고, 프랑스와 스웨덴도 각각 16년, 17년씩 소요됐다. 환경부는 2050년까지 고준위 방폐장을 가동하도록 한 유럽연합과 달리 시한을 정하지 않았다. 고준위 방폐장 세부계획이 이미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12월 총리실 주재로 확정한 ‘고준위방폐물 관리기본계획’이 그것이다. 이 계획을 보면, 부지 선정 착수부터 처분시설 가동까지 37년 안에 마치도록 했고, 환경부는 이날 발표에서 구체적인 가동 목표 연도를 못박지 않았다. 당장 올해 부지 선정에 들어간다 해도 2057년이 목표 연도가 되는 셈이다. 유럽연합 기준보다 7년이나 늦다.


조현수 환경부 녹색전환정책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고준위 방폐장 가동 목표 시점을 명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목표 연도가 없어도) 세부계획과 법률만 있으면 (원전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다는 뜻”이라며 “총리실에서 확정한 계획을 환경부에서 다시 정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전 1호기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모습. 연합뉴스

부산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전 1호기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모습. 연합뉴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등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한 녹색분류체계를 발표했다. 당시 환경부는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서 뺐고, 향후 국제 동향과 국내 상황을 고려해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냈다. 하지만 원전 확대를 기치로 내건 윤석열 정부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기존 계획에서 9%포인트 가량 축소하고, 그만큼 원전 비중을 늘리는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지난달 밝힌 바 있다. 각종 규제를 완화해 2036년까지 원전 12기의 수명을 연장하고 신규 원전 6기를 세운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유럽연합이 전체적으로 신규 건설이 쉽지 않은 상태에서 원전 부활의 물꼬를 틀려고 했다면, 한국은 수명 연장에 차질 없도록 시간을 벌어주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다음달 6일 공청회 등을 거쳐 녹색분류체계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남종영 기자, 김정수 선임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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