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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돌봄 강화하겠다던 윤석열, 관련 예산은 역대 최저

요양시설 확충 예산 20% 삭감, 6년 내 처음으로 600억원 하회…국민의힘에서도 비판 제기

조한무 기자 chm@vop.co.kr 발행 2022-11-22 17:26:09 수정 2022-11-22 17:26:02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월 1일 서울 종로구 창신2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위기가구 발굴 체계 강화를 위한 현장 간담회를 마친 후 기초생활 수급 독거노인 가구를 방문해 추석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2022.09.01. ⓒ뉴시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가운데, 돌봄 정책을 뒷받침할 예산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 정부가 노인요양시설 관련 예산을 유례없이 작은 규모로 편성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인 돌봄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해왔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보면, 요양시설 확충 사업 예산은 501억원으로 책정했다. 올해 620억원에서 약 119억원, 20%가량 줄었다.


해당 사업은 지방자치단체에 요양시설 확충 예산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립시설을 늘리자는 취지의 사업이다.


내년도 해당 사업 예산은 최근 6년 내 최저치다. 예산 규모가 600억원 밑으로 내려간 것도 처음이다. 2018년 859억원이었다가, 이듬해 1,129억원으로 대폭 늘었다. 2020년 정부안에서는 1,427억원이 배정됐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864억원으로 깎였다. 당시 제1야당이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을 중심으로 삭감 주장이 나왔다. 이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2021년 669억원, 2022년 620억원으로 줄었다.


윤 대통령 약속과 배치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지난 5월 국정과제로 ‘100세 시대 돌봄 체계 강화’를 제시하면서, 공립요양시설 확충과 시설 환경개선을 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노인의날인 지난 10월 2일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는 100세 시대를 맞아 어르신 관련 내년 예산을 대폭 늘렸다”며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의료와 요양을 받으실 수 있도록 지역 내 돌봄 체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는 등 코로나19 확산세에서 정상화로 복귀하는 와중에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대폭 감축하면서, 노인 돌봄을 도외시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장기요양기관 공립 비중 1%도 안 되는데, 신축 계획 ‘0’


요양시설 확충 사업은 몇 가지 내역사업으로 구성된다. 가장 큰 폭으로 삭감된 내역사업은 치매전담형 요양시설 확충 사업이다. 올해 498억원에서 내년도 327억원으로, 약 171억원이 줄었다. 새로이 신축 공사에 들어가는 시설은 8개소에 그친다. 이들 시설에 30억원을 배정했다. 나머지 297억원은 2~3년 차 공사비와 증개축, 개보수에 쓴다.


일반 요양시설은 신축 계획이 없다. 증개축, 개보수, 화재안전창문 설치에 74억원을 책정했다. 올해 114억원 대비 대폭 삭감했다.


시설 확충 예산만 놓고 보면, 올해 612억원에서 내년도 401억원으로, 211억원을 줄인 셈이다.


재가장기요양기관 인권교육 예산은 1억 5천원만 수준으로 유지됐다. 재가요양은 돌봄노동자가 노인 가정에 방문해 식사준비·세면·청소·세탁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돌봄노동자 인권교육은 시도별 장기요양요원지원센터에서 이뤄진다. 센터 운영비도 올해와 유사한 6억원 수준으로 책정됐다.


CCTV 설치 예산은 이번에 신설된 항목이다. 오는 2024년부터 요양보험법 개정안 시행에 따라 요양시설 CCTV 설치가 의무화된다. 노인 학대를 예방한다는 차원이다. 내년도 예산 규모는 92억원이다.


감시 체계 강화를 목적으로 한 CCTV 설치 예산 신설은 민간 중심 노인 돌봄 서비스의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시설 운영이 민간에 맡겨진 상황에서 서비스 질에 대한 관리·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민간시설 부실 운영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2008년 요양보험을 도입하면서, 시설 운영을 민간에 개방했다. 경쟁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고, 빠르게 시설을 구축한다는 취지였다. 결과는 양적 성장에 그쳤다.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민간시설이 과당경쟁에 빠졌다. 식재료값을 아끼려다 보니 식사는 부실해지고, 인건비를 줄이다 보니 돌봄노동자 한 사람이 맡아야 할 이용자가 늘어났다. 경쟁이 심화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담보할 수 있는 이용자를 확보하지 못하는 시설이 늘었다. 서비스 질은 계속 악화해갔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민간시설은 대부분 수입을 요양보험에 의존한다. 시설 이용자는 비용의 20%만 본인이 부담한다.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지만, 관리·감독의 한계 속에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공립시설 확충을 위한 예산 확보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CCTV 설치만으로 학대를 예방하기는 어렵다”며 “근본적으로는 공립시설을 늘려 돌봄노동자 처우를 개선하는 등 정책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기준 장기요양기관 총 2만 6,547개소 가운데 공립시설은 246개소에 불과하다. 비중으로 따지면 1%가 채 안 된다. 대다수 노인은 민간시설로 내몰리고 있다. 요양보험 등급판정 결과 현황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장기요양 인정자는 100만명 수준이다. 지자체 공립시설은 4천명당 1개소도 안 되는 꼴이다.


최혜지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월간복지동향의 내년도 노인복지 예산 분석을 통해 “공공성 강화를 위해 국공립 요양원 증가가 제도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요구돼 왔다”며 “요양보험 시설 확충 예산은 오히려 감소하는 등 요양서비스 공공성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코호트 격리된 서울의 한 요양시설 ⓒ뉴스1


“집행률 저조” 정부 변명에 여당도 비판


정부는 저조한 집행률을 반영해 요양시설 확충 예산을 삭감했다는 입장이다. 지난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시설 예산은 전반적으로 최근 2년간 집행이 부진했다”며 “집행 부진을 감안해 내년도에 집행 가능한 규모로 예산을 편성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신축 공사가 지연됐다”며 “보강 공사도 요양시설은 감염 취약 시설이라 건물로 기자재와 사람이 들어가는 데 제약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자체가 요양시설 확충에 소극적인 측면도 있다. 요양 시설 설립 비용은 정부와 지자체가 5:5로 분담한다.


집행률 제고를 위해 지자체 매칭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할 일이다. 사회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됐고 대통령도 약속한 주요 사업 예산을 깎는 건 대안이 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집행률 제고 방안은 지자체 부담을 낮춰주는 것이다. 치매관리체계 구축 사업은 정부가 80%를 지원한다.


이경민 팀장은 “요양시설 확충은 지자체 매칭 문제로 불용액이 발생했던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방안을 찾지 않고 예산을 줄인 건 정부 의지가 없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치매 돌봄 사업과 같이 정부 부담 비율을 늘리는 것도 방법”이라며 “보편적인 돌봄 서비스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순서상으로도 맞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집행률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보건복지위 회의에서 조 장관 답변을 들은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은 “집행이 부진한 이유를 개선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집행률만 보지 말고, 노인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노인들의 모임이 더 정상화될 수 있는 상황을 감안해 예산을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감사원장을 지낸 최 의원은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로 나섰나가 경선에서 탈락한 이후, 윤 대통령 선거대책본부에 상임고문으로 합류한 바 있다.


국회에서 증액 의견이 쏟아졌다. 보건복지위는 여야 의원 합의 하에 104억원 증액을 요구했다. 건축 자재비가 급등한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보건복지위 예비심사를 토대로 종합심사를 진행하는 예산결산특별위원에서도 증액 의견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이철규·배현진·정점식 의원 등 7명은 시군별 수요를 반영해야 한다며 예산을 18억~19억원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임오경 의원은 올해 수준으로 증액할 것을 요구했다. 전혜숙 민주당 의원도 건축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증액 의견을 냈다.


전 의원실 관계자는 “집행률이 낮아 예산을 삭감한다는 정부 논리는 너무 일차원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2022.11.18 ⓒ뉴시스


실제 예산이 늘어날지는 불투명하다. 두 개의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먼저 예결특위다. 예결특위에서는 통상적으로 큰 규모의 증액이 이뤄지지 않는다. 요양시설 확충 사업을 봐도,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는 100억원대 증액을 요구했지만, 예산특위 의원들의 증액 규모는 20억원이 채 안 된다. 예비심사를 하는 상임위는 의사결정 책임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 증액 의견을 많이 내는 경향이 있다. 예결특위가 상임위 예비심사 의견을 반드시 반영해야 할 의무도 없다.


이 팀장은 “민간요양시설이 하나의 수익창출 수단이 된 상황에서 이들의 표가 지역구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며 “예결특위 의원들은 지역구 표 눈치를 보느라 증액에 소극적인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두 번째 장애물은 정부다. 국회는 정부안에서 증액하려면 개별 사업별로 정부 동의를 얻어야 한다. 전체 예산 총액을 크게 늘리면 정부 동의를 받는 게 부담되니, 한정된 예산에서 개별 사업들을 조정하는 식이다. 증액 의견이 나온 수많은 사업 중에서 야당이 집중하는 사업이 아니고서는 증액을 관철하기 쉽지 않다.


보건복지위 소속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가 사업에 의지를 갖고 예산안을 짜는 게 중요하다. 삭감된 예산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하는 건 한계가 있다”며 정부 책임을 강조했다.


“어르신 관련 내년 예산을 대폭 늘렸다”는 윤 대통령 주장도 현실과 동떨어졌다.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노인 부문 사업은 총 19개, 총규모는 23조 1천억원이다. 올해 20조 5천억원 대비 2조 6천억원 늘었다. 여기까지만 윤 대통령 주장이 맞다.


사업별로 보면, 노인기초연금에서 2조 4천억원, 요양보험 사업운영에서 2천억원이 늘었다. 이들 모두 정책 방향이 아닌 환경적인 요인에 따른 자연증가다. 기초연금은 1인당 지급액을 30만원에서 32만원으로 올렸다. 물가상승 영향이다. 기초연금 지급액은 물가와 연동된다. 고령화로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 인구가 증가한 것도 예산 증가 배경으로 작용했다. 요양보험 사업운영 예산 경우 요양보험법상 내년도 보험료 예상 수입의 20%를 국고지원 하게 돼 있다. 보험료가 인상되고 보험료 납부하는 노인 인구가 늘면서 정부의 수입이 늘었고, 이에 따라 예산이 증가한 것이다.


이 팀장은 “2025년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해 관련 서비스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예산을 늘려야 한다”며 “내년도 노인 부문 예산 증가분은 의무지출 사업에 국한되고 재량지출은 유지되거나 오히려 감소해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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