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할인’ 내년부터 세금 때리기…유리지갑 털어 ‘세수 펑크’ 메우기 논란
기자명 고재학 기자   입력 2024.11.24 07:45  
 
[고재학의 경제버스]
현대차 직원 30% 할인가로 G80 사면…임금소득 간주 370만원 세 폭탄
삼성 등 6개 대기업 임직원에게 근로소득세 연 4,000억원 이상 거둘 듯
직장인 "근로소득세만 계속 늘어나는데…‘직원 할인’까지 꼼수 증세"
야당 “유리지갑 털어 ‘세수 펑크’ 메우나” 반대…국회 통과 변수
 


대다수 기업은 직원들이 자사 제품을 구입할 때 할인 혜택을 준다. ‘직원 할인(패밀리세일)’이라는 사내 복지제도다. 그런데 정부가 내년부터 직원 할인에도 근로소득세를 부과하기로 해 논란이다. 할인금액을 임금소득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과세가 이뤄지면 대기업 임직원의 경우 1인당 연평균 250만원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 삼성∙현대차 등…후생복지 차원에서 임직원 할인 제도(패밀리세일) 시행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임금 및 단체협약에 따라 임직원이 차량을 구입할 때 근속연수에 따라 최대 30% 싼 가격으로 판매한다. 현대차는 퇴직자에 대해서도 2년에 한번 25%, 기아는 3년에 한번 25% 할인 혜택을 준다.
 
신세계그룹 소속 직원들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실 때 30% 할인 혜택을 받는다. 대한항공 임직원은 근속연수와 직급에 따라 매년 많게는 수십장의 공짜 및 할인 항공권을 제공받는다.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가전제품 할인은 물론 직원이 결혼하면 혼수가전을 싸게 구매할 수 있는 혜택을 준다.
 
제일모직 LG패션 롯데 신세계 등 패션·유통업계도 재고 처리 및 직원 후생복지 차원에서 임직원몰 URL링크와 접속코드 등을 SNS나 단체채팅방에 공유해 50~90% 할인율을 제공하는 '임직원몰 할인 이벤트'를 벌여왔다.
 
◇ ‘직원 할인’ 비과세 기준…’시가의 20% 또는 연 240만원 중 큰 가격’
 
정부는 2025년도 세법 개정안에 ‘직원 할인’ 비과세 기준을 담았다. 비과세 한도는 ‘시가의 20% 또는 연 240만원 중 큰 가격’이다. 비과세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을 임금소득으로 간주해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세법상으로도 직원 할인은 근로소득세 과세 대상이지만, 그동안 명확한 과세기준이 없다 보니 세금을 걷지 않았다.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앞으로 각 기업은 연말정산에서 직원 할인 혜택분에 대한 추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가 시중 판매가 4,000만원인 차량을 직원에게 25% 싸게 팔았다면, 직원이 할인 받은 금액은 1.000만원이다. 비과세 한도는 ‘시가의 20%인 800만원과 240만원 중 큰 가격’이 된다. 즉 비과세 한도인 800만원을 초과하는 200만원 혜택분에 대해 근로소득세를 내야 한다.
 
삼성전자 텔레비전.
삼성전자 텔레비전.
 
삼성전자가 임직원에게 300만원짜리 텔레비전을 30% 할인해 210만원에 판매했다면, 할인액은 90만원이다. 비과세 한도는 ‘시가의 20%인 60만원과 240만원 중 큰 값’이므로, 할인액 90만원은 전액 비과세 받을 수 있다.
 
◇ 천하람 의원 6개 대기업 조사 “삼성전자 직원 1인당 253만원 세금 더 낸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최근 삼성전자 등 국내 6개 대기업의 직원 할인 과세효과를 분석해 자료를 내놓았다. 이들이 추가로 내야 하는 근로소득세는 총 4,040억원에 달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전체 직원 12만,4800명이 총 3,154억원의 근로소득세를 더 내야 할 것으로 조사됐다. 1인당 연간 253만원이다. 나머지 5개 대기업 직원들도 1인당 평균 적게는 35만원, 많게는 241만원의 근로소득세를 추가로 내야 한다. 물론 연말정산에서 세금 공제액이 다르기 때문에 개인별로 차이는 날 수 있다.
 
 
◇ ‘직원 할인’ 임금으로 간주하면 소득세는 물론 국민연금, 건강보험료도 올라
 
추가 부담할 근로소득세만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비과세 한도를 초과하는 할인액이 소득금액 최상단에 얹히면 타격이 크다. 근로소득세는 누진세 구조여서 과세표준 '1,400만원 이하'는 세율이 6%지만, 과표 '8,800만원 이상’은 세율이 35~45%나 된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료, 고용보험료도 근로소득에 비례해 올라간다.
 
 
지난해 평균 연봉 1억1,700만원인 현대차 직원의 사례를 보자. 이 직원이 8,000만원짜리 G80을 30% 싸게 샀다면 할인금액은 2,400만원이다. 시가의 20%는 1,600만원이므로 초과액 800만원이 과세 대상이다. 연봉 1억1,700만원에 할인혜택 800만원이 더해지면 연간 근로소득은 1억2,500만원이 된다. 이 경우 연간 근로소득세는 2,682만원에서 3,055만원으로 약 370만원 늘어난다.
 
현대자동차 G80.
현대자동차 G80.
 
◇ ‘직원 할인’ 과세 찬반 논란…”유리지갑 꼼수 증세” vs “과세 형평성 해쳐”
 
정부가 직원 할인 혜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려는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세법상 할인 가격은 제조원가 이상이어야 하고, 일반 소비자 판매가보다 현저히 낮아서는 안 된다. 30% 할인이나 공짜 항공권이라면 그 기준을 벗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임직원에게 과도한 할인 혜택이 주어지면 일반 소비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될 우려도 있다. 현대차의 경우 직원들이 자동차를 최대 30% 싸게 구매해 다른 사람에게 되팔면서 명의자와 실제 운행자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탈세’인 셈이다.
 
그럼에도 직장인들 사이에선 월급쟁이의 유리알 지갑을 또 털어간다는 비판의 소리가 무성하다. 지난해 56조원, 올해 30조원 ‘세수 펑크’가 예상되자 정부가 만만한 직장인들 상대로 꼼수 증세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애사심을 키워주는 후생복지 제도에까지 세금을 매기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정치권, “세수 펑크 근본 대책 없이 ‘유리지갑’만 털어가” 비판
 
정치권에서도 정부가 부자감세로 부족해진 세수를 메우기 위해 ‘깨알 증세’를 추진한다는 지적과 함께 법인세·상속세 등은 놔두고 근로소득세만 겨냥한 것은 조세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회사가 소속 임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직원 할인 금액을 비과세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천하람 의원은 "정부가 종합부동산세, 상속세 등 부자들 자산에 매기는 세금을 대폭 낮추면서 ‘유리지갑’ 월급쟁이들에게만 꼼수 증세를 하려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면서 “월급을 모아 자산을 형성하기 어려운 청년 직장인들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근로소득세는 연평균 9.6% 늘어난 반면, 법인세는 4.9% 늘어나는 데 그쳤다. 대규모 세수 펑크가 발생했던 작년만 해도 법인세는 무려 17조2,000억원, 상속증여세는 5,000억원 감소한 반면 근로소득세는 2조6,000억원 증가했다. 지난해 국세 수입 비중을 보면 소득세(33.7%)가 법인세(23.4%)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고재학은 한국일보에서 33년간 기자로 일하며 경제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올해  6월 뉴스버스 공동대표로 합류해 경제 부문을 맡고 있다. 뉴스버스TV에서 주요 경제 이슈를 정리해주는 ‘고재학의 경제버스’를 진행한다. 스테디셀러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을 비롯해 <절벽사회> <휴대폰에 빠진 내 아이 구하기> 등의 책을 썼다. 우직하게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힘을 믿는 언론인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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