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건희 라인, 용산 권력 양분…“여사 몫 보고서까지 달라 해”
윤 대통령 취임식 초청 명단 입수(상)
김 여사 취임식 초청 일부 대통령실 진출
“한남동 라인 과도한 개입에 직원들 불만”
여러 논란에도 대다수 자리 지켜
“여사에 충성하며 윤 리더십만 약화”
배지현,고한솔,채윤태 기자 수정 2024-11-25 11:13 등록 2024-11-25 05:00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2년 5월10일 오전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 도착해 단상으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통령실의 라인은 오직 윤석열 대통령 라인만 있을 뿐이다.”
지난달 14일 오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여사 라인이 어디 있냐. 공적 업무 외에 비선으로 운영하는 그런 조직 같은 것은 없다”고 강조하며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틀 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대통령실 인적 쇄신”을 주문하며 김 여사 라인 정리 필요성을 밝히자, 이를 반박하며 한 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김건희 라인’이란 말은 굉장히 부정적인 소리”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안팎의 설명은 다르다. 대통령실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는 한겨레에 “‘여사 라인’이 주요 보고서를 2부씩 인쇄 요청하곤 했다. 여사와 자신들이 볼 용도였다”며 “여사 라인의 과도한 관여에 대통령실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인사도 “정권 초 여사 라인 진입에 대한 내부 견제가 있었지만 결국 김 여사 의중을 꺾지 못했던 것으로 안다”며 “심지어 애초에 정해져 있던 자리도 뒤바뀌기도 했고, 경질 위기에도 굳건히 버텼다”고 했다. 이런 김 여사 라인은 김 여사와 개인적 인연을 바탕으로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대됐던 이들 중 일부가 대통령실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는 게 이들의 증언이다.
이기정·정용석·황종호 부친…김 여사 초대 인물들
윤-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지난달 21일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회동했다. 한 대표의 거듭된 독대 요청을 대통령실이 수용한 모양새였지만, 한 대표가 요구한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안(주변 인물들 쇄신, 김 여사의 대외활동 중단 및 의혹 사안 해소, 특별감찰관 임명 절차 진행)은 사실상 거절됐다.
대통령실은 만남과 관련한 공식 논평을 내놓지 않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의중을 밝혔다는 평가가 나왔다. 차담에 앞서 서울 용산 대통령실 경내를 산책하는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산책 사진을 배포했는데, 두 사람 옆에서 이기정 의전비서관이 함께 걷는 사진이었다. 한 대표가 정리를 요구한 ‘김건희 라인’ 여덟명 가운데 한명이라는 이 비서관을 사진에 등장시켜 ‘김건희 라인’을 정리할 뜻이 전혀 없음을 밝힌 것 아니겠냐는 해석이었다.
이 비서관은 2022년 5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윤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된 인물이다. 와이티엔(YTN) 부국장이던 그는 석달 뒤 홍보기획비서관에 발탁됐고, 지난해 11월 대통령 부부를 더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의전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윤 대통령이 “제 처의 오랜 부산 친구”라고 소개한 김량영 충남대 무용학과 겸임교수, 김 여사 팬클럽인 ‘건희사랑’ 회장을 지낸 강신업 변호사 등과 함께 2021년 대한민국장애인국제무용제 조직위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비서로 일하며 윤 대통령을 ‘삼촌’, 김 여사를 ‘작은엄마’라고 부른다는 황종호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의 부친도 김 여사의 취임식 초청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황 행정관은 서울의소리가 공개한 김대남 전 대통령실 선임행정관 통화 녹취에서 “(대통령실 내부 정보는) 황종호가 제일 확실하다”며 대통령실 핵심으로 꼽은 인물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기원 공연을 김 여사가 홀로 관람했다는 이른바 ‘황제 관람’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정용석 전 대통령실 문화체육비서관실 선임행정관, 홍보수석실 행정요원으로 근무한 보수 유튜버 안정권씨의 누나 안수경씨가 초대 명단에 올랐다.
논란 커진 뒤에야 일부 퇴진…건재한 한남동 라인
면허 취소 수준의 음주운전을 해 단속되고도 정직 2개월 징계만 받고 대통령실에 남아 논란이 됐던 강기훈 행정관은 윤 대통령 명의로 취임식에 초대받았지만, 대표적인 한남동 라인으로 꼽힌다. 대통령실은 강 행정관의 음주운전 사실이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뒤늦게 대기발령했고, “음주운전을 하면 대통령실에서 정리가 돼야 마땅한데 ‘강 행정관이라고 하는 분이 한 대표와 가족의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 문제를 용산 대통령실 안에서 내부적으로 담당하는 실무 담당 격이라서 당장은 못 내보낸다’ 이런 제보까지 지금 얘기가 나온다”(천하람 개혁신당 의원)는 폭로가 나온 뒤에야 사의를 표시했다.
또 다른 한남동 라인 일원으로 알려진 강훈 전 정책홍보비서관도 지난 8월 물러난 뒤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지원해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가, 김건희 라인 논란 속에서 최근 지원을 자진 철회했다.
논란이 커진 뒤에야 사의를 표한 사례들이 일부 있지만, 김건희 라인으로 지목된 이들 대다수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와 관련된 활동을 했던 김동조 국정기획비서관 등이 대표적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 참모로서 국정 기조 테두리 안에서 백그라운드 설명은 할 수 있지만, ‘박영선·양정철 인선 띄우기’ 등 대통령실 공식 입장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식 행사에서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진이 여러차례 논란이 됐는데,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해도 여사 라인으로 불리는 이들이 고집을 꺾지 않는다”며 “그들이 여사에게 충성하면서 오히려 대통령의 리더십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김 여사를 전담하는 제2부속실을 꾸렸지만 김 여사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김 여사와 가까운 인사들 여럿이 대통령실 주요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한 여권 인사는 “제2부속실이 대안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다. 지금 대통령실 환경 자체가 김 여사의 영향력을 줄이기 어려운 구조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명단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초청자 명단이 논란이 된 것은 취임식에서 ‘주요인사'(VIP) 자리에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인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가족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시사저널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두달 뒤인 2022년 7월 해외문화홍보원의 대통령 취임식 촬영 사진을 분석해 권 전 회장 아들인 권혁민 도이치모터스 대표가 취임식에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이때부터 문제적인 김건희 인맥들이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졌다. 취임식 초청자 명단이 논란이 되자 행정안전부는 2022년 국정감사에서 대부분 명단이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삭제됐다고 밝혔다. 당시 취임자 초청자는 모두 4만5570명인데, 이들 명단이 대부분 없다는 것이다.
한겨레가 입수한 초청자 명단에는 초청 인사 이름과 함께 ‘대통령님’ ‘여사님’ ‘국민의힘’ 등 초청 주체가 기재돼 있다. 이중 ‘대통령님’ 초청인원은 600여명, ‘여사님’ 초청인원은 700여명으로 집계돼 있다. 초청 주체가 미기재된 카테고리도 있어 대통령 초청 인사가 추가로 있을 가능성 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대통령 취임식에 대통령 인맥보다 부인 인맥이 더 많이 초대된 점이 눈길을 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대통령보다 여사의 초청자 명단이 더 많은 것은 이례적으로 보인다”며 “과거에는 대통령 배우자와 대통령이 하나라고 생각이 됐는데, 이번처럼 여사 쪽 인물이 부각되는 것 자체가 독특한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정치 경험이 짧아 선거운동 기간에 (사회생활 등을 많이 한) 김 여사의 도움 등을 받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정부 출범 이후에는 대통령 중심으로 일원화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차원의 배우자 관리도 없어 김 여사 주변을 둘러싼 문제가 더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채윤태 기자 cha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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