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음모론에 빠져들까…빈틈 파고드는 3가지
곽노필의 미래창
3가지 차원의 동기와 성격 특성이 복합 작용
사태를 단순 명쾌하게 파악하려는 욕구 충족
곽노필 기자 수정 2025-01-20 09:56 등록 2025-01-20 09:30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놓고 여러가지 음모론이 나돌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세상에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발생할 때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이 음모론이다. 음모론 연구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음모론을 믿는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음모론은 어떤 사건의 책임을 특정 권력 집단에 돌린다. 음모를 꾸미는 자가 비밀리에 자신에겐 이익이 되고 공동체엔 해를 끼치는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다. 음모자, 비밀 계획, 타인이나 사회에 대한 악의가 음모론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다. 음모론자들은 이를 토대로 특정 사건을 매우 단순한 논리로 설명한다. 물론 객관적인 근거가 없거나 단편적 정보들을 제멋대로 짜깁기한 것들이다.
멀리는 지구가 평평하다든가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이 조작됐다는 것에서부터 가깝게는 3천명 가까운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가 미국 정부의 자작극이라거나 코로나19는 중국이 고의로 확산시킨 것이라는 것 등이 있다. 최근엔 코로나19 당시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등의 백신음모론을 펼쳐온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미 보건복지부 장관에 지명돼 논란 거리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도 좌-우 이념 색깔론에 기반한 여러 음모론이 난무하고 있다.
음모론의 확산 통로는 주로 소셜미디어다. 202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음모론은 빠르게 확산하되, 구성 요소 간의 연결성이 취약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등장인물 등 이야기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한 가지라도 제거하면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구조다.
음로론자들은 아폴로 우주선은 실제 달에 간 것이 아니라 세트 촬영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 항공우주국 제공
음모론을 빨아들이는 세 가지 동기
거짓 정보와 뉴스로 얽혀 있음에도 사람들은 왜 음모론에 솔깃해 할까?
미국 에모리대 심리학자들이 15만8천여명을 대상으로 미국, 영국, 폴란드 등에서 실시한 과거 170건의 연구를 종합 분석한 연구에서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2023년 미국심리학회(APA)의 ‘심리학회보’(Psychological Bulletin)에 발표한 이 연구에 따르면 음모론의 확산에는 세 가지 차원(인식적, 실존적, 사회적)의 동기와 개인의 성격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우선 동기에서는 위협적인 사태의 맥락을 파악하려는 욕구(인식적 동기), 그런 위협적 환경 속에서 심리적 안정과 안전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실존적 동기),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도적적으로 우월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욕구(사회적 동기)가 작동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 3가지 욕구가 음모론을 수용하는 스펀지 역할을 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인식적 측면에서 음모론에 기우는 사람들은 분석적 사고 대신 직관적으로 세상을 이해하려는 경향이 크다. 이들은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도 자신의 세계관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독단적이고 폐쇄적이다. 연구진은 또 “여러 연구와 지능 측정에서 음모론 관점과 일반적인 인지 능력, 즉 지능 사이엔 음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존적 측면에선 세상이 본질적으로 위험하고 불안정하다고 믿으며, 세상을 냉소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연구진은 “음모론적 관점은 자기 효능감 또는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느끼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음모론에 빠지는 사람들의 성격적 특성으로는 강한 편집증이 첫손에 꼽혔다. Nijwan Swargiary/Unsplash
권위자에겐 순응, 다른 집단엔 적대적
세 가지 동기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사회적 동기다. 음모론에 빠지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다른 집단은 부도덕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이들에게 음모론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지켜낼 절호의 기회다. 이들은 모든 책임을 다른 집단에 돌림으로써 자신과 소속 집단의 우월감을 유지하려 한다. 신뢰가 낮을수록, 사회적 위협에 대한 인식이 높을수록 음모론에 기운다. 연구진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상황이 음모론적 사고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음모론적 사고는 ‘우익 권위주의’(RWA)나 높은 사회지배성향(SDO)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익권위주의란 권위자에게 매우 복종적이고 권위자의 이름으로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사회지배성향이란 음모론 지지자들은 일부 집단이 더 많은 권력과 자원을 소유하는 불평등 위계 구조를 당연시하는 걸 말한다.
연구진은 “따라서 자아가 취약한 사람이나 이웃집단을 위협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음모론이 쉽게 먹혀든다”고 밝혔다. 취약한 자아감은 지나친 자기애, 즉 나르시시즘과도 관련이 있다. 연구진은 “나르시시즘은 과신과 취약성의 복잡한 조합으로 구성된다”며 “음모론적 관점은 나르시시즘과 중간 정도의 긍정적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는 음모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겐 동료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싶어하는 동기가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즉 음모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는 진실에 대한 비밀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서 생성되는 비행운도 의도적으로 살포된 독극물질이라는 음모론의 대상이다. 픽사베이
편집증 강하고 겸손과 거리 멀어
음모론에 빠지는 사람들의 성격 특성으로는 뚜렷한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해치거나 속이려 한다고 생각하는 편집증이 첫손에 꼽혔다. 음모론자들은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불신하고 적대감이 높았다. 걱정이 많고 변덕스럽고 충동적이고 의심이 많고 내성적이며, 부정직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괴팍한 사람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겸손과는 거리가 멀고, 무작위적인 것에서 의미 있는 것을 찾아내 실제로는 발생하지 않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도출하는 ‘환각적 패턴 인식’에 능하다. 이는 망상적 성향과도 연결된다.
논문 주저자인 쇼나 보우스 연구원은 “그러나 대중문화에서 흔히 묘사하는 것처럼 음모론자들이 모두 단선적이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라며 “박탈된 동기와 욕구를 채우고 고통 등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음모론에 의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우스 연구원은 “우리 모두는 한 가지 이상의 음모론을 믿는다는 게 나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음모론은 처음엔 사람들이 갈망하는 확실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지만 결국엔 본질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오히려 불안을 자극하게 돼, 불안과 음모론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문 정보
The conspiratorial mind: A meta-analytic review of motivational and personological correlates.
An automated pipeline for the discovery of conspiracy and conspiracy theory narrative frameworks: Bridgegate, Pizzagate and storytelling on the web.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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