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군기반장 노릇 감사원…독립성 포기·퇴행 책임 물을 때
기자명 이중근 칼럼니스트 입력 2025.02.28 15:42
헌재, 감사원 칼춤에 제동…“감사원의 선관위 감사는 위헌”
권력자 요구에 맞춰 ‘답정너’식 전방위 감사
퇴행 감사원·인권위 정상화시켜야 '윤석열 탄핵' 완성

헌법재판소는 27일 대통령 직속 기관인 감사원이 헌법기관인 중앙선관위를 상대로 직무감찰을 벌인 것이 헌법 정신에 반한다고 결정했다. (사진=연합뉴스)
헌법재판소는 27일 “대통령 아래 편제된 감사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직무감찰을 한다면 선관위의 공정성, 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감사원이 선관위를 상대로 강도높은 직무감찰을 벌인 것이 헌법 정신에 반한다는 것이다. 선관위가 감사원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낸 지 1년 7개월만에 내려진 결정으로, 윤석열 정부 감사원의 막무가내 권한 행사를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감사원의 선관위 감찰은 처음부터 위법성이 뚜렷했다. 헌법은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을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나 법원처럼 선관위는 행정기관이 아닌 헌법상 독립기관이기 때문에 감사원의 감찰을 받지 않는 게 옳다. 문제는 감사원법이다. 법은 ‘행정기관의 사무와 그에 소속된 공무원의 직무’로 규정하면서 직무감찰 제외 대상으로 ‘국회와 법원, 헌법재판소 소속 공무원’을 명시하고 있다. 선관위가 감사 제외 대상에서 빠졌지만, 선관위가 헌재에 이은 제5의 헌법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것을 감안하면, 이는 입법 미비로 보는 게 상식이다.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감사원은 시종 선관위를 윽박지르며 감찰을 시도했다. 계엄 선포 후 뒤늦게 밝혀졌지만, 그 배후에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신봉하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의 감사원은 처음부터 그 행동이 달랐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를 수개월째 털더니,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감사한다면서 국방부와 해양경찰청, 국가정보원 등 9개 기관을 샅샅이 뒤졌다. 정부가 찍어주는 곳마다 주저없이 감찰을 벌였다. 선관위 직무감찰은 그 하나의 사례일뿐이었다. 절제가 필요한 순간에도 칼춤을 췄다.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 감사원의 기관 운영 원칙은 완벽히 허물어졌다.
감사원의 기능은 크게 회계감사와 직무감찰로 나뉜다. 회계감사는 나랏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서 업무의 효율성을 따진다. 직무감찰은 공무원의 비위를 캐는 것이다. 업무 비중을 따지면 대략 70%가 회계감사이고, 30%가 직무감찰이다. 선진국 감사원은 대부분 회계감사 기능만 갖고 있다(감사원도 당초 회계감사를 하는 심계원으로 출발했다가 1963년 감찰위원회와 통합됐다). 감사원을 출입하면서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데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는 감사관을 여럿 봤다. 하지만 윤 정부 들어 감사원이 무슨 제안을 해서 정책 오류를 바로잡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거꾸로 대통령의 입맛에 맞춰 공직자와 기관을 옥죄는 사정기관 내지 준 수사기관으로 전락했다.
이런 퇴행이 외부 압박만으로 이뤄질 리 없다. 유병호 전 사무총장(현 감사위원)과 그 후임자인 최달영 사무총장, 그리고 몇몇의 조력자들의 내응이 있었다. 우리는 최근 국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말을 자르는 최 사무총장과 헌재 증언대에서 국회측 대리인의 신문은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하는 김숙동 특별조사국장의 모습을 똑똑히 목도했다. 자신만 공명정대하고 애국한다는 듯이 빳빳이 고개를 들고 우겨대는 모습에 인간적인 연민까지 느껴졌다. 과거에도 감사원이 대통령 편에 서 반대자를 향해 칼을 휘두른다는 비판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감사원의 존재 이유를 “대통령의 국정을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규정했다. 윗물이 더러우니 아랫물이 맑을 수 없는 것이다. 선관위에 대한 감찰 지시가 위헌이니 불가하다고 거부하는 것은 애초에 바랄 수 없는 꿈이었다.
선관위가 성역이 될 수는 없다. 감사원의 발표를 다 믿기는 어렵지만, 선관위에 허물이 없지 않아 보인다. 특히 고위직 자녀채용은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원의 감사는 헌법과 법률에 맞춰서 진행해야 했다. 그런데 감사원은 기본 절차를 무시했을뿐 아니라 ‘답정너식’ 태도로 일관했다. 지난 해 총선 직후 중간 감사 결과 발표에서 1,200여건의 규정 위반이 있다면서 검찰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지금껏 수사기관에 의해 기소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확정도 되지 않은 내용을 언론에 공표해 선관위와 직원들을 악마화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어제도 헌재가 권한심판 청구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30분 전 전격적으로 최종감사 결과를 발표해 선관위 직원 32명에 대해 징계를 요구했다. 그래놓고 “헌재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오만과 오기가 없다.
감사원에는 회계사는 물론 행정고시 출신, 변호사 출신이 즐비하다. 최근 전문성 있고 역량 있는 인재들이 감사원을 떠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감사원 직원들은 재직하는 내내 삼청동 청사에서 얼굴을 맞대고 지낸다. 지방 조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조직을 이상한 사람들이 권력자를 중심으로 쥐고 흔드니 제대로 된 공직자들이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한 감사원 원로는 “이상한 후배 몇 놈이 선배들이 어렵사리 쌓아놓은 감사원의 이미지를 다 망쳐놨다”고 개탄했다. 감사원이 그 독립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이상, 이대로 둘 수 없다. 드러난 모순을 해결하고 퇴행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단죄해야 한다. 곧 있을 최재해 원장의 탄핵 심판은 이 연장에 있다. 정부 기관의 퇴행이 감사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국가인권위는 감사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안창호 위원장과 김용원 상임위원과 같은 극우 세력에 붙잡혀 약자의 인권을 보호하라는 설치 목적을 저버리고 있다. 다 정상화해야 한다. 그것이 윤석열 탄핵의 완성이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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