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11754&localCode=krcn
청석령 산성
크기 : 둘레 5㎞
현 소재지 : 중국 요령성 개주시 청석령진 고려성촌 40°26'57"N122°26'9"E
정의
요령성 개주시 청석령진 고려성촌에 위치한 고구려 산성.
개설
청석령 산성은 고구려의 건안성(建安城)으로 비정되고 있다. 요동 평원에서 천산 산맥을 넘어 대청하·벽류하 유역을 거쳐 압록강 일대로 진입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한다.
산성은 하곡 평지형 포곡식 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약 5㎞에 달한다. 서문과 수구가 있는 서쪽 골짜기를 제외하면 사방이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는데, 내부에는 넓고 평탄한 대지가 있다.
지형에 따라 토축, 토석 혼축, 석축 등 구간별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성벽을 축조한 것이 특징이다. 총 5개의 성문이 있는데, 서문이 정문이며, 골짜기 입구를 가로질러 판축 공법으로 쌓은 토축 성벽의 북단에 있다. 산성 내부에는 고구려 기와편들이 다량으로 산포되어 있다.
건립 경위
『신당서(新唐書)』 지리지에는 건안성이 요양의 안동 도호부에서 서쪽으로 300리 떨어져 있고, 원래는 평곽현에 해당한다는 기록이 있다. 『한원(翰苑)』 주에 인용된 『고려기(高麗記)』에도 ‘평곽성은 지금의 건안성이고, 나라의 서쪽에 있다. 이전의 한(漢)의 평곽현이다.’ 라고 전한다. 평곽현은 지금 요남 옛 개주현성에 비정되고 있다.
또한 명청(明淸)대에 편찬된 『요동지(遼東志)』, 『전요지(全遼志)』, 『개주현지(蓋平縣志)』 등에서는 ‘석성(石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개주현지(蓋平縣志)』에 따르면 청(淸)대 주민들이 ‘고려성(高麗城)’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산성에서 고구려 시대의 기와 및 유물이 출토되고 있는 것을 볼 때, 고구려가 요동 지역을 점령한 이후인 5세기 이후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청석령 산성은 개주시에서 동북쪽으로 7.5㎞ 떨어진 청석령진 고려성자촌 동쪽 산에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서문 밖은 고려성자촌, 동문 밖은 단전향인데, 촌과 산성과의 거리는 약 3㎞이다. 성의 남쪽 산 아래는 곽가둔촌이 있다. 산성의 동남쪽으로는대청하와 개평하가 흐르고, 서쪽으로 약 6㎞ 떨어진 지점에는 심양-대련 간 고속 도로가 있다.
산성 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30㎞ 떨어진 지점에는 영구시, 남쪽으로 7.5㎞ 떨어진 지점에는 개주시, 서쪽으로 12㎞ 떨어진 지점에는 발해만, 서북쪽으로 31㎞ 떨어진 지점에는 요하구, 동남쪽으로 5㎞ 떨어진 지점에는 대청하, 동쪽으로 31㎞ 떨어진 지점에는 대석교시 해룡천산성, 남쪽으로 42㎞ 떨어진 지점에는 적산 산성, 북쪽으로 110㎞ 떨어진 지점에는 요양이 위치한다.
형태
청석령 산성의 평면은 불규칙한 장방형이다. 남북의 길이는 1.3㎞, 동서 길이는 1.5㎞ 가량이며, 전체 둘레는 약 5㎞에 달한다. 산성은 골짜기를 제외한 사방이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에는 평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서쪽 골짜기를 통해 성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데, 골짜기 입구 남북 양측에 해발 300m 전후의 노청산과 노경산에서 동쪽으로 기다랗게 뻗은 산줄기가 남북 양쪽에서 타원형을 이루며 산성을 감싸다가, 골짜기 입구 맞은편인 동남쪽에서 약간 낮은 고개를 이루며 만난다. 특히 노청산에서 뻗은 남쪽 산줄기는 암벽으로 이루어져 매우 험준하다. 성 내부의 지세는 동남이 높고, 서북이 낮다.
현황
하곡 평지형 포곡식 산성으로,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5㎞이다. 성벽과 성문, 장대, 치, 수문, 저수 시설, 우물, 샘 등이 남아 있다.
산성은 서문과 수구가 있는 서쪽 골짜기를 제외하면 사방이 산등성이로 둘러싸여 있는데, 내부에는 넓고 평탄한 대지가 있다. 지형에 따라 토축, 토석 혼축, 석축 등 구간별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성벽을 축조한 것이 특징이다.
서남벽의 일부 구간은 석축으로, 성벽 위에는 돌구멍이 남아 있다. 서벽과 북벽은 토축이다. 남벽은 수직 암벽을 천연 성벽으로 삼았는데, 일부 구간은 산봉우리 사이의 골을 메워 성벽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총 5개의 성문이 있는데, 서문이 정문이다. 서문은 골짜기 입구를 가로질러 쌓은 토축 성벽의 북단에 있다. 북쪽 성벽을 바깥쪽으로, 남쪽 성벽을 안쪽으로 나란히 교차 되도록 축조한 뒤, 그 사이에 문길을 조성하고 성벽과 수직 방향으로 성문을 구축한 어긋문 구조이다. 성문 인근의 토축 성벽에는 판축 흔적이 잘 남아 있다.
내부 중앙에는 금전산(金殿山)이라고 불리는 구릉에 인공적으로 축조한 건물 기초부가 있는데, 주변에 승문 및 격자문이 타날된 적색 고구려 기와편과 회색 토기편 등이 다량으로 산포되어 있다. 해당 지점은 주위를 잘 살필 수 있는 곳인 만큼, 장대와 같은 기와 건물이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1963년에 요령성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된 청석령 산성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바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전체 둘레가 5㎞에 달하는 대형 산성으로, 고구려 시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산성은 요동 평원과 요동 반도 경계 지대에 위치하면서, 요동 평원에서 천산 산맥을 넘어 압록강 일대로 진출할 수 있는 개주∼장하[대청하〜벽류하] 교통로의 길목에 자리하고 있어, 고구려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일대는 예전부터 소금과 철의 산지라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성 내부에서 고구려 기와가 다량으로 확인되는 점을 볼 때, 당시 지방 지배를 위한 관청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산성은 고구려의 ‘건안성’으로 비정되고 있는데, 건안성은 고구려 멸망 후 당이 도독부를 설치할 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참고문헌
여호규, 『高句麗 城』Ⅱ (국방 군사 연구소, 1999)
王禹浪·王宏北,『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上) (哈爾濱出版社, 2007)
王禹浪·王文軼, 『遼東半島地區的高句麗山城』(哈爾濱出版社, 2008)
국가 문물국, 『中國文物地圖集-遼寧分冊』(西安地圖出版社, 2009)
魏存成,「中國境內發現的高句麗山城」(『社會科學戰線』201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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