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직후 ‘신공안정국’은 불법사찰 결과물이었다
등록 : 2012.04.02 20:51수정 : 2012.04.02 22:16

이향춘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사무국장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 기자회견에서 “노동조합에서 광우병 사태 때 이명박 대통령을 소재로 벽보를 그렸더니 병원 쪽에서 철거해달라고 바로 요청해왔다”며 불법사찰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촛불대책 ‘보이지 않는 손’]
지원관실 영포라인 배치뒤 유모차 부대 소환되고 진보단체 보조금 끊겨
사이버 모욕죄도 추진, 전화·이메일 감청 30% ↑ 

2008년 5월 촛불집회 당시 성난 시민들의 촛불에 포위당했던 청와대가 선택한 길은 ‘소통 강화’가 아닌 불법사찰을 통한 ‘신 공안정국’ 조성이었다. 정권과 각을 세웠던 많은 인사들이 집요한 뒷조사를 당했고, 집회에 참여했던 많은 시민들이 처벌당하고 진보단체들의 정부 보조금이 끊기는 아픔을 겪었다. 국가 기관에 의한 통신 감청이 급증하고, 집회의 자유 등 시민적 기본권이 부정되는 등 민주주의가 질식된 시간들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국무총리실의 사찰 자료를 보면 촛불집회 이후 이어진 일련의 조처들의 배후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청와대는 촛불집회 직후인 2008년 7월 국정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신설하고, 부서를 담당하는 라인에 이영호 전 청와대 비서관, 이인규 지원관 등 ‘영포 라인’을 배치한다.

청와대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새로 출범한 직후 ‘촛불집회 검거 수범 사례 보고’, ‘문제단체 현황’, ‘인터넷 VIP 비방글’, ‘불법시위 근절대책 건의’ 등과 관련한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할 것을 ‘하명’한다. 이후 보고된 자료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실제로 추진된 정책들을 살펴보면 보고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경찰은 집회에 참가했던 ‘유모차 엄마’들에게까지 소환장을 남발하고, 현장 채증 사진을 주민등록증 사진과 집요하게 대조해가며 시민 잡도리에 나선다. 집회 관리를 위해 예전의 백골단을 떠올리게 하는 ‘경찰관 기동대’도 만들었다. 한동안 4대문 안의 모든 집회를 금지해 위헌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또 정부는 인터넷 비판 의견을 잠재우려고 각종 ‘괴담설’을 퍼뜨리고, 인터넷 글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는 ‘사이버 모욕죄’ 등을 만들 움직임도 보인다. 불법사찰 사건이 처음 불거진 계기가 된 김종익 케이비(KB)한마음 사장 사건도 그가 인터넷 포털 다음에 올린 촛불집회 관련 동영상이 지원관실의 이목을 끌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돼 2009년 검찰·경찰·국가정보원 등 국가 기관에 의한 시민들의 전화·이메일 감청이 전년에 견줘 30%나 폭증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정권에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정책을 자체적으로 파악해 건의하기도 했다. 지원관실의 점검 1팀원 최영호 경위는 2009년 2월24일 ‘자체 제도 개선’ 사항 가운데 하나로 행정안전부에서 지원하는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을 보수단체에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보고한다. 이후 경찰청은 같은 해 5월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1800여개 단체를 모두 폭력단체로 지정해 지원 대상에서 탈락시켰고, 행정안전부는 한글문화연대의 ‘한글 무늬옷 개발 및 보급 사업’ 등을 배제하고,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우파 단체들의 ‘헌법 수호 및 선진 시민정신 함양 운동’ 등의 사업을 대거 선정했다. 돈을 받은 국민행동본부는 2009년 6월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돼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민분향소를 임의로 철거하는 등 이후 정권을 보위하기 위한 행동대로 나서게 된다.

2009년으로 넘어가며 이들의 활동은 용산참사나 4대강 사업 등으로 확장된다. “용산사태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홍보하라”는 청와대 행정관의 ‘홍보 지침’을 폭로한 김유정 민주당 의원을 사찰하거나, “댐을 만들면 수질이 되게 악화”된다는 정보를 <조선일보> 기자에게 제공한 환경부 내 정보 유출자를 ‘색출’하는 일에까지 나선다. 이들의 사찰 범위에는 전직 농림부 장관으로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수입 협상을 강하게 비판했던 김성훈 장관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뉴타운, 재개발 정책을 비판하던 보수 쪽의 서경석 선진화시민행동 상임대표까지 포함돼 있는 등 좌우 구분도 없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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