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890734.html


아제르바이잔에서 찾은 동서교류 증거

등록 :2019-04-19 17:45 수정 :2019-04-19 22:16


[토요판] 권오영의 21세기 고대사 : ⑫ 페르시아 문화와 한반도 (하)


페르시아문명권의 아제르바이잔, 살비르성 유적 발굴에 한국 참여, 2009년부터 연 150명 원정 발굴

고대왕국인 코카시안알바니아가 BC 1~AD 1세기에 최초 조성해 사산조페르시아 때 보수 확인

신라와 비슷한 로만글라스 출토, 유라시아 동서교류 증거 확보


2009년 여름 아제르바이잔 고대 유적인 살비르성 발굴을 위해 한국 학자와 아제르바이잔 현지인들이 첫 삽을 뜨고 있다.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 발굴에는 한국에서 연 150명의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권오영 교수 제공


필자는 2009년도 2월에 처음으로 이란을 답사하면서 비로소 페르시아 문명에 눈을 뜨게 되었다. 앞서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최한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그 전해인 2007년에 일본 오사카역사박물관이 개최한 ‘페르시아 문명전’이란 특별전을 이미 관람한 바 있지만, 그때는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여러 왕조의 휘황찬란한 유물에만 눈이 팔렸을 뿐 정작 한국사와의 관련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2009년에 한번 더 이란을 방문하여 첫 답사에서 누락된 곳을 보완 조사하면서 페르시아 문명에 대한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페르시아의 고대문명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기에는 협업할 연구자, 관련된 자료와 정보, 연구 추진을 위한 네트워크 모두 미비하였다. 그런데 이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고대 페르시아 문명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유적을 조사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세바(SEBA: Seoul과 Baku의 앞 두 자를 따서 만든 합성어로서 한-아제르바이잔 친선을 위한 민간기구)에서 자국의 고대 유적을 공동 조사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필자의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단상은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아르메니아와의 전쟁, 회교도, 인종청소, 그리고 석유와 가스 유전 보유 정도에 불과하였다. 무엇보다도 한국과는 너무도 다른 낯선 환경에서 장기간 거주하여야 하는 발굴조사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페르시아 문명권에 속해 있는 고대 유적을 한국인의 손으로 직접 발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서울대학교 김종일 교수의 설득은 페르시아와 고대 한국의 관계 연구에 목말라하던 필자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불의 나라’에서의 악전고투 발굴


아제르바이잔은 코카서스(캅카스)산맥의 남쪽, 카스피해의 서쪽에 위치한 공화국으로서 북으로 러시아, 서로는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남으로 이란, 동으로 투르크메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코카서스 북쪽으로부터 스키타이, 사르마티아, 알란 등 기마민족의 영향을 받았으며, 서쪽에서는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이슬람문화, 남쪽에서는 페르시아문화, 동쪽에서는 투르크, 몽골의 영향을 받으면서 역사가 전개되었다.


2009년 여름, 국내 4개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로 구성된 조사단이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직항이 없기 때문에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에 도착한 다음 차를 갈아타고 비포장도로를 7시간 정도 달려 아침에 도착한 곳이 가발라(Gabala)라는 지방 도시였다.


투르크의 후예들인 아제르바이잔 현지인들과 한국 연구자들이 살비르성 발굴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줄 오른쪽 넷째가 필자. 권오영 교수 제공


살비르성에서는 고대와 중세의 각종 시설물인 우물과 무덤, 상하수도 등의 시설물이 나왔다. 권오영 교수 제공


기원전 1~기원후 1세기에 건설된 살비르성의 전경. 오세윤 문화재전문 사진작가 제공


‘불의 나라’라는 별명대로 오전부터 섭씨 40도를 넘는 무더위 속에서 한국 팀은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곧바로 척갈라, 갈라, 살비르 유적을 잇달아 방문하였다. 우리를 초청한 세바, 학술 업무를 총괄하는 사회과학원, 그리고 지역의 행정 관료들과 거듭 접촉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뚜렷해졌다. 현재의 아제르바이잔 영토 안에서 번영하였던 최초의 고대 왕국인 코카시안 알바니아(동유럽에 위치한 알바니아와는 무관한 나라로서 그와 구분하기 위하여 앞에 코카시안이란 글자를 덧붙인다)의 역사를 규명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한국 팀이 주도적 구실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척갈라와 갈라, 살비르 모두 코카시안 알바니아의 주요 도시였으니, 우리로 치자면 고조선의 왕검성처럼 중요한 유적을 한국 팀이 조사하게 된 것이다. 코카시안 알바니아의 역사성 계승과 영토의 귀속 문제를 둘러싸고 이웃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오랜 분쟁을 겪고 있음도 곧 알게 되었다.


우리 팀은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살비르성을 담당하기로 하였고, 사회과학원의 학자들과 함께 공동조사에 착수하였다. 생소한 환경에서 진행된 2009년과 2010년도의 조사는 지지부진하였고, 조사 방법을 둘러싼 현지 학자들과의 마찰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 국민들은 한국에 대해 매우 큰 호감을 갖고 있었으며, 투르크의 후예인 그들은 우리와 언어, 정서, 풍습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많은 오해와 이견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 없이 장기 조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배경에는 양쪽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유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탐색기를 지나 3년차가 되는 2011년도부터 조사는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조사단의 규모, 조사 범위도 크게 확대되었다. 이후 여름에는 발굴조사, 가을에는 학술대회, 겨울에는 유물 정리와 보고서 작성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하면서 아제르바이잔과의 인연이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조사 도중에 한 해에는 무릎 인대 손상, 다른 한 해에는 손목 골절을 당하는 바람에 현지 병원에 이송되어 한번은 다리에 보호대를, 다른 한번은 팔목에 깁스를 하고 조사를 지휘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연인원 150명이 넘는 한국의 젊은 학생들이 귀중한 해외 조사 경험을 얻을 수 있었고, 이들 대부분은 현재 국내에서 신진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참여 인원의 규모만이 아니라 전문 분야도 매우 다양하였다. 땅을 파지 않고도 지하에 매장된 건물의 형태를 밝힐 수 있는 지하 레이더 탐사, 유물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연대 측정, 성벽 절개면을 단단하게 해주는 보존처리, 발견된 구조물을 디지털자료로 보존하기 위한 3D 스캔, 인골에 대한 체질인류학 연구와 동물 뼈에 대한 동물고고학 연구, 각종 영상자료의 제작 등 수많은 공정을 소화하기 위하여 국내의 많은 전문가들을 초청하였다. 이 과정에서 국립문화재연구소와 여러 문화재조사 전담기구의 인적, 물적 지원도 뒤따랐다.


처음 접한 생벽돌로 만든 성벽


학술적으로도 수많은 성과를 얻었다. 살비르성을 축조한 시점은 기원전 1~기원후 1세기 언저리이며, 그 주체는 코카시안 알바니아라는 사실, 그 후 4세기 무렵 사산조 페르시아에 의해 성벽이 대대적으로 보수되었음을 규명하였다. 성 내부에서 수십 채의 벽돌 건물, 도로, 상수도와 하수도, 우물과 카레즈(지하 관개시설), 공중목욕탕, 토기 가마, 무덤 등을 발견하여 코카시안 알바니아에서 사산조 페르시아를 거쳐 이슬람 시대로 이어지는 도시의 변천 과정을 밝힐 수 있었다. 카라반(대상이라고도 불리는 상인집단)의 숙소로 추정되는 건물, 수천 점에 달하는 유리용기와 도자기의 발견은 이곳이 실크로드에서 또 하나의 중요 거점임을 입증하였다. 파르티아의 은화, 사산조 페르시아의 인장, 로만 글라스 등은 이 유적을 대표하는 유물로 인정되어 현지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과도 거두었다. 수직 갱도를 통해 지하를 파고, 다시 수평으로 통로를 만든 뒤 방 안에 시신을 모시는 카타콤이란 무덤이 수십 기 조사된 것이다. 그 안에는 3~5세기 무렵 북에서 내려온 사르마티아, 알란 등 기마민족이 묻힌 것으로 보이는데, 경주의 신라 고분 출토품과 유사한 로마유리 용기가 많이 발견되었다. 유라시아 동서 교섭의 또 하나의 증거를 확보한 셈이다.


살비르성 안에서는 기마민족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카타콤(지하 무덤)이 여럿 발견됐다. 한 카타콤에서 나온 토기와 로만 글라스(녹색). 로만 글라스는 신라 고분에서 나오는 것과 같아 이 지역이 동서교류의 한 중개지였음을 보여준다. 오세윤 문화재전문 사진작가 제공


13호 카타콤에서 나온 로만 글라스. 오세윤 문화재전문 사진작가 제공


살비르성의 북벽을 절개하면서 조사단은 큰 고민에 빠졌다. 그동안 국내에서 조사하던 판축 구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격론을 거듭한 결과, 판축이 아니라 햇빛에 말려 단단하게 굳힌 생벽돌(날벽돌, Mud Brick)을 층층이 쌓아서 만든 구조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뒤 추가 조사를 통하여 이런 구조물은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특수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며, 중국과 한국에도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발굴조사한 대부분의 토성을 판축이라고 규정하였지만, 살비르 조사의 경험을 살려 재검토해본 결과 국내에서도 성벽, 고분, 제방, 건축물 중에 생벽돌로 축조한 것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유홍준 교수의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명언이 떠오른다. 세상살이 모든 분야에 적용되겠지만 문화재와 관련해서는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예를 들어 깨진 기와편 하나를 두고 학부 저학년은 기와인지 토기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고학년이 되면 기와인 줄은 알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대학원 석사과정에 들어가면 삼국시대 기와인지 조선시대 기와인지를 구분할 정도가 된다. 기와를 공부해본 박사과정생이라면 백제 기와인지 신라 기와인지 구분할 수 있다. 기와를 주 전공으로 삼은 연구자는 언제, 어디서, 어떤 용도로 만들었고 어느 사찰에 사용되었는지를 꿰뚫어볼 수 있다. 동일한 유물에 대해서도 관찰자의 눈높이에 따라 이런 양상이 벌어지는 것이 이쪽 세계다. 현지답사와 실물 관찰을 거치지 않은 채 인터넷 정보만으로 진행되는 수많은 논의가 무의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제르바이잔 조사를 통하여 넓어지고 높아진 눈을 갖추게 된 젊은 연구자들의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된다.


성벽 절개 단면을 그대로 전시


조사단은 내친김에 한 걸음 더 나갔다. 국내에서는 성벽을 절개 조사한 뒤 다시 흙으로 묻는 것을 최선의 보존방법으로 여기지만, 우리 팀은 세바 쪽과 협의하여 살비르성의 북벽 단면 전체를 노출시켜 전시하기로 하였다. 한서대학교 위광철 교수 팀이 성벽 단면에 약품을 도포하여 경화처리하였고, 세바 쪽의 설계와 시공으로 멋진 야외전시관이 탄생한 것이다. 이 전시관은 학생들에게는 교육, 국민들에게는 관광, 외국에서 온 내빈들에게는 역사를 홍보하는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전시관의 성공담은 한국에까지 전해져서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이 사례를 참고하여 전시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생벽돌로 층층이 쌓은 살비르 성벽. 동아시아가 주로 판축 기법으로 성을 쌓은 데 비해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벽돌을 햇볕에 말려 쌓는 생벽돌 축조 방식이 유행했다. 살비르 성벽은 절개된 채로 전시함으로써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권오영 교수 제공


살비르성 내부의 공중목욕탕. 권오영 교수 제공


살비르성 내부의 상수도 시설. 권오영 교수 제공


아제르바이잔은 그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역사적으로 주변 세력의 침입을 수없이 겪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828년 투르크만차이 조약에 의해 북부는 러시아에, 남부는 이란의 카자르 왕조에 편입되었다. 북부는 소비에트 시기를 거쳐 1989년에 독립하여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이 되었지만, 남부는 여전히 이란에 속해 있다. 남과 북 아제르바이잔의 통일은 요원한 형편이며, 아르메니아와 조지아 등 주변국들 역시 통일된 강력한 아제르바이잔의 출현을 원하지 않는다. 민족의 이질화는 심화되고 있으며, 경제적 부를 달성한 북쪽의 젊은 세대는 통일의 필요성을 점차 느끼지 못하게 되고 분단은 고착화되고 있다.


과거에 존재하였던 코카시안 알바니아라는 고대 국가의 진정한 계승자가 아제르바이잔인지 아르메니아인지를 둘러싼 역사논쟁, 그리고 이와 관련된 영토분쟁은 현재도 치열하게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와 흡사한 점이 많다. 우리 역사학계가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제르바이잔 쪽과 전개한 장기간의 공동 조사가 코카서스 지역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와 양국의 친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척 사울!!!(“감사합니다”라는 뜻의 아제르바이잔말)


살비르성에서 바라본 코카서스산맥. 산 너머는 러시아 땅이다. 오세윤 문화재전문 사진작가 제공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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