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왕(文王)
발해의 제3대왕. 무왕의 아들.
생몰 : 미상∼794년.
재위 : 737∼794년.
이름 : 대흠무(大欽茂).
가계
부왕: 무왕 대무예(武王 大武藝)
모후: ?
왕후: 효의왕(황)후(孝懿王(皇)后)
아들: 대굉림(大宏臨)
손자: 성왕 대화여(成王 大華璵)
아들: 강왕 대숭린(康王 大嵩璘)
딸: ??공주 (일찍죽음), 정혜공주(貞惠公主), 정연공주, 정효공주(貞孝公主)
종제: 대원의
737년 [문왕 1년] 대수령(大首領) 다몽주(多蒙周)를 당나라에 파견
738년 음11월 [성무천황 천평 10년 11월] 일본에 사신을 보냄.
738년 [문왕 2년] 당나라의 단수간(段守簡)이 와서 대흠무(大欽茂)
739년 음1월 [문왕 3년 1월] 왕의 아우 대욱진(大勗進)을 당나라에 사신
740년 음1월 1일 [성무천황 12년 1월 1일] 일본에 사신을 보냄.
740년 음2월 [문왕 4년 2월]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함.
741년 [문왕 5년] 실아리(失阿利)를 당나라에 파견함.
743년 [문왕 7년] 왕의 아우 대번(大蕃)을 당나라에 보냄.
746년 음10월 [성무천황 17년 10월] 발해인 1,100여명, 일본에 건너가 출우국
746년 [문왕 10년]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어 새해를 축하함.
747년 [문왕 11년] 당나라에 사신 파견함.
749년 [문왕 13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매를 선사함.
750년 [문왕 14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매를 선사함
752년 음9월 24일 [효겸천황 11년 9월 24일] 모시몽(募施蒙)을 일본에 파견함.
753년 음5월 25일 [효겸천황 5년 5월 25일] 모시몽(募施蒙)이 일본에 사신으로 감.
753년 [문왕 17년] 당나라에 사신 보냄.
754년 [문왕 18년]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새해를 축하함.
755년 [문왕 19년] 당나라로부터 특진 추가 받음.
756년 [문왕 20년] 돈화(敦化) 동모산(東牟山)에서 상경 용천부
758년 음9월 18일 [순인천황 2년 9월 18일] 양승경(楊承慶) 등 23인, 일본에 사신으로 감
759년 음1월 3일 [순인천황 3년 1월 3일] 양승경(楊承慶)이 국서를 천황에게 전함.
759년 음2월 16일 [순인천황 3년 2월 16일] 양승경(楊承慶)이 일본의 입당사(入唐使) 고원도
760년 음1월 5일 [순인천황 4년 1월 5일] 고남신(高南申)이 일본에 사신으로 가서 국서
761년 음10월 [순인천황 5년 10월] 일본의 사신 도착함.
762년 윤12월 19일 [순인천황 6년 윤12월 19일] 왕신복(王新福)이 일본에 사신으로 감.
762년 [문왕 26년] 당나라가 문왕(文王)에게 작호를 보내옴.
762년 [문왕 26년] 정창원 낙구궐실병출납장(樂具闕失幷出納帳)
763년 음2월 20일 [순인천황 6년 2월 20일] 왕신복(王新福), 일본의 답례사신과 함께 귀국함
764년 [문왕 28년] 왕탄(王誕)을 당나라에 사신으로 보냄.
766년 [문왕 30년] 대흠무(大欽茂), 당나라로부터 사공 겸 태위
767년 음5월 [문왕 31년 5월] 당나라에 사신을 보냄.
767년 음8월 [문왕 31년 8월] 당나라에 사신 보냄.
767년 음9월 [문왕 31년 9월] 당나라에 사신 보냄.
767년 음11월 [문왕 31년 11월] 당나라에 사신 보냄.
767년 음12월 [문왕 31년 12월] 당나라에 사신 보냄.
768년 음3월 12일 [문왕 32년 3월 12일] 당나라에 사신 보냄.
768년 음12월 [문왕 32년 12월] 당나라에 사신 보냄.
771년 음6월 27일 [광인천황 2년 6월 27일] 사신 일만복(壹萬福) 등 325인 일본 출우국
773년 [문왕 37년] 당나라에 사신을 보냄.
774년 [문왕 38년] 당나라에 사신 보냄.
775년 [문왕 39년] 4차례 당나라에 사신 보냄.
776년 음12월 22일 [광인천황 7년 12월 22일] 사도몽(史都蒙) 등 187인, 일본에 사신
776년 [문왕 40년] 장광조 묘지(墓誌) 조성함.
778년 음1월 [광인천황 9년 1월] 장선수(張仙壽), 귀국하는 일본사신을 전송함.
780년 음1월 [문왕 44년] 당나라에 사신 보냄.
780년 [문왕 44년] 정혜공주묘(貞惠公主墓) 조성함.
782년 음5월 [문왕 46년] 당나라에 사신 보냄.
782년 [문왕 46년] 정효공주묘(貞孝公主墓) 조성함.
786년 음9월 18일 [환무천황 5년 9월 18일] 사신 이원태(李元泰) 이하 65명이 일본 출우국
790년 [문왕 54년] 문교(文敎)를 진흥함.
791년 음1월 [문왕 55년 1월] 대상정(大常靖)을 당나라에 보내어 새해를 축하함
791년 음8월 [문왕 55년] 대정간(大貞幹)을 당나라에 사신으로 보냄.
792년 [문왕 56년] 양길복(楊吉福) 등 35인을 당나라에 보냄.
793년 [문왕 57년] 문왕 죽음, 대원의(大元義) 즉위.
문왕은 고왕 대조영(大祚榮)이래 30년간의 수도였던 지금의 돈화분지(敦化盆地) 안에 있는 오동성(敷東城)의 비좁은 지역을 벗어나 두만강 하류로 흘러들어가는 해란하(海蘭河)유역에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 목단강(牧丹江)유역에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 그리고 지금의 혼춘현(琿春縣) 반랍성(半拉城)에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를 구축하여 천도를 거듭하였다.
《신당서》 발해전에 ‘구국(舊國)’으로 적혀 있는 오동성은 주위의 길이가 1,000m에 못 미치는 넓이이므로 이미 그 부근뿐 아니라 무왕 때 연해주 남부까지 합쳐 해상으로 일본과 통교하던 발해국의 수도로서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비하면 747∼751년경에 천도하여 755년까지 수도였던 중경현덕부는 철과 포(布)·쌀의 생산으로 발해국의 산업중심지였으며, 755년에서 문왕이 약 30년간 수도로 하였던 상경용천부는 뒷날 다시 수도가 되어 발해국이 멸망할 때까지 약 130년간의 수도가 된 곳이다.
그리고 다시 785년경에 천도한 동경용원부는 《신당서》 발해전에 일본으로 통하는 길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해상교통의 중요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왕 때의 천도는 발해국의 성장에 따라 그에 상응한 보다 넓은 지역에 자리잡은 수도의 건설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중경·상경·동경의 위치가 동부 만주지역인 것은 곧 발해국의 발전방향을 나타내주고 있다. 762년(문왕 대흥 25)에 당나라가 종래 ‘발해군’이라고 호칭하던 것을 ‘발해국’으로 바꾸고 문왕을 발해국왕으로 책봉하였던 것은 그러한 발해국의 성세를 인정함이었다. 문왕의 재위기간중 일본과 수차례에 걸쳐 사신이 내왕하였다.
[참고문헌]
新唐書
唐代渤海上京龍泉府遺址(陳顯昌, 文物, 1980―9)
唐代渤海貞惠公主墓志和貞孝公主墓志(王承禮, 社會科學戰線, 19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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