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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강왕
강왕(康王, ? ~809년, 재위: 794년 ~ 809년)은 발해의 제6대 국왕이다. 이름은 대숭린(大嵩璘)이고 문왕의 아들이다. 연호는 정력(正曆)을 사용하였다.
생애
성왕이 죽자, 대흠무의 막내아들 대숭린이 왕위를 계승했다. 당초는 국무를 잠정 통치 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794년(중흥 2년)에 즉위 해 정력으로 개원했다.
당나라는 내시 은지첨(殷志瞻)을 파견해 책봉 했지만, 대흠무가 발해 국왕에 봉해진 것에 대해, 그 하위 작위인 발해군왕(渤海郡王)만이 제수 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 발해측은 발해 국왕의 서수를 요구 당에 사절을 보내 797년에 간신히 은청광록대부 검교사공 발해국왕(銀青光祿大夫 検校司空 渤海國王)에 봉해지기 이르렀다.
재위 중에 당나라에 대해 빈번히 사자를 파견해 교류해, 또 일본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경제·문화 교류를 진행시켰다.
발해에서는 2대 계속 되어 단명의 왕이 재위 한 것에 의해 국내에 혼란이 발생했지만, 대숭린의 치세하에서 안정을 회복해, 더욱 국력의 발전을 보았다.
가족관계
참고
신라
발해 강왕
강왕(康王, ? ~809년, 재위: 794년 ~ 809년)은 발해의 제6대 국왕이다. 이름은 대숭린(大嵩璘)이고 문왕의 아들이다. 연호는 정력(正曆)을 사용하였다.
생애
성왕이 죽자, 대흠무의 막내아들 대숭린이 왕위를 계승했다. 당초는 국무를 잠정 통치 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794년(중흥 2년)에 즉위 해 정력으로 개원했다.
당나라는 내시 은지첨(殷志瞻)을 파견해 책봉 했지만, 대흠무가 발해 국왕에 봉해진 것에 대해, 그 하위 작위인 발해군왕(渤海郡王)만이 제수 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 발해측은 발해 국왕의 서수를 요구 당에 사절을 보내 797년에 간신히 은청광록대부 검교사공 발해국왕(銀青光祿大夫 検校司空 渤海國王)에 봉해지기 이르렀다.
재위 중에 당나라에 대해 빈번히 사자를 파견해 교류해, 또 일본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경제·문화 교류를 진행시켰다.
발해에서는 2대 계속 되어 단명의 왕이 재위 한 것에 의해 국내에 혼란이 발생했지만, 대숭린의 치세하에서 안정을 회복해, 더욱 국력의 발전을 보았다.
가족관계
참고
신라
전 대 성왕 |
제6대 발해 국왕 794년 - 809년 |
후 대 정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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