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B%B0%9C%ED%95%B4_%ED%9D%AC%EC%99%95
발해 희왕
희왕(僖王, ?~817년, 재위:812년~817년)은 발해의 제8대 국왕이다. 이름은 대언의(大言義)이다. 발해 제6대 왕 강왕의 아들이며 정왕의 동생이다. 연호는 주작(朱雀)을 사용하였다.[1]
생애
정왕이 병으로 죽자, 그 남동생인 대언의가 국무를 담당해, 당나라에 사자를 파견해 선왕의 죽음을 알렸다. 그 후 즉위 한 희왕은 연호를 주작으로 정하고, 다음 해 당나라의 내시인 이중민(李重旻)이 와서 그를 발해 국왕에 봉해주었다.
재위 동안, 당나라에 자주 사신을 보냈다. 또 이 시대의 교류의 특징으로서는 불교의 융성이 있다. 813년에는 고예진(高礼進)등 37명을 당에 입조시켜, 발해의 금은의 불상 각 1체를 헌상 하였다. 이것은 왕실의 불교에의 귀의했다는 방증이며, 사실 발해의 유적에서는 대량의 동, 도제의 불상이 출토되었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사신 파견을 실시해, 경제적인 면 이외에도 문화 교류도 활발히 행해졌다. 발해사정사(渤海史正使)의 왕효렴(王孝廉)등의 한시 등은 「문화수려집(文華秀麗集)」에 수록되어 현재에 전해지고 있다.
가족관계
참고
신라
주석
1. ↑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 華文書局, 1934)
발해 희왕
희왕(僖王, ?~817년, 재위:812년~817년)은 발해의 제8대 국왕이다. 이름은 대언의(大言義)이다. 발해 제6대 왕 강왕의 아들이며 정왕의 동생이다. 연호는 주작(朱雀)을 사용하였다.[1]
생애
정왕이 병으로 죽자, 그 남동생인 대언의가 국무를 담당해, 당나라에 사자를 파견해 선왕의 죽음을 알렸다. 그 후 즉위 한 희왕은 연호를 주작으로 정하고, 다음 해 당나라의 내시인 이중민(李重旻)이 와서 그를 발해 국왕에 봉해주었다.
재위 동안, 당나라에 자주 사신을 보냈다. 또 이 시대의 교류의 특징으로서는 불교의 융성이 있다. 813년에는 고예진(高礼進)등 37명을 당에 입조시켜, 발해의 금은의 불상 각 1체를 헌상 하였다. 이것은 왕실의 불교에의 귀의했다는 방증이며, 사실 발해의 유적에서는 대량의 동, 도제의 불상이 출토되었다.
또 일본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사신 파견을 실시해, 경제적인 면 이외에도 문화 교류도 활발히 행해졌다. 발해사정사(渤海史正使)의 왕효렴(王孝廉)등의 한시 등은 「문화수려집(文華秀麗集)」에 수록되어 현재에 전해지고 있다.
가족관계
참고
신라
주석
1. ↑ 《신당서》(新唐書), 渤海國志長編(金毓, 華文書局, 1934)
전 대 정왕 |
제8대 발해 국왕 812년 - 817년 |
후 대 간왕 |
'발해 > 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발해 간왕 - 위키 (0) | 2011.11.08 |
---|---|
희왕(僖王) - 한국역대인물,한국사DB,위키 (0) | 2011.11.08 |
정왕(定王) - 한국역대인물,한국사DB,위키 (0) | 2011.11.08 |
발해 정왕 - 위키 (0) | 2011.11.08 |
강왕(康王) - 한국역대인물,한국사DB,위키 (0) | 2011.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