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32
박근혜, 최태민 청탁 의혹
고상만 전 의문사위 조사관이 ‘박근혜 후보가 영부인 대행을 할 때 최태민 목사를 도운 기업의 민원을 해결하라고 지시했다’라는 내용의 글을 보내왔다. 김정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직접 증언했다고 한다.
조회수 : 11,454 | 고상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전 조사관) [273호] 승인 2012.12.10 02:00:47
1975년 8월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재야 인사 장준하 선생이 사망했다. 그리고 당시 검찰은 목격자를 ‘자처’하는 이의 진술을 토대로 하산 중 실족 추락사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이 같은 박정희 정권의 발표를 그대로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의혹이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건 발생 후 25년이 지나가던 2000년, 이 같은 정치적 의혹이 제기되는 사망 사건을 조사하는 정부기구가 출범했다. 바로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였다. 그리고 나는 이 의문사위에서 장준하 선생 사건을 담당하는 조사관으로 일했다.
장준하 선생 의문사의 진실을 추적하면서 많은 참고인을 만났다. 대상자인 장준하가 한 시대의 걸출한 인물이었기에 참고인 역시 우리나라 현대사의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예를 들어 장준하가 준비했던 ‘거사’의 실체를 증언해준 법정 스님을 비롯해 ‘유신헌법 개정 100만인 청원운동’에 대해 증언해준 백기완 선생, 이 같은 거사에 협력하기로 했음을 증언한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내가 만난 참고인 중 한 명이었다.
퍼스트레이디 시절 ‘경상북도 새마음 갖기 도민 궐기대회’에 참석한 박근혜 후보.
그런데 이런 분들의 적극적인 도움과 달리 정말 어렵게 만난 사람이 있다. 바로 1975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씨였다. 그를 꼭 만나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 장준하가 사망한 1975년 8월17일,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그가 이 사실을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는지를 묻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보고를 했다면 당시 박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였고 이후 조치나 지시 사항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치열한 ‘신경전’ 끝에 그와 마주한 날은 2004년 2월20일이었다. 하지만 어렵게 만난 그에게 나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형적인 ‘모르쇠’였다. 처음부터 ‘장준하가 누구야’였고, 박정희 대통령이 장준하 사건을 보고받았는지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장준하와 관련한 이야기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그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형편없는’ 조사가 끝난 후 가진 티타임 때였다. 조사 중에 그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를 비난하며 ‘긴급조치 10호’와 관련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얘기를 하다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와 관련한 얘기를 꺼낸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 박근혜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건설업체와 방직업체 명단 세 개가 적혀 있는 메모지를 줬는데, “이것이 뭐냐”라고 묻자 박근혜가 “구국선교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체 명단”이라면서 “이 업체들의 민원을 해결해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최태민 목사의 구국선교단은 그동안 박근혜와 관련한 ‘검증’이 거론될 때마다 끊임없이 제기된 뜨거운 감자였다. 이 논란의 핵심은 최태민 목사의 구국선교단이 기업으로부터 엄청나게 기부금을 걷었는데 이 같은 최 목사의 부정행위에 당시 퍼스트레이디인 박근혜가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구국선교단 관련 비리 의혹에 휩싸였던 최태민 목사.
박근혜, “최태민 부정 의혹은 모르는 일”
1970년대 말 중앙정보부가 최태민 목사를 조사한 후 발표한 문건에 따르면 구국선교단의 부패 비리 의혹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 같은 비리 의혹에 대해 2012년 8월22일자 <조선일보>는 “박근혜의 후원으로 구국봉사단(구국선교단의 후신)을 설립, 박근혜 명의를 팔아 이권 개입 및 불투명한 거액의 금품을 징수했다” “롯데·신라호텔 등을 무대로 매일같이 정·관·재·언론계 등 중진 인사와 접촉, 초호화판으로 행세하면서 이권 개입, 금품수수를 하고 엽색 행각으로 물의를 야기했다”라며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 자료로 알려진 문건 내용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사실 이 중앙정보부 수사자료를 가장 먼저 보도한 건 2007년 <신동아> 6월호였다. 이 보도로 인해 <신동아>는 검찰의 압수수색에 직면했으나 기자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그런데 만약 김정렴 전 비서실장이 나에게 들려준 말이 사실이라면 구국선교단 총재인 최태민 목사가 기업으로부터 ‘수금’을 하면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20대 중반의 박근혜가 그 대가로 기부금을 낸 기업체의 민원을 해결해줬다는 그간의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는 것이 아닌가. 최태민 목사의 부정행위와 자신이 얽힌 의혹에 대해 박근혜 후보는 그동안 강력하게 부인해왔다. “최태민 목사의 부정 의혹은 과장된 것이며, 설령 그 비리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내가 모르는 가운데 벌어진 무관한 일”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어온 것이다. 누구의 말이 사실일지, 의문은 증폭되어 갔다.
그런데 김정렴 비서실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의문사위 업무가 종료된 2004년 8월 어느 날이었다. 문득 서재에 꽂혀 있던 한 권의 책에 시선이 갔다. 생각해보니 김정렴 비서실장을 조사하러 간 날, 그가 내게 준 ‘김정렴 정치회고록’이었다. 당시 30대 중반이던 내가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그가 준 책이었다. 당시엔 너무 바빠 못 읽었던 그 책을 꺼내 읽다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날 김정렴 비서실장이 들려줬던 말보다 더 세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 실장이 쓴 책 <아, 박정희> 중 ‘정치자금과 친인척 관리’ 관련 부분을 그대로 인용한다.
ⓒ뉴시스
김정렴씨(위)는 박근혜 후보가 퍼스트레이디였던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다. “육(영수) 여사 서거 후 큰따님 근혜씨가 충효사상 선양운동을 시작했는데 이때 최 모(최태민)라는 목사가 ‘구국선교단’을 조직해서 가세하였다. 하루는 큰따님으로부터 구국선교단을 지원하고 있는 어느 ‘건설회사’와 ‘섬유공업회사’의 현안 문제를 해결해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는 아버지 박 대통령을 돕겠다고 순수하게 충효 선양운동을 시작한 큰따님이 구국선교단에 이용될 위험성이 크다고 생각되어 즉각 박 대통령에 보고했다. 만약 대통령이 보기에도 큰따님에게 자금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비서실장이 자금을 추가로 마련해 드릴 터이니 대통령이 큰따님에게 직접 지원하되 그 대신 큰따님에게는 금전 문제에 개입되는 일이 없도록 원천 봉쇄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 박 대통령은 나의 건의에 전적으로 찬성했다. 나는 박 대통령의 양해를 얻어 모든 수석 비서관들에게 구국선교단에 이용당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이 같은 김정렴 비서실장의 증언에 대해 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직접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의혹으로 존재해 온 최태민 목사의 ‘구국선교단’ 비리와 관련해 박근혜 후보가 청탁했다고 증언하는 김정렴 비서실장의 말이 사실인지 유권자는 분명히 알 권리가 있다. 그래서 그래도 좋다면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중대한 의혹에 대해 전 국민을 속이고 ‘그냥’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 후보를 위해서도 안 되며, 무엇보다 국민을 위해서도 안 될 일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퍼스트레이디 박근혜 시절의 청와대 비서실장 김정렴의 ‘청탁’ 증언과 이러한 의혹을 일절 부인해온 박근혜 후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진실을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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