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43674.html
10살 제니퍼의 5·18 기억…“헬기 사격 똑똑히 보고 들었다”
등록 :2020-05-05 15:42 수정 :2020-05-05 17:19
“우리 가족이 ‘5월 광주의 진실’ 알릴 수 있어 자랑스러워요”
[짬] ‘5·18 체험기’ 동화 펴낸 제니퍼 헌틀리
찰스 베츠 헌틀리(맨오른쪽) 목사와 마사(왼쪽 둘째) 부부의 1974년 가족 사진. 막내딸인 제니퍼(앞줄 오른쪽)가 4살 때이고 ,세째인 아들(앞줄 왼쪽)은 한국에서 입양했다. 사진 하늘마음 제공
“5·18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독재와 싸우다 죽어간 사람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아직도 5·18의 진실을 부정하는 시도들이 있다는 게 마음이 아파요. <제니의 다락방>이 사람들이 진실에 귀를 기울이게 해주길 바랍니다.”
최근 나온 동화 <제니의 다락방>(하늘마음)의 저자 제니퍼 헌틀리는 광주가 고향이다. 부친인 고 찰스 베츠 헌틀리(1936~2017·한국이름 허철선) 목사가 원목으로 사역한 광주기독병원에서 1970년에 태어났다. 부친이 한국 선교를 마친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서 비영리 노숙인 지원단체 ‘오픈 테이블 미니스트리’를 이끌고 있다.
<제니의 다락방>에는 10살 소녀 제니퍼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겪은 사건들이 담겼다. 우연히 2009년 미국에서 만난 동화작가 이화연 하늘마음 대표의 제안을 받고 그가 쓴 5월 체험기를 이 대표가 동화로 꾸몄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전자우편으로 제니퍼와 만났다.
부친 헌틀리 목사 광주기독병원 원목, 광주에서 태어나 10살 때 ‘80년 5월’ “총알 피하려 20여명 내 지하방 밤샘”
최근 동화 ‘제니의 다락방’으로 출간, “헬리콥터 내눈으로 똑똑히 보고 들어” “전두환 법정 진술은 명백한 거짓”
제니퍼의 부모인 고 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와 마사 헌틀리 부부. 부친은 1980년 5·18 참상 사진을 힌츠페터 기자 등에게 전달했고 모친은 기사로 써서 국내외 언론에 알렸다. 사진 제니퍼 헌틀리 제공
부친 고 헌틀리 목사는 광주항쟁의 진실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한 공로로 3년 전 ‘오월어머니상’을 받았다. 고인의 뜻에 따라 부친의 유골 절반은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광주기독병원 원목으로 5·18을 겪은 부친은 항쟁 기간 내내 병원에 실려 오는 계엄군 총격 피해자의 참혹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사진들은 고인의 자택 지하 암실에서 현상돼 영화 <택시 운전사>에 등장하는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등의 손을 거쳐 세계로 퍼졌다. 헌틀리 목사는 특히 자신이 찍은 사망자 엑스레이 사진을 근거로 계엄군이 비인도적 살상무기인 연성탄(soft bullet·납탄)을 썼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납탄은 총알이 사람 몸 안에서 산산조각이 나 수술로 제거하기가 어렵다. 그의 모친 마사는 항쟁 기간에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기사를 써 비밀리에 국내외 언론에 보내기도 했다.
막내 제니퍼는 4남매 중 유일하게 항쟁 내내 부모 곁을 지켰다. 10살 소녀에게 ‘5월 광주’는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일상에 파열음을 내는 힘겨운 시간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기억은 아버지가 찍은 사진이었단다. “부친이 일하던 광주기독병원에 총을 맞거나 구타당한 환자들이 밤낮으로 들어왔어요. 지금도 그때 죽거나 다친 사람들, 피 흘리는 주검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우리 집 암실에서 사진을 현상하던 부친 곁을 지키며 피범벅이 돼 오직 치아만 식별되는 사진을 보고 공포에 떨기도 했어요. 그 사진들 때문에 내 몸이 아팠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 사진들을 볼 때마다 수많은 젊은이가 삶의 터전인 광주를 지키기 위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가 무고하게 죽어간 것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리고 지금은 민주주의가 일상인 세상에서 사는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은가 생각하게 되죠. 그건 바로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용감한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도요.”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제니퍼 헌틀리는 10살 때 광주에서 직접 겪은 ‘5·18’의 진실을 알리고자 동화 <제니의 다락방>을 썼다.
부친이 체포 위험에 처한 학생 7명을 집 다락에 숨겨준 기억도 생생하다. 집에 자신과 피신한 학생들만 있을 때 총을 든 군인이 초인종을 눌러 부모를 찾자, 임기응변을 발휘해 아이스티 두 잔을 군인들에게 대접하고 수색을 피할 수 있었단다. 계엄군 최후의 진압 작전 날에는 총알이 집으로 날아올 것을 우려해 다락방 학생들과 병원 의사 가족 등 20명이 제니퍼의 지하방에서 함께 밤을 지새웠다.
모친 마사는 지난해 2월 문희상 국회의장에게 5·18을 왜곡·모독한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징계해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 대한 딸의 생각을 물었다. “자식 잃은 광주 시민들의 친구이자 5월 목격자로서, 우리 어머니는 그 세 명 의원들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걸 잘 알아요. 다른 지역 사람 중 일부는 광주의 일을 여전히 믿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그때 언론이 진실을 보도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검열된 신문에 실린 거짓을 믿게 되었어요. 때로는 무언가를 진실로 믿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며칠 전 전두환이 법정에서 오월항쟁 동안 헬기 사격은 없었다고 진술한 걸 알게 됐어요. 내 두 눈으로 똑똑히 헬리콥터들을 보았고 내 두 귀로 분명히 총성을 들었어요. 그가 하는 말은 거짓입니다.”
제니퍼는 위험을 무릅쓴 부친의 행위를 언제쯤 온전히 이해했을까. “80년 5월에는 어려서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증거를 남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못했어요. 나중에야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광주의 진실을 믿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대학을 다닐 때 부친이 찍은 사진들이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우리 집에 사람들을 숨겨주는 일이 아주 중요했다는 것도요. 부모님이 광주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다는 게 자랑스러워요. 선교사였던 부모님이 하신 일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일이었어요. 아주 참혹한 시기에도 부모님이 당신들의 사명을 삶으로 살아냈다는 점이 자랑스러워요.”
‘80년 5월’ 10살 소녀 제니퍼 헌틀리의 목격담을 그린 동화 <제니의 다락방> 표지. 사진 하늘마음 제공
헌틀리 가족이 1969년부터 85년까지 살았던 광주광역시 양림동 선교사 사택. 사진 하늘마음 제공
그의 세 자녀는 엄마가 10살 때 겪은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는 2년 전 부친의 유골을 들고 큰딸, 막내아들과 함께 광주를 찾았다. “올해 21살인 큰딸은 고교를 다닐 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보고서를 써 에이(A) 학점을 받기도 했죠. 딸은 광주의 일을 처음 알고 크게 놀랐지만 우리 가족이 학생들을 숨겨주고 사진과 글로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알렸다는 걸 알고 무척 자랑스러워했죠.”
그의 마지막 답변이다. “오월광주에 대한 나의 목격담 <제니의 다락방>이 사람들에게, 특히 어린이들에게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면 바랄 게 없겠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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