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key=20090227.22031201651

강인욱의 북방 역사 기행 <47> 발해와 보신탕
인간의 친구이자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개
연변·발해진 곳곳에서 개장국집 성업중
가죽은 서민의 겨울철 옷감으로도 사용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2009-02-26 20:17:36/ 본지 31면

발해 상경용천부 성벽 근처에 있는 장국집.

1911년 남극을 처음 정복한 스웨덴의 아문센은 당시 남극에 첫 깃발을 꼽기 위해 영국의 스코트 탐험대와 경쟁하고 있었다. 결과는 아문센이 먼저 도착했고, 스코트의 탐험대는 아쉽게도 남극의 추위에 희생되고 말았다. 아문센은 그 비결로 개고기를 꼽았다. 스코트 탐험대는 스코틀랜드의 조랑말을 데리고 온 반면에 아문센은 북극에서 이미 그 효용을 확인한 북극개를 데려왔다. 아문센은 탐험하는 중에 짐이 줄어서 쓸모 없는 개를 잡아서 개도 먹이고 사람도 먹었다. 스웨덴에게 선수를 빼앗긴 영국에서는 야만이며 비신사적인 행동이라고 아문센을 비난하지만,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남극에서 예의 차려가면서 탐험한다는 것이 옳을까.

서양에서는 각 나라의 풍습과 관련 없이 자신들의 잣대에 맞추어 개를 먹는 사람을 야만시하지만 동북아시아의 농경민족 사이에서 개를 먹는 풍습은 매우 보편적이었다. 러시아 사람들도 개를 먹었다. 타이가나 툰드라같이 혹독하고 추운 지대에서 사는 러시아 사람들은 개 또는 늑대고기를 결핵과 같은 소모성 질환에 특효약으로 생각했다. 개과의 동물은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원기회복에 좋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러시아에서는 지금도 개과에 속하는 너구리기름을 결핵약으로 판다. 나와 친한 고고학자 한 분은 한국에 나오자 특이하게도 보신탕을 꼭 먹어보자고 했다. 이유인 즉은, 자신도 추운 툰드라에서 발굴을 하다 병이 나니깐 사냥꾼들이 개를 잡아 준 걸 드시고 나았단다. 실제 한국의 보신탕을 먹으니 개고기 특유의 노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며 잘 드셨다. 또 몇 번 먹었으면 하는 눈치였지만, 값이 값인지라 그냥 없다고 둘러댔었다. 

동아시아 쌀농사권에서 개는 사람과 먹거리가 같고 먹고 남은 곡물로 사육가능했다. 농경문화의 먹거리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단백질이었으니, 사람이 먹고 남은 음식물로 개와 돼지를 먹이고 그를 통해 단백질을 보충한 것이다. 

실제로 만주지역 청동기시대 유적을 발굴하면 농경을 한 집단들 사이에서만 개 뼈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치다. 한국에서도 일찍이 김해패총에서도 개 뼈가 나왔으니, 아마도 식육용이었던 것 같다. 반면에 사슴을 치거나 연어를 잡는 북방의 퉁구스계통 민족은 개를 상식하지는 않는다. 필자가 타이가 지역에서 유목하는 에벤키 족에게 개를 먹냐고 물어보니 순록같이 좋은 고기가 많은데 왜 개를 먹느냐고서 반문했다. 

간도 같은 추운 동네에서 농사를 짓고 혹독한 겨울을 나야했던 우리 선조들에게 개는 인간의 친구인 동시에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연변지역을 다니면 사방에서 개장국집을 볼 수 있다. 2007년 10월 말 연변 왕청현 백초구에 위치한 옥저인의 유적을 찾아 답사할 때였다. 백초구는 예로부터 교통로인 탓에 지금도 길가에 주막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초가집을 개조한 한 주막집에 들어가자 큰 방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앉은뱅이 소반을 펴놓고 땀을 흘리며 국밥을 말아먹고 있는 풍경이 무척 정겨웠다. 사실 필자는 보신탕을 즐기지 않지만, 메뉴가 개장국 하나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얼큰한 장국 한 그릇을 받았다. 우물쭈물하다 한입 먹어보니 맛있어서 결국은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백초구 저자거리에서 연길 쪽으로 차로 3~4분만 가면 너른 들이 나온다. 바로 여기에서 2000년 전 옥저인의 마을과 밭이 발견되었으며, 그 뒷산에는 그들의 무덤이 있었다. 서리가 내린 추운 아침에 든든히 배를 불리고 옥저인들의 벌판을 바라보니 문득 추운 지방에서 농사를 했던 옥저인들도 개를 먹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옥저뿐인가, 발해인들도 개를 많이 키웠다. 발해의 여러 유적에서 개 뼈가 발견된 적 있으니, 개고기는 발해인의 별식이었을 것이다. 발해의 대표적인 유적인 상경용천부가 있는 흑룡강성 영안시의 동경성 근처는 예로부터 조선족의 집성지여서 근처에 조선족 자치현이 있을 정도이다. 동경성 근처의 발해진 마을에도 많은 개장국집이 있었다.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에게 개의 쓰임은 또 있으니, 바로 그 가죽이다. 무명은 아직 몰랐고 비단은 꿈도 못 꿀 옛 사람들이 삼베옷만으로 추운 겨울을 날수는 없었다. 개의 가죽은 서민들이 겨울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개는 우리와 북방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동물이었다. 서양에서 어떻게 말하든 개는 추운 북방지역에서 사람들의 친구였으며, 고기는 단백질의 공급원으로, 또 가죽은 겨울을 나는 옷으로 사용했으니, 뼛속까지 고마운 친구다. 소모적인 보신탕 논쟁 속에서 진정한 우리와 북방문화 속의 개가 그 의미를 잃고 있는 것 같다.

부경대 사학과 교수

 



Posted by civ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