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3091508251&code=900308

[민통선 문화유산 기행]고구려 군사전략, 필살의 ‘청야전술’
입력 : 2007-03-09 15:08:25

1600여년 전의 고구려-백제전쟁과 57년 전의 한국전쟁의 양상은 같을 수 없다. 무기와 기동수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형이 변하지 않는 한 그 지형을 이용하는 전략과 전술의 기본 개념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관미성의 위치와 광개토대왕 수군의 남하루트(윤일영씨 추정).

그런 측면에서 관미성을 군사학적으로 조명한 윤일영씨의 연구는 주목된다. 그는 광개토대왕의 남하(396년) 루트와 남하 시간까지 계산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만약 광개토대왕이 1만명의 수군을 보냈다면 선단의 전체 길이는 무려 65㎞가 되는 대단한 위용을 과시했을 것이다. 황해도 조읍포에서 출발한 고구려 해군은 나흘간의 대장정 끝에 관미성(106㎞)에 도달했을 것이다.

1만명의 수군과 보조 인원 2만5000여명을 합한 3만5000명이 540여척의 배에 분승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고구려 해군은 무려 7개 방면으로 20일을 공략한 끝에 겨우 공수의 요처를 수중에 넣는다. 관미성을 수중에 넣지 않으면 한성을 ‘도모’할 수 없기에 피나는 전투를 벌인 것이다. 지금도 우리 해병대가 김포반도의 한강·임진강 교회지점을 지키는 이유다.

이쯤해서 누구나 품게 되는 의문점 하나. 왜 고대전쟁에서는 성의 공략에 운명을 거는 것일까. 예나 지금이나 지휘관의 기본은 요해지를 막는 전술이다. 고구려가 수·당 같은 제국을 상대하면서도 700여년을 버틴 이유는 바로 필살의 청야전술(적이 공격해오면 백성들이 산성으로 대피하면서 중도에 모든 곡식을 불태우는 전술) 덕분이다.

“우리 군량은 모두 요동에 있는데 지금 북쪽의 안시성을 지나쳐 남쪽의 건안성을 쳤다가, 만약 고구려 사람들이 군량길을 끊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 태종이 645년 안시성 공격에 실패, 우회할 것을 명령하자 당 장군 이세적은 배후의 보급로 차단을 걱정하면서 한 소리다.

1636년 병자호란 때도 청나라군은 평안도 안주성을 우회하여 남하했다. 그런데 안주성을 지키던 평안 병사 유림이 철원으로 내려가 청군의 배후를 쳐서 병자호란 때의 유일한 승전보인 김화대첩을 거둔다. 결국 수성(守城) 및 청야전술은 칼과 말에 능한 중국 중원과 북방민족의 침략에 맞서 축성술과 활에 능한 우리 민족이 생존할 수 있었던 비책이었던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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