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ahan.wonkwang.ac.kr/source/k2.htm
* 원문의 한자를 바꾸고 보기 좋게 편집했습니다.

고대국가 성립과 발전 : 고구려
 
고구려의 발상지인 압록강 유역 및 동가강 유역에도 일찍부터 청동기 문화인들이 살고, 주민의 이동이 적지 않은
곳이었고, 중국인들이 각종 수산자원이 풍부한 바다로 인식하였던 동해로 나아가는 교통의 중간지점 주민들은 강이나 냇가에 인접한 지역에서 살았는데 물가의 주민들이 모여사는 곳을 나(那)라고 했다.
--> 조나(藻那), 주나(朱那), 소노(消奴),관노(
灌奴), 절노(絶奴), 순노(順奴) 등의 명칭이 그것. 결국 유력한 5개의 那가 5부를 이루어 고구려국의 핵심세력으로 
 
나(那)에는 같은 혈연의 주민이 적지 않았지만 다른 혈연집단도 결혼이나 외족으로부터의 방위, 농경 등 상호 결합의 필요성에 따라 함께 살며 점차 같은 나의 주민으로 공동운명체로서 살게 되었다.
예) 주몽 : 동부여로부터 이주. 고구려의 원주지에 가까이 와서 이미 이지역에 살고 있었던 소족장들과 결합하여 세력을 규합. 이들 집단이 계루부로. 
 
나(那)는 혈연적 집단으로서의 성격을 일부 가지고 있었지만 혈연관계를 넘어선 지연집단으로서의 성격도. 다양한 출신들의 주민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데는 새로운 통치기구나 규범, 이데올로기가 필요. 이에 통치력은 더욱 강화되
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며 국가성립을 향한 역사가 진행
 
『한서』 : 前128년에 고구려의 원세력집단으로 보이는 28만명이 예군(濊君) 남려(南閭) 등의 족장에 이끌리어 漢에 투항→  한에서는 창해군(倉海郡)을 설치. 노력과 물자를 크게 소모한 채 2년 후에는 창해군이 폐지.⇒ '예군 남녀 등' 이라는 표현으로 볼 때 단일한 정치집단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연맹은 이와 같이 한과 교류를 시도하다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지만, 고조선의 멸망후 한이 낙랑, 진번, 
임둔 3군의 설치가 있자 다시 중국군현으로 편제될 수 있는 조건이 성숙. 기원전107년, 고구려 세력을 기반으로 현도군이 설치.
 
고구려연맹은 곧 漢의 식민정책의 실상을 간파하고 현도군을 축출. 기원전 75년 현도군은 고구려인들의 공격으로 보
다 중국방향으로 중심지를 옮김.
 
기원전 1세기 초에 왕망이 변방의 종족들을 억압하자 고구려 연맹은 이에 저항하면서 독자성을 완전히 확보. 친중국
적인 소노부를 누르고 새로 유입해온 자들과 종래 토착인들이 결합하여 결성한 계루부가 고구려연맹의 맹주로 
 
1세기 후반 태조왕 : 5부를 중심한 연맹체에서 계루부 출신의 왕이 왕권을 다른 부들에까지 행사하는 단계에 도
달. 다른 부의 관리들이 왕의 측근 신하로서 충성. 종래의 족장들은 왕의 귀족들로서 존재. 태조왕대에 고구려는 
고대국가로 성장
 
중국은 고구려의 국가형성을 막고자. 부여와 연결하여 고구려를 견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고구려내 여러 족장
들을 여전히 현도군에 출입케 하여 무역하게 하였다.
⇒ 새로 등장한 고구려 계루부 왕실은 이에 대응하여 중국 군현과 교역할 때는 중국의 천하질서을 받아들여 중국 천자로서의 예의를 갖추도록 했고 중국군현과 조공무역을 할 때는 중국의 조복과 모자나 기타 필요한 복장을 갖추어야 했다. 고구려는 현도군의 동쪽에 작은 성을 쌓고 모든 나(那)가 조공무역을 할 때 그들의 사자들이 입는 조복이나 모
자등을 한군데 모아두고 보관. 왕실은 책구루를 쌓고 각 집단들이 중국과 교역하는데 관리와 통제를 했다. 결국 각 족장들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던 조공무역을 왕실 관료들이 대행하거나 나아가 이를 장악하게 되었다.
 
태조왕대에 고대국가에 진입한 이래 점진적인 발전을 지속
→ 관료조직 : 족장출신들은 兄이라는 명칭이 붙는 관등에 취임. 과거 족장들의 가신들로부터 연유한 보다 전문적인 행정관료적 성격을 가진 자들은 사자라는 관등명을 가지고 관직으로 나아감. 그러나 국가는 성립되었지만 여전히 종래의 혈연적, 지연적 공동체의 족장들이 현실적으로 일반백성들을 지배하고 있었고, 국가는 그 족장들을 통하여 통치 


1. 고구려의 성장
 
① 건국 
    
전설 BC 37 : 주몽(朱蒙) - 졸본/환인(卒本/桓仁), 혼강/동가강 (渾江/佟佳江)
      BC 4C 예맥(濊貊) 토착세력과 타협         
      BC 2C 창해군(滄海郡) (BC 128), 고구려 성립    

② 초기국가 형성(BC 1C)
     BC 75 현도군 만주로 축출
     AD  9  왕망(王莽,新) 책명사(策命使) 파견 (부여·고구려) - 王을 후(侯)로 강칭(降稱)
     AD 12  왕망(王莽)이 엄우(嚴尤)를 시켜 고구려후(高句麗侯) 추(騶)를 침

     ㄱ) 5부족 연맹 : 소노부(消奴部), 절노부(絶奴部), 순노부(順奴部), 관노부(灌奴部), 게루부(桂婁部)
     ㄴ) 정치조직(초기국가 중앙관제) - 국왕 밑에 여러 관직 설치 
           - 대로(對盧, 전기), 패자(沛者), 주부(主簿), 우태(優台), 사자(使者), 조의(皂衣), 선인(先人)
           - 고추가(古雛加) : 왕족(王族), 왕비족(王妃族), 전왕족/적통대인(前王族,適統大人)
           - 상가(相加, 대가/大加 중에서 선출) : 사자(使者), 조의(皂衣), 선인(先人)             
               
③ 고대국가형성(AD 1C 후엽) : 태조왕(太祖王, 53-146) 
    ㄱ) 계루부 고씨(桂婁部 高氏) 왕위세습(형제상속) 
    ㄴ) 태조왕 4년(56) : 옥저 복속 -함흥 확보
    ㄷ) 요동진출(2C)
          - 태조왕(太祖王) 53년(105) : 요동 공격 - 6현 탈취
          - 태조왕(太祖王) 69년(121) : 현도군과 요동군 공격 - 2000명 생포
          - 차대왕(次大王, 146-165) 신대왕(新大王, 165-179) : 요동진출 계속
          - 신대왕(新大王) 8년(172) : 漢의 침략 - 국상(國相) 명림대부(明臨答夫)가 좌원(坐原)에서 섬멸 
 
④ 고국천왕(故國川王) (179-197)
    ㄱ) 행정구역 정비 :
          족제적(族制的) 5부(部) →  방위표시의 행정구역 5부(동,서,남,북,중)
    ㄴ) 왕위계승 - 부자상속
    ㄷ) 을파소(乙巴素) 국상(國相) 등용 - 진대법(賑貸法) 실시(관곡/官穀 대여) -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 시행 의미
 
⑤ 동천왕(東川王) (227-248)
    ㄱ) 3국(위오촉,魏吳蜀)의 대립 이용
    ㄴ) 서안평(西安平) 공격(16년, 242) 
          위(魏)의 관구검의 반격(244), 수도 함락(국내성/國內城, 환도성/丸都城) - 왕 옥저(沃沮)로 피난 
    ㄷ) 왕기 재침(245)
          밀우(密友) 유우(紬由) - 전세 회복                        
 
⑥ 미천왕(美川王) (300-331)
    ㄱ) 5호16국(5胡 16國)의 혼란기
    ㄴ) 진(晉)의 약화 - 서안평(西安平) 점령
    ㄷ) 낙랑(樂浪), 대방(帶方) 축출(313) - 고조선 고지회복(故地 回復)
 
⑦ 고국원왕(故國原王) (331-371)
    ㄱ) 전연(前燕) (왕12, 342) : 수도 함락
    ㄴ) 백제(百濟)의 침입(왕41, 371) : 왕 전사(戰死)

 
2. 고구려의 전성
     태조왕대(고대국가 형성), 소수림왕대(체제 정비)→ 광개토왕, 장수왕대 전성기
 
① 소수림왕(小獸林王) (371-384)
    ㄱ) 전진과 외교 - 불교수입(372) 내적, 문화적 체제 정비
    ㄴ) 제도정비 - 태학, 율령
 
 광개토왕(廣開土王) (391-413)
    ㄱ) 후연(後燕) 격퇴 - 요하이동(遼河以東), (요동 진출(遼東 進出)
    ㄴ) 숙신 토벌(肅愼 討伐) - 송화강(松花江), 연해주까지 확대
    ㄷ) 백제 침공(391-404) - 한강이북(임진강) 진출
    ㄹ) 신라 원조(5만군) - 왜(倭) 격퇴, 임라가라 진군 
    
 64성(城) 1400촌(村) 공취
    ※ 고구려(신라) 대 백제(倭, 임나가라)
    ※ 광개토왕릉비 : 통구(通溝)
 
 장수왕(長壽王) (413-491) 
    ㄱ) 남하정책 : 통구(通溝)의 국내성(國內城) → 평양(平壤) 천도(427)
    ㄴ) 백제공격(왕63, 475) : 한성(漢城) 함락 - 개로왕(蓋鹵王) 전사
    ㄷ) 신라공격 - 죽령 이북 차지, 영덕까지 진출
 
 문자왕(文咨王) (491-519)
    부여(夫餘) 병합(494)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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