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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왕실 뒤흔든 고구려계 발해고씨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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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왕실 뒤흔든 고구려계 발해고씨 가문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통 해 널리 알려져 있듯이 한(漢) 제국의 진정한 후계자는 조조의 위(魏)나, 유비의 촉 (蜀), 손권의 오(吳)가 아니라, 사마씨(司馬氏)의 진(晉)이었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통 해 널리 알려져 있듯이 한(漢) 제국의 진정한 후계자는 조조의 위(魏)나, 유비의 촉 (蜀), 손권의 오(吳)가 아니라, 사마씨(司馬氏)의 진(晉)이었다.
사마씨는 위(魏) 왕조에서 사마의(司馬懿)가 권력을 농단하다가 그의 손자 사마 염(司馬炎)에 이르러 마침내 위 왕실을 찬탈하고 진(晉)을 건국했으나 극심한 왕위 쟁탈전과 유목민의 발호를 견디지 못하고 불과 반세기 만인 서기 316년 허무한 종말 을 맞는다. 그 일족이 강남으로 쫓겨 내려가 이듬해 건업(建業ㆍ난징<南京>)에서 새 로운 왕조를 개창하니 이를 동진(東晋)이라 해서 서진(西晉)과 구분한다.
서진 말기에 발발한 서진 왕조 내부의 왕위쟁탈전은 황위(皇位) 계승권이 서로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8제후왕이 관련되었다고 해서 '8왕의 난'(八王之亂)이라 부른다.
이 와중에 5호(五胡)라고 일컫는 유목민족 집단이 북중국으로 앞서거니 뒤서거 니 들이닥치기 시작함으로써 5호16국(五胡十六國) 시대가 개막되니, 역사에서는 이 들 이민족 침입이 시작된 당시 연호를 따서 이를 `영가(永嘉)의 난(亂)'이라고 한다.
서진 말기의 이러한 극심한 정치적 혼란은 대규모 주민 이동을 유발한다. 중국 주변 각지에서 이민족이 물밀듯이 밀려왔던 것처럼, 중원 일대에 살고 있던 많은 이 는 다른 곳으로 유리(流離)하게 된다.
이 와중에 `망명지'로 고구려를 택한 사람도 빈출했으니, 고고(高顧)-고무(高撫) 형제도 여기에 속했다. 이들 형제가 정확히 언제 가문의 세거(世居) 기반인 발해군 을 떠나 고구려로 향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고의 5세손으로 북위(北魏) 왕실에서 막강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고조( 高肇)의 일생을 정리한 `북사'(北史) 권 제86에 수록된 고조 열전에는 고고가 영가 의 난을 피해 고구려로 들어갔다고 쓰여 있다.
고구려 망명 이후 고고-고무 형제와 그 후손들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발해고씨(渤海高氏)라고 일컫는 이 가문이 다시 중국사에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150 년 가량이 지난 뒤인 북위 효문제(孝文帝ㆍ재위 471-499년) 시대 무렵이다.
고구려에 정착한 고고 가문 4세손이 고양(高양<風+易>). 그는 개씨(蓋氏)라는 여인에게서 4남3녀를 낳았는데 효문제 제위 시대 어느 무렵에 일가족을 거느리고 북 위로 돌아온다.
고양-개씨 소생 4남3녀 중 뚜렷한 종적을 남긴 이를 순서대로 보면, 아들로는 맏이 고곤(高琨)과 그 동생 고언(高偃), 그 아래로 고조(高肇)가 있다.
이들 형제자매 중 특히 주목을 요하는 인물이 고조의 동생인 고조용(高照容ㆍ46 9-519)이라는 딸이다. 그는 효문제(孝文帝)의 귀인(貴人ㆍ후궁의 한 등급)으로, 그 가 낳은 원각(元恪)이 효문제에 이어 선무제(宣武帝ㆍ재위 500-515년)로 즉위함으로 써 황태후(皇太后)에 책봉됐다.
각종 문헌기록에는 고조용이 효문제 재위 생전에 정비인 황후(皇后)로 책봉된 것처럼 기록돼 있으나, 백석대학 민경삼 교수가 최근 발굴한 고조용 묘지명에 의하 면, 후궁의 일종인 귀인에서 황후를 거치지 않고 일약 황태후가 됐음이 밝혀졌다.
기록에 의하면, 고조용이 권력의 정점을 이룩한 고씨 가문은 이중-삼중으로 연 결된 혼인망으로 당시 북위 권력을 농단했음이 드러난다. 이들 고씨 가문의 혼인 관 계에서 특히 주목을 요하는 대목은 극심한 근친혼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즉, 문소황태후 소생인 선무제는 어머니의 작은오빠인 고언(高偃)의 딸을 정비 로 맞아들였으며, 문소태후 큰오빠인 고곤(高琨)의 아들 고맹(高猛)은 문소태후 소 생인 장락장공주(長樂長公主) 원영(元瑛)과 혼인했다. 모두 사촌간 근친혼이다.
고씨가문의 위력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앞서 `영가의 난' 와중에 고고와 함께 고구려로 망명한 형제로 고무(高撫)가 있다고 했거니와, 그의 후손 또한 나중 에 북위 왕조로 들어와 가문이 영달한다.
고무의 증손자가 고숭(高崇)인데 그의 일생이 `북사'에 열전(권77)으로 따로 독 립돼 있다는 사실이 이미 고숭의 막강한 위상이 감지케 한다. 고숭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으니 겸지(謙之)ㆍ공지(恭之)ㆍ근지(謹之)ㆍ신지(愼之)가 그들이다. 이 중 고공 지(高恭之) 또한 아버지 고숭처럼 `북사' 권 제50에 별도의 열전이 마련돼 있다.
원래 출신은 발해만 연안이지만, 고구려로 망명한 지 4-5세가 흐른 뒤에 다시 고향으로 복귀한 이들 발해고씨는 그들이 중국인인가, 고구려인인가 하는 양자택일 의 국적(國籍) 구분으로 역사를 따질 수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들 가문에 고구려의 혈통이나 전통이 짙게 스며 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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