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D%95%98%EC%84%9C%EC%A3%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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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통(北海通)
 
발해는 건국 이후에 주로 대륙쪽으로의 영토확장에 주력했기 때문에 한동안 한반도 지역으로는 손이 닿지 않았고 결국 그 기간동안 두 나라는 말갈족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접할 수가 없었다.두 나라가 국경을 접하기 시작한 것은 신라가 발해의 등주 공격을 기화로 말갈족을 토벌해가며 함흥 일대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730년 경에 발해가 북청에 남경남해부를 설치해 간신히 한반도의 북쪽 일각을 차지하면서부터였다.[1] 두 나라가 국경을 맞닿게 됨에 따라 두나라는 교류의 필요로 교통망의 정비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이에따라 발해에서는 8세기 전반에 동경용원부에서 남경남해부를 거쳐 천정군에 이르는 신라도(新羅道)를 개설했다. 한편 신라쪽에서는 소지마립간때 전국의 교통망을 정비하며 동해안에도 도로망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신라시대에 이르면 동해통이라는 국제도로망으로 재 정비되었다. 경주의 간문역(艮門驛)에서 출발한 북해통은 안강을 거쳐 흥해에 이른 다음 동해안을 따라 천정군에서 신라도와 접속이 이루어졌다. 북해통과 신라도를 주요 교통로로 신라와 발해는 사신 왕래등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764년에는 당나라 사신 한조채(韓朝彩)가 두 도로를 이용해 발해에서 직접 신라로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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