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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최남단 '우벌성'을 찾았다
중앙일보 98.06.16.

중원(中原) 고구려비(국보 `205`호)에 나오는 전설의 성 우벌성(于伐城)은 어디일까? 중원 고구려비는481년 고구려 장수왕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고구려 남하 정책의 최대 판도 를 보여 주는 자료로 평가돼 왔다. 특히, 이 비(碑)에는 신라의 왕이 ‘우벌성’에 왔다는 기록이 나와 있어 이 성은 중원 지방을 둘러싼 삼국의 패권 쟁탈 상황을 연구하는 데 귀중 한 단서로 관심을 모아 왔다. 하지만 정작 우벌성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못했다. 1979년 이 비가 발견된 이후 이런 상황에서 국사 편찬 위원회 최근영 사료 조사 실장과 단 국대 이호영(국사학) 교수는 최근 우벌성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발견, 우벌성과 중원 고구 려비를 둘러싼 연구에 활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충주 단양 지역 의 고대 산성의 분포와 특징을 조사하던 중 지역의 고문서와 행정 구역의 변화 등을 분석한 끝에 우벌성은 현재의 보련산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련산성은 중원 고구려비가 위치한 장미산성으로부터 서쪽으로 5.4Km 떨어진 보련산 정상에 위치하며 현재 충북 중원군 노은 면 연하리의 주민이 소장했던 탄원서의 일종인 '노은면 우성 거민 김하석 단자’라는 1910 년의 고문서를 발견한 후 이 지역의 행정 구역 변화를 조사한 결과 당시 노은면에 ‘우성리’라는 마을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이 산성은 하층 토성과 상층 석성으로 되어 있고 고구려의 축성으로 보이는 토성 부분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아직까지 지표 조사도 없이 방치 된 상태이다. 이화여대 신형식(국사학) 교수는 “우벌성은 고구려 최남단 기지로 그 영역의 규모와 신라, 백제 축성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라며 이 곳에 대한 고고학 발굴을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발견된 노은면 주민의 고문서는 명성 황 후 민비의 행궁을 짓는 공사 중에 발생된 민원을 담은 것이다. 그 동안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 황후가 이 곳에 피난 온 사실과 궁을 지어야 한다는 상소 등은 알려졌지만 이 문서는 실제로 이 곳에서 궁의 건설이 진행됐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려 주고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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