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naver.com/pcintern/150100654753

잃어버린 왕국, 고려후국
2011/01/12 00:26

《책부원귀》에는 이런 구절이 나타난다.
이효일은 옥검위대장군으로 임명하였다. 측전무후의 문명 원년(684년)에 이경업이 양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므로 이효일에게 이를 격파하게 하여 7,000여 명의 목을 베었다. ....이경업은 아우 이교유와 당지기, 두영인, 낙빈왕 등과 더불어 경무장한 기병을 이끌고 강도와 윤주로 도망하였으며, 이어 배를 타고 고려에 도망하려고 하였다.
 
고려? 여기서 말하는 고려는 과연 어디를 말함일까? 684년 기록된 이 기사는 668년에 멸망한 고구려에 비하자면 16년이 뒤지고, 698년 건국한 발해에 비하자니 14년이 앞선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곧 이 기록에서 보이는 고려는 고구려도 발해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기록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잃어버린 왕국, 고려후국(高麗侯國). 이 미스테리한 왕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고려후국의 위치비정
 
본론에 앞서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이경업의 난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이경업은 측전무후의 전횡에 염증을 느껴 반란을 일으키고 도주하던 중이었다. 그 가엾은 망명자가 강소성 일대에서 배를 타고 갈만한 곳은 어디정도가 될까? 당나라의 영향이 미치고 있던 요서지방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며 당나라의 본토 해안가는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한반도 중남부로 망명하려 했다면 고려가 아닌 신라로 표기했을 것이기에 이도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추론의 결과로 이경업이 가려고 했던 '고려'의 위치는 대개 한반도 서북부에서 요동반도 정도가 되지 않겠나 추측해 볼 수 있다.
 
북한의 장학종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고려후국의 위치는 대게 한반도 서북부와 요동반도를 아우르는 정도로 비정할 수 있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보면, 북쪽으로 안원부(安遠府), 동쪽으로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와 서경압록부와 접하며, 서쪽으로는 요하를 경계로 당나라와 접한다.
 
국가의 성립과 발해에의 귀속
 
668년 고구려의 멸망과 더불어 당나라는 본격적으로 고구려 지배체제를 갖추었다. 평양성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고구려 본토를 46주로 나누어 실질적인 지배를 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당의 의도와는 달리 요동의 11여성은 여전히 당의 군사에 맞서 항전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요동은 고구려부흥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었다. 보장왕이나 고보원같은 이들이 요동에서 부흥운동을 꾀했던 사실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고구려 부흥운동' 참조)
요동의 항쟁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요동에서의 당의 영향력은 줄어들었고 요동은 자연스럽게 국가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이 세력이 바로 책부원귀에서 보이는 고려(高麗)다. 이후 대조영의 발해가 강성해지자 고려는 발해에 귀속되었는데, 《책부원귀》나 《당회요》와 같은 사료에 8세기부터 10세기 초까지 고려후국의 독자적인 활동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귀속되는 대신 독자적인 권리를 승인받은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고려후국이 발해의 제후국이 된 것이었다. 
 
경룡 4년(710년) 4월 고려에서 사신을 파견하여 내조하였다.
원화 13년(818년) 4월 고려에서 악기 및 악공 2부를 보내왔다.
《책부원귀》
 
강력한 해상세력
 
고구려가 강력한 수군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처럼 고려후국도 상당한 수군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갓 신생국인 발해가 등주정벌과 같은 대규모의 상륙작전을 수행하려면 상당한 규모의 함선이 필요했을 텐데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려후국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발해 무왕의 대외정벌기' 참조)
 
또한 중국의 산동반도와 발해의 압록강구 사이에 상권이 형성되어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고려후국의 수도인 국내성(오늘날의 신의주;고구려의 국내성과는 구별됨)을 중심으로 강력한 해상세력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해상세력은 최대 중국 남서부와 동남아까지 활발하게 교역하였는데, 9세기 중엽 월주 등에서 활약한 발해계 국제상인 '이연효'가 그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멸망, 발해의 쇠락과 더불어…
 
동경(요양)은 옛 발해의 땅이었는데 태조(야율아보기)가 20여 년 힘겹게 싸워서 얻었다.
《요사》
 
10세기 초 요와의 전쟁에서 요동성이 함락되자, 자연스럽게 고려후국은 세력이 약화되었다. 남부에서는 왕건의 고려가 북진하여 평양을 비롯한 평안도의 일부를 점령하는 악재까지 겹치자, 고려후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해의 쇠락과 더불어 급속도로 세력이 약해진 고려후국은 결국에는 발해와 함께 요나라에게 점령되고 말았다.
 
멸망한 고려후국은 잠시 요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이후 발해 부흥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929년에는 대씨(大氏)의 후발해국(後渤海國)이 건국되었고, 936년에는 열씨(烈氏)의 정안국(定安國)이 성립했다. 이 중 정안국은 한때 송과 연합하여 요나라를 공격할 태세까지 보이며 부흥국으로써는 최대기간인 60년간 발해의 맥을 이어갔다.('강동6주는 누구의 땅이었나' 참조)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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