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16730

효의왕후는 정말로 천사표 여인이었을까?
08.01.21 14:30 l 최종 업데이트 08.01.28 12:01 l 김종성(qqqkim2000)

▲  효의왕후를 소개하는 드라마 <이산>의 홈페이지 ⓒ MBC

<이산>에서 선뜻 이해되지 않은 캐릭터가 하나 있다. 세손의 부인인 효의왕후 김씨(1753~1821년)가 바로 그 캐릭터다. 

아직 후궁을 둘 수 있는 처지도 아닌 세손이 벌써부터 도화서 다모를 사랑하고 있다면 궁중 어른들을 움직여서라도 얼마든지 세손의 ‘바람기’를 근절할 수 있을 텐데, 그는 그런 세손을 묵묵히 지켜볼 뿐만 아니라 도리어 ‘연적’ 성송연마저 보호하려 한다. 그런 모습이 얼마나 답답하게 보였으면, 측근 상궁이 나서서 혜빈 홍씨를 움직여 성송연을 혼내주려고까지 했을까!

<대장금>의 장금이를 도운 연생이처럼, 물론 그보다는 못하지만 효의왕후는 <이산>의 성송연을 인간적으로 감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진짜 저런 사람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는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초월적 인격’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가 화면에 나올 때마다 이상한 것이 있다. 이산이 아직 세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효의왕후’로 소개되고 있다. 물론 나중에 왕후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산이나 성송연 또는 홍국영처럼 뭔가 이름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가 연적 성송연을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과, 그가 효의왕후 외에는 달리 이름이 없는 것 사이에는 깊은 상호 관련성이 있다. <순조실록> 등의 기록을 바탕으로 그의 행적을 추적해보기로 한다. 그의 행적을 <순조실록>에서 추적하는 것은, 그가 양아들인 순조의 재위시기에 사망함에 따라 그에 관한 기록이 <순조실록>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순조실록> 속에 ‘효의왕후 행장’이란 기록이 있다. 행장(行狀)이란 사람이 죽은 뒤에 그 평생에 지낸 일을 기록한 글이다. 

이 ‘효의왕후 행장’을 읽다 보면, <이산> 속의 효의왕후와 행장 속의 효의왕후의 이미지가 너무나 똑같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산>의 제작진은 의빈 성씨(드라마 속의 성송연)에 대해서는 엄청난 ‘편집’을 했으면서도 효의왕후에 대해서만큼은 사료 속의 이미지를 최대한 존중한 듯하다. 

드라마 속의 효의황후와 역사 속의 효의왕후의 차이는?

한성부 가회방(지금의 종로구 가회동)에서 청풍 김씨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효의왕후는 정말로 어렸을 때부터 소문난 ‘천사표’였다고 한다. 사료상으로 형상화되고 있는 그의 이미지는 ‘덕스러움’이다. 물론 역사기록에 다소 과장이 있을 수 있으나, 효의왕후에 관한 기본적 사실관계를 보면 그가 정말로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가 아직 10세가 되기 전에, 이런 일화가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그가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다가 그중 한 아이가 근처에 있는 풀을 뽑는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그때 그는 “풀이 이렇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데 왜 뽑아내서 한창 자라나는 생기(生氣)를 해치느냐?”며 그 아이를 책망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그의 친척들 사이에서 널리 퍼졌다고 한다. 

그에 관한 평판은 사대부 가문들 사이에서만 자자했던 게 아니다. 영조 37년(1761)에 아홉 살의 나이로 세손빈으로 간택되기 이전에 이미 그에 관한 소문이 궁궐에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며느리를 맞은 사도세자가 “과연 소문대로 훌륭하다”며 감탄한 것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시 영조 임금도 “5대에 걸쳐 옛 것을 계승하였으니, 참으로 종통(宗統)이 될 만하다”(五世繼昔寔爲宗國)는 글귀를 손자며느리에게 내렸다고 한다. 영조가 보기에도 그가 명문가에 걸 맞는 품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 왕실에서 바람직한 국모의 이미지로 생각한 ‘덕스러움’을 바탕으로 그는 남편인 정조뿐만 아니라 시어머니인 혜빈 홍씨에게도 극진히 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순조실록>에 따르면, 정조가 죽은 뒤에도 마치 남편을 대하듯이 홍씨를 지극히 봉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한없는 포용정신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누이를 정조의 후궁으로 들인 홍국영이 효의왕후를 심히 견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홍국영이 무슨 말을 하든지 못 들은 체 했다고 한다. 

정조 즉위 이후에 박재원이란 대신이 효의왕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좋은 의사를 구하자고 건의한 적이 있다. 이때 크게 분노한 홍국영이 공식 석상에서 박재원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 홍국영에 대해서마저 아무런 원망을 하지 않자, 정조가 그를 더욱 더 사랑했다고 ‘효의왕후 행장’은 전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홍국영뿐만 아니라 문제의 화완옹주 역시 그를 몹시 괴롭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화완옹주가 죽은 뒤에는 수의까지 보내서 세상 사람들을 또 한 번 감동시켰다고 한다. 

왜 그렇게 착하게 산 것인지! 그런 그의 행적을 볼 때마다 그런 천사표를 제치고 <이산>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고 들어간 성송연이 도리어 미워질지도 모른다고 하면, 그건 너무 과도한 감상일까?

‘효의왕후 행장’에 따르면 이 외에도 그의 천사표 행적을 알려주는 내용이 많지만, 지면 관계상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인내심과 사랑을 베푼 점을 본다면, 드라마 <이산>에서 그가 ‘연적’ 성송연에 대해 베푸는 관용과 친절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실제의 의빈 성씨에 대해서도 사랑과 관용을 베풀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효의왕후는 '천사표'였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개혁군주 정조의 파트너로서 적합한 인물은 의빈 성씨보다는 효의왕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면서 조선왕조의 재생을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한 정조의 이미지를 보다 더 잘 표현하려면, 그 배우자로서 성송연보다는 효의왕후를 부각시키는 것이 더 나을 법도 했다. <이산>이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성군 정조’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드라마라면, 그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황송한 듯 황송한 듯하면서도 결국에는 세손의 사랑을 다 받아 챙기는 ‘깜찍한’ 성송연보다는, 개혁군주 정조 이산을 끝까지 응원하고 염려한 효의왕후가 더 바람직한 인물상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서두에서 효의왕후의 이미지가 착하다는 것과 그가 효의왕후 외에 달리 이름이 없다는 것 사이에 밀접한 상호 관련성이 있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일까?

사료에 따르면 효의왕후는 자기 것을 챙기지 않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일례로, 그는 친정집 식구들이 혹시라도 자기 핑계를 대고 부귀영화를 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던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효의왕후의 친정집 식구들은 밖에 나가서 거의 ‘티’를 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들이 왕실 외척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을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효의왕후는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자신과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엄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에게 효의왕후 외에는 달리 존호가 없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의 생전에 여러 차례에 걸쳐 그에게 존호를 올리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그는 존호를 거절했다고 한다. 효의왕후는 그가 죽은 뒤에 붙여진 시호에 불과하다. 생전의 존호가 없었기 때문에, TV 화면상으로는 효의왕후라고밖에 소개할 수 없는 것이다.
  
위와 같이, 정조 이산의 실질적 파트너인 효의왕후는 ‘덕스러운 여인’을 숭상하는 유교적 봉건사회의 분위기에 걸 맞는 인물이었다. 그는 문자 그대로 “(악한 자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까지 돌려댈”(성경 마태복음 5:39)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인 동시에, 자신을 치장하거나 자신을 높이는 데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가 연적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나 효의왕후 외에는 달리 칭호가 없는 것은 그의 높은 인격을 설명하는 자료가 될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천사표의 이미지는 실제의 효의왕후를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약 드라마 속의 효의왕후가 성송연을 핍박했더라면 성송연과 이산의 사랑이 한층 더 극적으로 묘사되었을 텐데, 효의왕후의 천사표 이미지가 그런 효과를 방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드라마 속의 효의왕후는 ‘보다 더 교묘한 방법’으로 성송연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지를 은밀히 빼앗아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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